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고전 매트릭스 : 영웅에 반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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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고전 매트릭스 : 영웅에 반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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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0049313
쪽수 : 264쪽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고전매트릭스연구단  |  혜화동  |  2022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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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청소년을 위한 고전 매트릭스를 시작하며 4 서문 그들이 영웅에 ‘반’한 까닭 7 1부 영웅을 등지다 1장 희극의 반영웅주의적 상상력 ― 아리스토파네스의 ‘평화 3부작’ 읽기 _ 김헌 29 2장 가치관의 전쟁 ―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영웅과 반영웅 _ 심정훈 47 3장 인간적인 굴레보다 숭고한 아름다움 ― 『달과 6펜스』의 반영웅, 찰스 스트릭랜드 _ 임형권 62 4장 현대의 소시민: 삶과 사고의 경직성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를 중심으로 _ 권선형 75 5장 미워할 수 없는 소시민 허삼관 _ 김민정 89 6장 전쟁의 시대, 보통 사람 김영철의 일생 _ 손애리 104 7장 나라를 무너뜨린 악녀였을까, 복수를 꿈꾼 영웅이었을까 ― 달기 이야기 박선영 _ 118 8장 세상과 맞춰 가며 사랑을 찾았는데, 그만… ― 나탈리 Z.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 _ 윤광언 131 2부 영웅과 엇나다 9장 메데이아! 영웅인 듯, 영웅 아닌, 영웅 같은 그녀 _ 안상욱 149 10장 키케로의 반反영웅 카틸리나 ― 『카틸리나 규탄 연설』과 그 이후 김기훈 _ 163 11장 다크 히어로의 측면에서 다시 보는 프로메테우스 _ 안상욱 177 12장 영웅이기를 거부한 ‘직진直進’ 장비 _ 김월회 193 13장 불량 영웅 저팔계 _ 김월회 208 14장 자유의 가치를 되찾은 루저들 ―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반영웅상 _ 임형권 223 15장 갱생을 거부하고 기인奇人으로 살다 ―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의 왕백작 _ 손애리 236 16장 허망 속에서 방황하는 반영웅 ― 루쉰의 단편소설 「술집에서」와 「고독한 사람」을 중심으로 _ 김민정 249
저자 소개
저자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고전매트릭스연구단 김월회┃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부교수 권선형┃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김기훈┃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김민정┃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박선영┃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손애리┃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심정훈┃서울대 서양고전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안상욱┃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윤광언┃서울대 국사학과 석사과정 임형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목 차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고전 매트릭스 시리스 두 번째 책! 주제별로 만나는 인문 고전의 새로운 세계 반영웅들의 서사 반영웅反英雄, anti-hero은 ‘영웅에 반反하다’는 뜻이다. ‘反’은 두 사람이 서로 등진 모습을 형용한 글자다. 이로부터 ‘상반되다’, ‘엇나가다’ 같은 뜻이 생겨났다. 따라서 영웅에 반한다고 하면 이는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영웅과 상반된다는 뜻에서 비롯된 ‘영웅이 아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영웅과 엇나간다는 뜻에서 비롯된 ‘영웅답지 못하다’이다. 반영웅으로서 비영웅은 이렇게 영웅과 연관성이 있지만, 영웅은 아닌 인물 유형을 가리킨다. 반영웅의 또 다른 유형인 ‘영웅답지 못하다’에는 이를테면 흑영웅黑英雄, dark hero 같은 유형이 포함된다. 영웅의 면모를, 영웅으로 발현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영웅이라고 하기에는 비틀리거나 뒤틀린, 혹은 모자라거나 억눌린, 때로는 기꺼이 내지 기질적으로 악한 인물 유형이다.
