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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중세 교황권과 세속권력의 갈등과정에서 중세사회의 역동성을 발견하다
이 책은 가톨릭이 지배하던 서양 중세시대에 교황이 그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활용했으며, 세속권력과 어떠한 긴장과 갈등을 초래했는지를 통해서 중세 역사의 독특한 환경을 재구성한 것이다. 교황제도는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발생했으며 현대 가톨릭교회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제도이다. 그러나 왕권적 힘과 권위를 속성으로 가지는 교황권은 중세의 역사를 대표할 만한 이념이요 현상의 하나로서 중세적 창조물이라 할 수 있다. 11~13세기 중세 전성기에는 교황들이 그들의 활동 영역을 교회 내부의 종교적 범주에 국한하지 않고 권력을 세속적인 문제에까지 행사하였으며, 마치 중세 유럽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처럼 행세했다. 그러한 상황이 결국은 로마교회와 교황으로 하여금 황제나 왕, 제후들과 같은 세속권력과 정치적 갈등을 야기하였다.
이 책에서는 중세 교황권의 역사를 초기 교황권의 성립기, 카롤링 시대, 그레고리오 개혁 시대, 인노첸시오 3세까지의 시기, 인노첸시오 4세의 시기, 보니파시오 8세의 시기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교황권 성립기부터 카롤링 시대는 아직 교황권의 이론적 실체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로 세속권력에 교회가 압도되는 시기로 보았다. 그리고 그레고리오 개혁 시대에는 로마교회와 교황이 세속권력의 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때이며 그 방편으로 교황권을 새롭게 인식시키며 교황의 우월권을 주장하는 시대였다고 보았다.
저자 소개
저자 : 장준철
목 차
프롤로그
서 문
제1장 로마주교의 수위권 형성 배경
1. 고대 로마교회의 출현
2. 로마교회의 사명과 역할
3. 로마주교의 수위적 지위 형성
4. 초기 교황권 이념의 평가
제2장 두 권력론의 출현과 변천
1. 교령 <두 권력Duo sunt>의 작성 배경과 출처
2. 교령 <두 권력>에 나타나는 젤라시오의 견해
3. 중세의 두 권력론 해석
4. 현대의 두 권력론 해석 논쟁
5. 두 권력론의 평가
제3장 8세기 로마교회의 정치적 변신
1. 비잔티움 제국과의 갈등
2. 프랑크 왕국의 협력과 압박
3. 콘스탄티누스 기증문서의 작성과 그 의미
제4장 11세기 교회 개혁운동과 개혁법령집
1. 11세기 개혁 시대의 교회법령집
2. 교황 그레고리오 7세 개혁의 교회법적 원천
3.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 전통과 혁신의 양면성
제5장 12세기 교회법 집대성과 교황의 세속권 이론
1. 교회법의 집대성
2. 교회법 연구의 확산
3. 교황 세속권 이론의 교회법적 배경
제6장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교·속통합적 이원주의
1. 인노첸시오 3세와 세속권의 관계
2. 정치적 병행주의의 입장
3. 신학적 통합화
제7장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성직자정치론
1. 로마교회와 제국의 정치적 관계
2. <협의문Consultatio>과 폐위권 이론
3. 인노첸시오 4세의 성직자정치론
제8장 13세기의 신학적·교회법적 교황권 해석
1.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황권 사상
2. 교황주권론자들의 성직자정치론
3. 제한적 교황권 이론
제9장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보편적 지배권론
1. 대외적 갈등과 교령 <재속사제에 명함Clericis laicos>의 반포
2. 교령 <유일한 하나의 교회Unam sanctam>의 반포
3. 교령 <유일한 하나의 교회>에 표출된 보편적 교황권론
4. 교령 <유일한 하나의 교회>의 해석과 평가
제10장 13세기 교황 중심의 유럽질서
1. 교황의 보편적 지배권
2. 평화 유지와 파문의 선포
3. 교황의 대영주권
제11장 교황주권 사상의 이론적 구조
1. 교황의 완전권Plenitudo Potestatis 관념
2. 성직자정치론hierocracy
3. 양검two swords 이론의 형성과 변천
에필로그 교황권 이론의 긴 여정을 마치면서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중세의 로마교회는 1~2세기 교회지도자들의 편지 속에 언급된, 베드로와 로마교회의 특수한 관계를 근거로 로마주교의 우월한 권위를 주장해왔다. 또한 이탈리아의 무기력한 정치적 상황, 야만족의 침탈과 위협에 맞서서 로마를 구하고 교회를 보호하고자 했던 교황 레오 1세(440-461)가 로마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교회의 질서를 정비하면서 주장한 교황의 수위권과 완전권을 토대로 교황권이 확립되었다.
11세기 이후 중세사회에서는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조직화된 서유럽 교회가 세속 사회에 그 영역을 확대해가면서 교황을 구심점으로 범유럽적 정치 조직을 구축하였다. 그것은 교회가 이전에 페핀(Pepin)이나 카룰루스 마그누스(Carulos Magnus, Charlemagne)와 같은 세속권력에게서 받았던 도움과 후원에 안주하지 않고 독자적인 힘과 권위를 강화시켜가려는 끊임없는 의지의 발로였다. 그러한 교회권력의 의지는 11세기에 표면화되기 시작하여 13세기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그 길은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다.
