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관의 딸로 태어나 사랑하는 이를 따르기 위해 궁녀가 된 애란. 원치 않는 결혼으로 정쟁과 전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은주. 꼬여 버린 운명을 원망하며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선 혜원. 각각의 감정과 선택을 짊어진 채 격동의 시대에 휘말린 세 여인의 비극적 이야기.
《꽃이 부서지는 봄》은 조선 시대 병자호란 후 포로로 끌려갔던 소현세자의 부인 정도로만 대중에 알려져 있는 강빈을 발굴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여인의 몸으로 이상적 정치를 꿈꾸고 실천하려 했던 세자빈과 그런 세자빈을 사랑하고 따르는 궁녀의 이야기, 즉 ‘세자빈과 궁녀의 쌍방 구원 궁중 연애담’이라는 뼈대를 중심으로, ‘역사 속 여성의 이야기’에 꾸준히 주목해 온 한켠 작가가 살을 붙여 파란만장하고 애절한 서사를 완성해 냈다.
저자 소개
저자 : 한켠
역사물을 쓰는 작가는 죽은 귀신의 말을 산 사람에게 전하는 샤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몇 번 더 역사물과 동양풍 판타지의 쌍작두를 타 볼까 한다. 지은 책으로 일제강점기에 축구 하고 연애하는 여학생들 이야기인 《까라!》, 20대 비혼 여성 탐정이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결해 주는 《탐정 전일도 사건집》 등이 있고 브릿G에서 글을 쓰고 있다.
목 차
1부 조선에서
1 색을 잃은 새
2 둥지를 떠나는 새
3 탁란하는 두견
4 흔하지 않은 참새
5 빛바랜 파랑새
6 날개를 펴는 짐새
7 새장에 갇힌 붕새
8 한 쌍의 앵무새
9 날개를 찢긴 비익조
10 갈퀴를 다친 물새
11 깃갈이하는 유조
12 떠나가는 철새
2부 심양으로
1 덫에 걸린 새
2 텅 빈 고목을 조는 딱따구리
3 달 없는 밤의 까마귀
4 종종대는 매추라기
5 알 품는 수탉
6 눈비 맞은 까마귀
7 펄펄 나는 꾀꼬리
8 큰 날개 그림자 아래 촉새
9 짝 잃은 기러기
10 도래하는 철새
3부 다시 조선에서
1 곁을 물들이는 짐새
2 날개 접은 백학
3 불을 삼킨 화식조
4 사람의 말을 하는 인면조
5 피를 토하는 탁목조
6 돌을 물어다 바다를 메우는 정위
작가의 말―애란의 편지
프로듀서의 말
출판사 서평
| 명청 교체기 엄혹한 현실의 조선
욕망과 사랑, 생존과 대의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며
단단히 꼬이고 꼬여 버린 세 여인의 비극적 운명!
중국 대륙의 주인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던 시기, 광해군에 반하여 명을 가까이하고 만주족을 배척하던 정책을 펼치던 인조 때의 조선. 그 엄혹한 분위기에서 이리저리 휩쓸릴 수밖에 없었으나 가슴 깊이 품었던 뜻을 펼치고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든 해 보고자, 부서질지언정 결코 굽히지는 않았던 세 여인이 있다.
먼저, 역관의 딸로 태어나 장남으로 키워진 딸, 애란. 애란의 아버지는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딸마저 승경도판 위의 말로 보았다. 남자가 아니기에 역과에 응시하여 역관이 될 수는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란은 한어와 만주어를 배우고 역관들이 보는 책을 두루 익혔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사행길에 동행하여 계집인 자신만이 시도할 수 있는 임무를 톡톡히 해냈다.
그런 애란과 얄궂은 운명으로 얽히게 된 양반가의 딸, 은주. 은주는 청상과부가 될 팔자라 하여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교육 대신 어엿한 사내가 입신양명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나, 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조선의 세자빈이 되고 만다. “슬플 만큼 너무 영민한” 은주는 근시안적인 권력 다툼에만 목을 매다 만주족 앞에 무릎을 꿇고 만 처참한 조선의 업보를 짊어진 채, 피로인이 되어 청나라로 끌려간다.
그런 은주에게 한을 품은 역적의 딸, 혜원. 본래 혜원은 세자빈 간택 이야기까지 나온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선 임금이 일삼는 정치 놀음의 희생양이 되어 순식간에 역적의 딸로 전락하고, 자신의 성도 이름도 버린 채 궁녀로 입궁하여 기어코 후궁 자리를 꿰찬다. 혜원이 이토록 독을 품고 억척같이 애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스스로 권력의 주인이 되는 것. 조선 시대에 감히, 여자의 몸으로.
그리고 세자빈이 된 은주를 마음에 품은 채 애란 또한 궁녀가 된다. 애란은 꽃길이든 불지옥이든 은주를 따르고자 하나,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간 은주를 지독하게 원망하는 혜원의 훼방으로 혜원을 시중드는 처지가 된다. 나라의 앞날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가운데, 세 여인은 각자의 욕망과 사랑, 생존과 대의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운명에 부딪친다.
|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멈추지 마.
우리는 외면하지 않고 계속 부딪쳐야 해.”
배를 뒤집을 물이 되고 싶었던, 끝까지 포기를 몰랐던 숨겨진 여인들의 사연이 펼쳐진다
명청 교체기의 조선은 이미 역사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숱하게 조명된 시대다. 그러나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소현세자 부인 강빈은 그 중심에 섰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강빈은 조선이 병자호란에서 패배하고 항복한 후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어 벌어들인 수익으로 포로들을 속환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역사서에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인조를 저주하고 왕의 음식에 독약을 넣었다는 죄로 죽임을 당했다는 정도로만 기억된다.
《꽃이 부서지는 봄》은 그런 강빈을 발굴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누명을 쓴 강빈을 수사하기 위해 강빈을 따르던 궁녀들이 줄줄이 잡혀갔고 지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그들 중에 강빈을 고발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기록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여인의 몸으로 이상적 정치를 꿈꾸고 실천하려 했던 세자빈과 그런 세자빈을 사랑하고 따르는 궁녀의 이야기, 즉 ‘세자빈과 궁녀의 쌍방 구원 궁중 연애담’이라는 뼈대를 세웠다. 그리고 ‘역사 속 여성의 이야기’에 꾸준히 주목해 온 한켠 작가가 이 뼈대에 살을 붙여 파란만장하고 애절한 서사를 완성해 냈다.
작품 속 세 여인, 애란과 은주와 혜원은 회피하거나 영합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직시하고 몸이 부서져라 부딪친다. 각자의 생각과 욕망이 다르기에 그 방향이 엇갈리고 대립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진심을 다하면 사람도, 세상도,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굴욕의 역사인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작품들에서 주되게 부각되지 못했던 여성들을 오로지 전면에 내세운 《꽃이 부서지는 봄》을 읽으며, 결기를 품고 운명에 맞선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우여곡절이 많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