출판사 서평
비뚤어지거나 모자라거나 1부에는 ‘영웅을 등지다’라는 제목 아래 영웅서사로 흐를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영웅에는 전혀 또는 별 관심 없는 인물들의 서사 8편을 담았다. 첫 편은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평화 3부작’ 속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영웅적 시선과 기준에 한없이 낮아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소소한 일상 속에서 평화를 누리며 따뜻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그들의 소박하고 우직한 의지가 영웅들도 못 해낸 또는 안 해낸 일을 해냈던 것이다. 비영웅의 길로 영웅다운 성취를 일궈 냈음이다. 이들 아리스토파네스의 ‘평화 3부작’의 주인공이 반영웅주의적 상상력을 해학적으로 풀어냈다면 영웅주의에 정면으로 대결했던 여성이 있었다. 또 한 명의 대표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의 주인공 안티고네가 그다. 그녀는 그저 가족애에 충실한 젊고 연약한 여인이었을 따름이다. 안티고네는 불의한 국왕에 맞선 비극적 영웅으로 비춰진다. ‘정통적’ 영웅들이 취한 길과 무관한 길을 걸었음에도 영웅으로 추인됐음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선을 안티고네도 원했을까? 이러한 시선에 ‘빅 엿’을 먹이는 인물이 있다. 비영웅마저도 영웅의 자장 안으로 끌어넣으려는 그 시선에 말이다.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가 단적으로 잘 해야 기인奇人 정도, 심상하게는 광인이나 악인 정도로 비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한 스트릭랜드의 영혼 앞에 도덕이니 영웅이니 신이니 하는 모든 가치와 잣대는 그저 벗어나야 할 바에 불과했다. ‘현대의 소시민’ 요나탄 노엘은 스트릭랜드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그러한 가치와 잣대로부터 비켜나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의 주인공인 그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인간관계의 철저한 단절 속으로 던져진 삶을 자신이 예측 가능한 동선과 통제 가능한 최소한의 활동을 구축하고는 그 속에서 기계처럼 일상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버텨낸다. 그야말로 그렇게 해도 살아지기에 기계처럼 작동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그런데 그의 삶에 역설적이게도 도덕이나 영웅, 신 등이 개입하지 못한다. 통상적 삶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그들이 요나탄 노엘의 삶에서는 도리어 존재감 제로가 되고 만다. 현대 중국은 통치의 필요성에서 적잖은 ‘시대적 영웅’을 만들어 선전하곤 했다. 하지만 허삼관은 그러한 영웅과는 거리가 한참 먼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그저 먹고살기 힘든 시절을 맨몸으로 부딪쳐 살아간 현대 중국의 전형적 소시민이다. 그는 법으로 금지되었음에도 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피를 판다는 것은 생명을 판다는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 모독이고 파훼이다. 도덕이나 신 등은 이러한 그의 선택 앞에 무기력하다. 그런데 허삼관은 자신의 생명을 판 대가를 하나도 못 누린다. 희생정신이 투철해서도 도덕심이 남달라서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못남과 지질함 탓에 그렇게 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국가가 휘두르는 거대 폭력과 그로 인한 굴곡 속에서도 가족을 건사하며 나름 살 만한 노년을 맞이한다. 마치 요나탄 노엘이 자살을 결정하고 잠든 다음 날 천둥소리를 듣고 깨어나 다시 삶의 의지를 되찾았듯이, 못나고 지질한 삶에서 삶을 지속할, 버텨 낼 동력을 찾은 셈이다. 도덕이나 신, 영웅에게서가 아니라! 1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연이었던 전쟁 속에서도 삶을 버텨 냈던 조선인 김영철에게도 고되고 풍진 삶을 이어 가는 동력은 도덕이나 신, 영웅이 아니었다. 