그라티아누스의 주도로 교회법이 집대성되고 교회법학자들의 교회법 연구가 활발해지는 12세기부터 교황권이라는 강력한 왕권적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교황권 이념은 로마교회와 지역교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형태를 가지기 시작했으며 교황권력과 세속권력의 충돌과 갈등 속에서 초월적인 권위를 지향하였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고대의 교회나 현대의 가톨릭교회와 다른 점은 교회 자체의 문제에만 관심을 국한하지 않고 세속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거나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로마주교인 교황이 주장한 수위권, 완전권, 보편적 권위를 세속국가와 군주까지를 대상으로 적용하고자 하였다. 즉 교황은 교회의 수장일 뿐 아니라 황제나 왕을 포함한 모든 세속권력에 대해서도 우월권을 주장하였다.
중세의 교회법학자들은 교회의 위상 법적 구조뿐 아니라 실정법, 자연법, 관습법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속하는 법적 속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나아가 중세 교회법 문헌에는 중세 정치이론과 헌정주의 이론이 광범위하게 논의되었다. 11세기 그레고리오 교회개혁 시대 이후로부터 세속과 첨예하게 대립할 때마다 교황들은 세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법권이나 정치력을 발휘하고자 할 때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를 교회법의 법원(法源)에서 찾고자 하였다. 교황의 주변에는 최고의 교회법학자들이 있었고 따라서 중세 교황권에 대한 탐구는 교회법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교황의 주변에서 강력한 교황권을 위해 교회법의 법원과 해석을 제공한 교회법학자들이 모두가 교황권지상주의자들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세속 군주가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으로부터 군주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군주들도 모두가 교황의 재치권에 종속된다고 보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교회법학자들은 왕도 교황처럼 신으로부터 직접 왕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교황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 권한을 가진다고 해석하였다. 중세 교·속 관계에 있어 전자를 교황권지상주의라고 한다. 후자의 경우를 ‘이원론주의자’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를 ‘교·속 병행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다.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의 권력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조건이 성숙되어야만 가능했다. 첫째, 권력을 추구하는 교황의 권위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교회법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때문에 교황정부는 끊임없이 교황권의 강화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교회법의 법원을 발굴하는 일에 온힘을 기울였다. 둘째, 교회의 권력행사는 황제, 왕, 제후 등 세속권력의 후원과 도움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와 제후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여러 지역의 세속적 문제에 간섭할 수가 없었다. 11세기 초반 3명의 교황이 동시에 존재하는 혼란상을 종결시키기 위해 황제 하인리히 3세는 수트리에서 공의회를 개최하여 클레멘스 3세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황제의 강력한 지원을 받게 된 클레멘스 3세는 교회 개혁 운동을 과감하게 추진하였고 돌출된 세속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간여하게 되었다. 또한 11세기 시칠리아와 칼라브리아 등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한 노르만 족은 로마교회의 강력한 후원 세력이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한 때 황제 하인리히 4세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도 독일 지역의 작센 지역 제후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제후들의 강력한 지원 때문이었다.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중세의 전성기에 교황들이 강력한 세속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근거와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3세기 후반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이론가들에 의해서 중세적 권력론은 급격히 변형되었다. 근대적 시민의식과 인민주권론이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국가와 정부 권력의 시민적 기원론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적기원론을 점차 탈피하도록 하였으며 근대국가의 이론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마키아벨리적 근대 정치이론 보다 훨씬 이전에 제기되고 검토되어온 근대적 요소들이 이미 선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서 중세적 양검 이론은 요한네스 파리나 마르실리우스와 같은 이론가들에 의해서 중세적 인식을 벗어나 근대적 요소로 새롭게 태어나고 근대적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교회의 문제가 아닌 순전히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교황이 깊이 간여하는 모습은 교황이 단순히 성직자의 지위에 머물지 않고 정치인으로서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교황의 세속 정치적 활동이 정당한 것이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중세 정치의 역사에서 로마교회와 교황의 역할과 비중을 배제할 수는 없다. 교황의 정치적 활동은 교황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사법적 영역을 중심으로 세속권력과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중세의 정치는 황제 왕 제후와 같은 세속군주의 활동만을 따로 떼어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와 교황을 동시에 그 시대의 정치적 역할자로 여겨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의 역사나 그렇듯이 당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종교 등을 통해서 그 시대의 중요한 특징과 역사성을 바라볼 수 있다. 교황의 아비뇽 유수로 시작되는 교황 권위의 실추와 동시에 근대적 정치이론의 발생은 더 이상 교황의 권위를 이전시대와 같이 회복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가톨릭의 역사에서 더 이상 교황의 세속권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인 영향력에 있어서 세속 문제에까지 힘을 미치면서 위력을 발휘했던 교황권은 중세만의 독특한 현상이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교회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교황권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학자의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중세 교회사, 중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촘촘히 메우는 데 기여해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