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탄생한 문화인 힙합은 오늘날 가장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 예술이다. 가난한 흑인들이 지껄이는 불평불만, 무절제한 생활과 폭력 미화, 여성혐오,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도전 등 힙합은 늘 부정적 이미지가 따르는 무시와 공격의 대상이었다. 재즈 평론가이기도 했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힙합을 일컬어 “음악적으로 시시하고 문학적으로도 조잡한 엉터리 시”, “블루스라는 위대하고 심원한 예술의 정반대 편에 있는 음악”이라고 비난했다. 한편으로 힙합은 본질적으로 사회 비판적 예술이라는 후한 평가를 얻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힙합이 많은 오해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비판에 무죄를 주장할 순 없다며 둘 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힙합에 대한 편견 중 상당수가 흑인에 대한 편견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힙합에 대한 비판의 반박은 차별받아온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을 반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미국에서 흑인 남성이 교도소에 가장 많이 가는 인구 집단인 현실을 지적하지 않고서는 랩이 마약과 폭력을 이야기하고 경찰을 적대시하는 반사회적 문화라는 비판을 반박할 수 없다.
미국현대사를 공부하며 급진적 흑인운동에 주목해온 저자는 힙합의 본모습은 돈 자랑과 여성비하가 아니라고 꾸짖는 대신 힙합의 다른 측면, 즉 힙합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지 강조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음악인들은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시키기 위해 혁명을 말한 사람들을 열심히 이야기한다. 책에 따르면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극소수의 래퍼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과거와 현재의 사상과 운동에서 얼마나 깊은 영향을 받았는지 보여줌으로써 힙합의 혁명적 성격이 결코 주변적이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숨겨져 있던 랩 가사를 발견하고 잊힌 사람들의 일생을 되짚으며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살림으로써 즐겁고도 혁명적인 예술로서의 힙합을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변호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가 겪은 폭력에 대한 대답
20세기 급진적 흑인운동과 연결되다
힙합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이 문화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비록 세계적인 문화가 된 이후 그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힙합 음악들이 곳곳에서 독자적 전통을 만들고 있지만, 힙합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의 특유한 문제들-낙후한 주거환경, 경찰의 폭력과 일상적인 인종차별, 마약의 폐해, 교도소 수감 경험 등 1970년대 이후 미국 대도시 흑인들이 겪은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답하고자 했다. 이는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미국 백인 사회의 규범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었고, 미국의 인종차별과 경찰의 폭력에 가장 공격적으로 대응한 문화적 전통을 만들며 힙합 안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또한 힙합은 작법에서 과거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래퍼들이 늘 다른 래퍼의 가사 일부를 창의적으로 인용하는 것처럼 정치적 내용을 가사에 담으려는 래퍼들은 맬컴 엑스나 블랙팬서당의 유산을 계속해서 불러내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힙합 음악인들이 자신들의 역사, 특히 20세기 급진적 흑인운동의 전통을 받아들인 방식에 주목했다.
이 책이 다룬 급진적 흑인운동의 전통에는 두 가지의 사상적 경향이 나타난다. 범아프리카주의로부터 영감을 받아 흑인의 인종적 단결을 강조한 경향과 사회주의가 동력이 되어 억압받는 민중의 단결을 강조한 경향이 그것이다. 인종과 피부색, 아프리카라는 지리, 노예제나 식민지화처럼 역사적 차별 경험을 매개로 각지의 흑인을 모으려 한 범아프리카주의 경향과,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과 식민지화에 대항하며 사회주의자들과 동맹을 맺은 사회주의 경향은 대립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균형을 이루며 공존했다. 범아프리카주의적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인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는 점이 이 책에서 다룬 급진적 흑인운동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급진적 흑인운동의 전통에서 중요 위치를 차지한다. 맬컴 엑스나 마틴 루서 킹처럼 유명한 인물이 있는 반면, 현재도 생존해 왕성하게 활동하지만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나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부터 현역 페미니스트 활동가 앤절라 데이비스까지 객관적으로 폭넓게 살폈다. 이들 모두 흑인을 억압하는 체제에 맞섰고 이 활동이 세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의 래퍼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맬컴 엑스부터 앤절라 데이비스까지,