그건 살아 돌아와 대를 이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김영철은 이를 지키기 위해 후금에 잡혀 만주로 끌려가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됐음에도, 우여곡절 끝에 중국으로 탈출하여 그곳에서 중국 여인과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됐음에도, 기회가 생기자 머뭇대지 않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조선에서 대를 잇기 위해 만주와 중국의 가족을 헌신짝처럼 팽개친 채 말이다. 언뜻 영웅과는 참으로 무관하다 싶은 이들 요나탄 노엘, 허삼관, 김영철이 펼쳐 낸 삶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이들의 삶에 대한 평가 차원을 그 자신, 그 가족으로 좁히고 평가의 잣대를 그가 지닌 신조의 실현 여부로 한정한면 이들이 자기 삶의, 가족의 영웅일 가능성을 딱 잘라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면에서 달기와 베르트랑드라는 여성의 이야기는 주목할 만하다. 주지하듯이 근대 이전은 동양이나 서양 할 것 없이 여성에게는 남성보다 사회적 억압 기제가 한층 복합적으로 둘러쳐 있었고, 그렇게 자기 삶을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조건 아래서 최대치로 자기 삶을 자기 주도적으로 펼쳐 내려 애쓴 이들에게 도덕이니 영웅이니 신이니 하는 잣대와 가치를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폭력이기에 그러하다. 전하는 바로는 그녀는 새로이 천자가 되고자 했던 주나라 무왕의 최측근 강태공에 의해 당시 천자인 은나라의 주왕을 타락시킬 목적으로 철저하게 훈련된 인물이었다. 주왕에게 바쳐진 그녀는 소임을 다하였고 타락과 폭정의 극을 치닫던 주왕은 결국 무왕과 강태공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 과정에서 도덕 등은 역시 무기력하다. 한 나라의 군주를 타락시킨다는 부도덕은 여성 달기에 둘러쳐 있던 삶의 조건에서는 또 다른 억압기제에 불과했다. 이는 『마르탱 게르의 귀향』 속 두 남편을 두었던 정숙한 여인 베르트랑드 드 롤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마녀의 저주 등으로 여의치 못한 삶을 살던 그녀의 남편 마르탱은 아버지의 자산을 훔쳐 가출한다. 중세 후기 프랑스 농촌 사회에서 남편 없이 어린 아들을 양육해야 하는 여인에게 처져 있는 사회적 억압 기제 아래서 베르트랑드는 오히려 주류 남성들의 무기인 정숙을 적극적으로 취해 자신의 삶을 지탱해 간다. 그런데 남편인 척하며 나타난 가짜 마르탱을 진짜 남편으로 인정하는 반전을 선보인다. 마르탱의 진위를 의심한 집안 어른의 고소로 법정에 섰을 때는 가짜 남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여 승소 직전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러다 판결 직전에 진짜 마르탱이 법정에 나타나자 그녀는 순순히 진짜 남편을 인정하고 그를 따라나선다. 드러난 양상만으로는 정숙함을 가장한 부도덕한 인물로 단정될 여지가 적지 않다. 달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전근대 시기 여성에게 둘러쳐 있던 억압 기제의 실질적 위력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한 삶의 조건을 주체적으로 깨뜨려 나오지 못하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취할 수 있는 삶의 경로를 취했다는 이유로 그 삶을 폄하할 수 있는 권리 말이다. 요나탄 노엘, 허삼관, 김영철, 달기, 베르트랑드의 서사가 통념상의 영웅과는 참으로 거리가 멀지만, 그러한 통념을 떠받치는 도덕이나 신이 오히려 이들의 삶에서 무기력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삶은 그것 자체로 반영웅적이었던 것이다. 2부에는 ‘영웅과 엇나다’라는 제목 아래 영웅서사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은 서사 8편을 담았다. 첫 편은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꼽히는 에우리피데스가 쓴 『메데이아』의 주인공 메데이아의 서사이다. 메데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다른 영웅처럼 신의 혈통을 지닌 여성이다. 그녀는 마법 같은 신적 능력과 남다른 지략, 과단성 등을 지니고 있어 영웅으로 치켜 올려질 여지가 풍부하다. 한편 메데이아는 목적을 위해서 동생을 토막 내 죽인다거나 친자식을 살해하는 등의 패륜을 서슴지 않는다. 