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미술관, 박물관에서 10년 동안 미술과 엮여 일한 큐레이터 조아라의 에세이. 그는 “어떤 시대의 한 사람이 그려 낸 장면이 시공을 초월해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해 미술에 매료되었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큐레이터로 일하던 시절 그리고 일상 등 미술 곁에 머무는 동안 접했고 마음을 내주었던 작품과 예술가를 소개하며, 미술이 자신에게 말을 걸던 순간과 그 말을 들으며 미술에 붙들렸던 장면을 진솔한 언어로 풀어낸다. 마음을 어루만지고, 질문을 던지게끔 하고, 새로운 순간을 선사하는 미술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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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조아라
다양한 시대의 미술 작품을 보고 생각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한영외국어고등학교 졸업 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미술사학 석사를 취득했으며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국제교류 및 PR 담당으로 일했다. 『화가들의 마스터피스』(2023)를 번역했고, 『현대조각 읽기』(2012)를 함께 썼다.
목 차
들어가며
1 마음을 알아주고
거리는 두고 싶지만 헤어지기는 싫어
매주 일요일의 #하늘스타그램
때론 헤매는 것도 괜찮아
엄마 거미의 위태로운 위용
좌절을 빛으로 기억하기
2 질문을 던지고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공기에 그림을 그려 본 적 있나요
삐딱하면서도 성실한 당신이 좋아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데 심지어 예뻐
‘오징어 게임’ 같은 현실 속에서 피어난 예술
3 새로운 순간을 선사하는
도시인의 고독인인가, 거리두기 인증샷인가
건초더미에서 본 순간과 영원
그림에서 바람이 불어와
궁극의 셀카 존이 된 반짝이는 콩
〈헤어질 결심〉을 볼 결심
감사의 말
출판사 서평
이해 못 할 모순에 휩싸이거나 벗어나고픈 갈망을 마주할 때…
마음을 알아주는 미술을 만나다
삶 전반에서 미술과 가까이 지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미술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마주하거나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알아준다. 곁에서 위안과 힘을 주는 미술의 면모는 여러 작가 및 작품과 교제한 조아라의 일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성을 쏟아 준비한 전시 개막 시기. 온갖 신경이 곤두선 찰나에 윤석남 작가의 바닥까지 팔을 길게 늘어뜨린 채 천장에 매달린 나무 조각 작품은 ‘닿고 싶지만 완전히 뛰어들고 싶진 않은 회피하고픈 마음’을 헤아려준다. 반복되는 육아에 지칠 때, 예술가 바이런 킴이 캔버스에 매일같이 그린 평범한 하루의 하늘은 사소한 오늘과 작은 노력에 숭고함을 일깨운다. 소심한 스스로가 갑갑할 무렵, 점과 선을 모아 자유로움을 구현한 박광수의 작품을 감상하며 작업 과정에 이입해보는 일은 해방감을 전해준다.
이처럼 조아라는 진공 상태가 아닌 자신의 현실을 바탕으로 미술을 감상한다. 지금의 상황과 감정에서 출발해 작품과 예술가와 만나며 섞인다. 진지하고 깊이 있게 미술과 소통하는 자신만의 화술을 드러내며, 미술과 친밀히 관계 맺고 동행하는 법을 일러준다.
순간이자 영원으로서 미술
그치지 않는 질문이 선사하는 새로운 순간에 대하여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와 정적인 인물 스케치로 현대 도시인이 소외감과 고독함을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 그와 그의 작품은 광고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서 소개된 바 있어 사람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를 비롯해 반 고흐와 모네 그리고 인상주의 등등, 비교적 친숙한 작가와 작품 그리고 미술 사조는 비슷한 수사로 불리고 전달되기를 반복하면서 특정한 모습으로 굳어지곤 한다. 그렇다면 작가와 작품의 운명은 한때의 인상과 해석에 머물다가 새로운 작가 및 작품에 밀려 결국엔 잊히고 마는 걸까. 조아라는 이렇게 비관적이고 어두운 결말을 거부한다. 그 대신에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과 팬데믹 상황과 연결지어 작품의 의미가 시의성을 띠도록 갱신한다. 또한 한 번 어쩌면 그 이상의 횟수로 접했을 법한 모네와 반 고흐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신화와 위인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통찰로 보편성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변하는 시대를 반영해 작품의 의미를 다시 쓰고 다른 입장과 관점에서 미술을 사유하며, 즉 질문을 그치지 않으며 미술이 끝없이 새로운 순간에 자리할 수 있게끔 한다.
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어 주는 듯한 건초더미들. 시간대를 유추하게 하는 그림자의 모양과 색채의 변화. 이들은 다시는 오지 않을 사라진 ‘찰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이 시시각각으로 변해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의 ‘영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인상주의를 통해 수확하고 남은 건초더미가 비로소 회화 한복판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고, 심지어 우리는 그것으로 순간과 영원의 이야기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_「건초더미에서 본 순간과 영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