퍼블릭 에너미부터 켄드릭 라마까지
시대를 가로질러 만난 혁명가들과 래퍼들
가장 좌파적인 미국 힙합 그룹이라고 평가할 만한 듀오 데드 프레즈는 “래퍼가 되고 싶으면 맬컴, 가비, 휴이를 공부해”라는 가사를 썼다. 이슬람민족 설교자로 유명한 맬컴 엑스, 1920년대를 대표하는 범아프리카주의 사상가 마커스 가비, 블랙팬서당의 공동 설립자 휴이 뉴턴은 랩 가사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20세기 미국 흑인운동의 지도자들이다. “흑인 모세”로 불리며 흑인 스스로 힘을 길러 아프리카로 돌아가 강한 흑인 정부를 세우자고 한 마커스 가비는 후대의 흑인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고, 우탱 클랜의 “그들은 가비를 추방했지, 그가 우리를 일깨우려 했거든”, 케이알에스 원의 “난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결코 멈추지 않을 거야/마커스 가비, 콰메 투레, 맬컴 엑스에 대해 매일 말하지”라는 가사로 여전히 영향을 과시한다. 힙합이 가장 사랑한 혁명가 휴이 뉴턴의 육성은 데드 프레즈의 “Propaganda”에 삽입되었고, 그가 사망한 후 투팍이 쓴 추모시는 탈립 콸리의 “Fallen Star”로 재창조되었다.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힙합 곡들의 주요 가사와 해석을 실어 숨은 의미도 명쾌하게 드러낸다. 미국의 래퍼 랩소디가 “모든 흑인 여성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명한 2019년 앨범의 마지막 곡 “Afeni”(아페니)는 1960년대 말 블랙팬서당에서 활동한 투사이자 래퍼 투팍의 어머니 아페니 샤쿠르를 가리키며, 뮤직비디오에 흑인 여성 투사 앤절라 데이비스의 배지가 등장한다는 점은 단호하고 진지한 사유를 촉구하는 가사와 합쳐져 깊은 울림을 준다. 랩소디는 또 미국인 최초로 히잡을 쓰고 올림픽에 나간 펜싱 선수의 이름을 딴 곡 “Ibtihaj”(이브티하즈)에서 “Hands bury the man and they raised the son, Lorraine”(손으로 남자를 묻고 그들은 아들을 키웠네, 로레인)이라는 랩을 했는데 이는 흑인 민족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로레인 한스베리와 그의 대표작
(1959)과 관련한 언어유희다.
래퍼 나스가 “My country”라는 곡을 왜 파트리스 루뭄바에게 바친다고 했는지, 힙합 그룹 푸지스의 “Rumble in the jungle”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체포 장면은 어떤 의미인지, 젊은 음악인 집단 네이티브 텅스의 일원인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가 발표한 곡의 제목 “Steve Biko”(스티브 비코)가 누구인지, 퍼블릭 에너미가 2020년 새로 내놓은 “Fight the power”에서 “넌 블랙팬서를 사랑하지만, 프레드 햄프턴을 사랑하진 않지”라는 가사의 뜻이 무엇인지는 이 책에서 다룬 흑인운동의 역사를 통해 또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화합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마틴 루서 킹 대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맬컴 엑스라는 양면적 이미지가 오해라는 점, 흑인 힙합 음악인들이 이슬람민족에 우호적인 이유, 마오쩌둥과 힙합 음악인들과의 연결고리처럼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들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 속 인물과 오늘의 음악에 몰입하게 한다.
흑인운동의 역사에서 찾은 그들과 우리의 연결고리
오랜 문제와 맞선 사람들을 불러내는 뮤지션들의 이야기
힙합 애호가도 잘 알지 못했던 뒷이야기나 시대와 지역을 넘어 다양하게 얽힌 의외의 인연에 관한 에피소드 또한 이 책을 읽는 재미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오쩌둥이 처음으로 만난 미국인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하버드 박사학위 받은 듀보이스라는 이야기, 마커스 가비의 강의를 들었던 호찌민이 흑인 학생운동가에게 이를 말했고 이 학생이 훗날 아프리카 혁명가 콰메 투레로 활동한 이야기, 독재자 무가베와 친밀했던 김일성이 1980년 짐바브웨에 106명의 북한 장교를 파견해 학살을 주도한 이야기, 일본을 본받자고 한 가비의 해운회사 ‘블랙스타’를 팀명으로 지은 야신 베이의 랩이 한국 래퍼 가리온에 의해 2017년 대통령 탄핵 후 축가로 불린 이야기, 세네갈 출신 엠시 솔라가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성만 등을 위해 “Pour Kim Song-Man”(김성만을 위하여)을 발표한 이야기 등은 역사 속에서 우리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과거의 인물이 남긴 흔적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실감케 한다.
그리고 1989년 ‘센트럴파크 5인조’ 사건, 1991년 한국계 미국인에게 살해된 라타샤 할린스 사건, 1992년 로드니 킹 사망과 이른바 ‘LA 폭동’, 2011년 리비아 시위,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탈립 콸리 등의 뮤지션이 2019년 독일 공연을 취소당한 일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등 우리가 기억하는 비교적 최근까지의 사건들에서 사회 문제에 발언해온 래퍼들이 어떤 태도로 이를 비판했는지도 다뤘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처럼 현재에도 끊이지 않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이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차별의 역사와 그 행태가 얼마나 뿌리 깊고 잔혹한지, 동시대의 시민들에게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 더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흑인 혁명가들이 급진적으로 활동한 이유와 힙합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이를 이야기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