그녀가 선뜻 영웅으로 치켜세워지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메데이아의 이러한 영웅과 엇나는 면모는 남편 이아손의 성공을 도모하는 대목이나 자신을 배반한 이아손에게 복수하는 대목에서 발생한다. 이아손의 영웅 등극이 그녀의 패륜을 딛고 일어난 셈이며, 그러한 하자를 안은 채 영웅이 된 이아손을 좌절시키는 데 그녀의 패륜이 활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아손은 과연 영웅일까? 그가 영웅이라면 메데이아는 왜 영웅이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이아손이 하자 있는 영웅에 불과하다면 그를 좌절시킨 메데이아가 영웅이 못 되는 이유는 또한 무엇일까? 이 물음은 로마의 악한 정객 카틸리나에게도 적용된다. 그는 영락한 귀족 가문의 야심가이나 정치적·도덕적으로 상당히 저급하고 타락한 이로 전해진다. 카틸리나는 로마 공화정의 수호자로 또 정치적 순교자로 평가되며 영웅적 면모가 드리웠던 키케로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결국 그는 노련하고 지혜로웠던 키케로가 영웅의 길을 는 데 제물이 된다. 키케로는 그가 로마의 전복을 꾀했다며 신랄하게 비판하며 정치적 중심으로 우뚝 섰고 그 반대급부로 카틸리나는 로마 사상 가장 유명한 반역자로 각인된다. 반전은 세월이 흘러 정치적으로 실각한 키케로가 정치적 재기를 위해 정적 안토니우스를 카틸리나처럼 처리할 때 일어났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를 역모로 몰아갔지만, 실패하고 역으로 안토니우스에 의해 숙청된다. 이는 카틸리나에게 다시 볼 여지가 있음을 시사해 준다. 이를테면 그 또한 영웅이 될 수 있었지만, 키케로라는 영웅적 인물의 등극을 위해 억울하게 희생된 인물로 말이다. 결국 메데이아나 카틸리나 모두 어디에 서서 보는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인물인 셈이다.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에게 불과 밀을 몰래 갖다 준 대가로 매일같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말이다. 그는 교활한 속임수와 계략을 쓰면서까지 최고신인 제우스의 명을 어겼다는 점에서 신들에게 그는 신계의 질서를 어긴 사악한 존재와 다름없다. 그러나 그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인간에게 그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영웅이다. 영웅과 엇나갔다고 하여 항상 보기에 따라 영웅이기도 하고 그렇게 보기 어렵기도 한 것은 아니다. 『삼국지연의』의 장비와 『서유기』의 저팔계만 봐도 그렇지 않음은 쉬이 드러난다. 『삼국지연의』와 『서유기』 안에서 장비와 저팔계는 영웅이라기보다는 각각의 주인공인 유비와 손오공을 영웅답게 해 주는 보조적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도 분명 영웅의 면모가 적잖이 존재한다. 영웅이라 충분히 칭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삼국지연의』나 『서유기』에서 벗어났을 때 가능한 얘기다. 장비와 저팔계는 적어도 『삼국지연의』나 『서유기』에서만큼은 보기에 따라 참 영웅이거나 흑화된 영웅이 되는 인물이 아니다. 또한 실패한 영웅이나 내몰린 영웅처럼 누군가에게는 영웅이지만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이들에게는 역적인 경우도 아니다. 그저 유비와 손오공의 영웅 면모를 부각하는 데 진심인 반영웅이었을 따름이다. 이에 비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주인공 맥머피는 소위 ‘별’이 주렁주렁 달린 전과자로서 수감 중에도 폭력을 행사한 인물이지만, 비정상적이고 비도덕적인 그의 면모는 ‘반영웅 맥머피’라는 서사를 구축하는 데 온전히 투입된다. 맥머피는 과도한 폭력성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정상적이라면 정신병원에서의 치료를 통해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맥머피가 수용된 정신병원은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들고는 정상이라 판정하는 비정상의 정신병원이었다. 그가 갇힌 정신병원이 자본주의 현대 문명의 알레고리로 읽히게 되는 이유다. 이곳에서 맥머피의 비정상적·비도덕적 면모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강제하는 자본주의 현대 문명과의 싸움에 실질적 자산이 된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현대 문명에 의해 사회적 패배자로 낙인찍힌 이들이 자신에게 둘러쳐 있는 억압기제에 맞서서 자유라는 가치를 드높이는 영웅적 면모로 읽히게 된다. 비록 맥머피는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강제 조치를 통해 비정상적으로 정상화되었지만 맥머피의 반영웅적 싸움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정신병동에 들어와 언어장애인, 청각장애인 행세를 하던 브롬덴에게 옮겨져 결국 정신병원으로부터의 탈주를 완성해 내게 된다. 맥머피를 전과자로 또 루저로 만들었던 요소들이 반영웅 맥머피의 서사를 빚어내는 원천이 된 셈이다. 그런데 여기 비정상의 영역에 갇힌 이가 하나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김사량의 단편소설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에 등장하는 왕백작이 그 주인공이다. 맥머피가 갇힌 곳은 자본주의 현대 문명의 알레고리인 비정상의 정신병원이었지만 왕백작이 자기를 가둔 곳은 ‘비정상적 자신’이었다. 왕백작은 일제강점기 시절, 아버지가 조선에서 도지사급으로 있는 등 넉넉한 집안 배경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한 그가 사상범을 즐겨 자처한다. 일제에 기생하여 든든한 삶의 터전을 지닌 이가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사상범인 척하며 체포되어 수감되는 것이 목표인 양 행동하는 정상적지 않은 인물이다. 결국 왕백작은 자신의 바람대로 동경에서 수감된다. 그렇게 1년 남짓 흘렀을 무렵 그는 만주로 행하는 열차에서 술에 잔뜩 취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열차 안은 빼앗긴 조국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절망과 두려움을 안고 만주로 이주하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들 틈에 끼어 있음으로써 이번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아래 삶의 기반이 파괴되어 만주로 내몰린 이민자인 척한 셈이다. 겉만 봐서는 정신분열자로 몰려도 할 말 없을 행동이다. 그런데 그의 내면은 어떠했을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삶을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구현하는, 그럼으로써 현실에서는 불만 자체였을 자신을 내면세계에서는 긍정할 수 있게 됐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자신을 자신에게 가둠으로써 사상으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영웅이, 식민 제국의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과 함께하는 영웅이 되어 살게 되는 삶을 연명하고자 했음은 아닐까? 어쩌면 왕백작은 뤼웨이푸나 웨이롄수 같은 삶이 더 두려웠을 수 있다. 이들은 2,000여 년간 지속한 봉건 전제 체제를 끝낸 신해혁(명1911년)에 투신했다가 혁명의 좌절과 함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절망과 무력감 속에 방황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루쉰의 단편소설 「술집에서」와 「고독한 사람」의 주인공인 이들은 한때 뜨거운 열정과 이상을 품고 사회 개혁에 뛰어든 영웅적 청년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번번이 부딪히는 현실의 벽 아래 열정과 이상 대신 생계에 발목 잡힌 채로 근근이 살아지는 삶을 이어 간다. 자신들이 이전에 증오하고 반대했던 모든 것들을 기꺼이 행하면서, 전에는 숭배하고 주장했던 것들을 이제는 온통 거부하면서 말이다. 이들의 삶은 왕백작의 삶에 비해 어떠했을까? 자신을 자신에게 가두는, 하여 겉으로는 비정상의 삶으로 현현된 왕백작이 취한 삶의 방식과 생계를 위해 과거 자신이 선택한 삶을 부정하며 좌절과 무력감 속에 살아가건만 겉보기에는 비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뤼웨이푸와 웨이롄수가 걸었던 삶의 방식. 이러한 삶의 방식을 과연 우리는 재단할 수 있는 자격을, 또 역량을 지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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