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쇄 문화, 시각예술과 현대미술 분야에서 실험적이고 심도 있는 프로젝트를 주도한 조해나 드러커(UCLA 문헌정보학 교수)는, 40여 년간 ‘문자의 역사’ ‘실험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해 온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역사가이다. 드러커의 연구물은 전 세계 디지털 인문학 분야의 연구자, 예술가, 문화평론가 들에게 널리 인용되고 있으며, 대중적으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문화적·사회적 역할을 이해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해나 드러커는 미학과 디지털 인문학 분야 권위자로서 지난 40년 연구 결과물을 응축해 『알파벳의 발명』을 펴냈다. 이 책은 고고학·고문자학·금석학·지리학적 접근을 통해 알파벳의 기원과 발전 양상을 추적하고, 미학적 관점에서 언어의 시각적 형태를 탐구해 전자의 연구를 뒷받침하며, 디지털 인문학적 접근으로 현대의 언어 체계(프로그래밍언어, 유니코드, 영숫자표기법)로 분석을 확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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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조해나 드러커
시각예술 이론가이자 역사가, 철학자, 미술가로서 책과 현대미술, 미학과 디지털 인문학 등 다방면에서 심도 있는 프로젝트와 연구를 진행해 왔다. 특히 시각적 언어 및 시각 지식 표현 분야의 권위자로, 알파벳의 역사, 인쇄 문화의 역사, 실험 타이포그래피, 시각시 등의 연구에 중점을 두어 활동했다.
캘리포니아미술공예대학(현 캘리포니아미술대학)에서 학사학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엔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의 문헌정보학 교수로 지내며, 미국철학학회(APS)와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AAA&S)의 회원이기도 하다.
하버드대학교 미술 분야의 멜런 교수 펠로, 스탠퍼드대학교 인문학센터의 디지털인문학 펠로,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의 디지털문화 펠로이며, 예일대학교 바이니키도서관(Beinecke Library)의 첫 인문학 연구원 시니어 펠로를 지냈으며, 풀브라이트와 게티 등 수많은 기관에서 펠로십을 받았다.
그가 만든 책 형식을 띤 미술작품인 ‘아티스트 북’은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여러 박물관 및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2012~2013년에는 그가 40년간 진행한 프로젝트 및 연구물을 소개하는 순회 회고전 《드럭워크스(Druckworks)》를 열었다.
저서로는 『다이어그램처럼 글쓰기』 『시각화와 해석(Visualization and Interpretation)』 『일리아즈드(Iliazd)』 『디지털 인문학 강좌(The Digital Humanities Coursebook)』 등이 있다.
역자 : 최성민
최슬기와 함께 ‘슬기와 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지은 책으로 『누가 화이트 큐브를 두려워하랴 그래픽 디자인을 전시하는 전략들』(최슬기 공저, 작업실유령, 2022), 『재료: 언어 김뉘연과 전용완의 문학과 비문학』,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299개 어휘』(김형진 공저, 작업실유령, 2022), 옮긴 책으로 『리처드 홀리스, 화이트채플을 디자인하다』(작업실유령, 2021), 『멀티플 시그니처』(최슬기 공역, 안그라픽스, 2019), 『왼끝 맞춘 글』(워크룸프레스, 2018), 『레트로 마니아』(작업실유령, 2017), 『파울 레너 타이포그래피 예술』(워크룸프레스, 2011), 『현대 타이포그래피 비판적 역사 에세이』(작업실유령, 2020) 『디자이너 란 무엇인가』(작업실유령, 2020) 등이 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친다.
역자 : 최슬기
계원예술대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와 시각디자인을 가르친다. 2022~2023년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제7대 회장을 역임했다. 역서로 『다이어그램처럼 글쓰기』 『트랜스포머』가 있다.
최성민과 최슬기는 ‘슬기와 민’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하는 그래픽디자인 팀으로, 공저로 『누가 화이트 큐브를 두려워하랴』 『작품 설명』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 공역으로는 『멀티플 시그니처』가 있다.
목 차
머리말 7
1 알파벳은 언제 ‘그리스 문자’가 되었는가? 15
2 신이 내린 선물―원조 문자, 모세, 시나이산 석판 49
3 중세의 사자생―마법 자모, 신화 문자, 이국 알파벳 75
4 언어 혼란과 문자 총람 111
5 고유물 해설―문자의 기원과 발전 149
6 표의 수사법과 알파벳의 조화 185
7 근대 고고학―알파벳 관련 증거에 제자리 찾아 주기 223
8 초기 알파벳 해석하기―금석학과 고문자학 267
9 알파벳 효과와 문자의 정치학 315
덧말 알파벳의 동력과 전 지구적 헤게모니 347
주 361
참고 문헌 389
옮긴이의 말 401
찾아보기 407
출판사 서평
지성사·문화사 최초
학문의 대상으로서 ‘알파벳’을 탐구하다
고대 그리스 역사와 신화적 구성물, 성서의 해석에서부터
물증 조사, 고고학·고문자학·금석학·지리학적 연구법과
현대의 프로그래밍언어, 영숫자표기법, 디지털 미디어 분석까지
수 세기를 관통하는 전 지구적 문자의 정치학
★ 비교언어학·고전학·고유물학·종교학·동양학……
역사적·예술적 가치 지닌 도판 122컷 수록
책과 인쇄 문화, 시각예술과 현대미술 분야에서 실험적이고 심도 있는 프로젝트를 주도한 조해나 드러커(UCLA 문헌정보학 교수)는, 40여 년간 ‘문자의 역사’ ‘실험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해 온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역사가이다. 드러커의 연구물은 전 세계 디지털 인문학 분야의 연구자, 예술가, 문화평론가 들에게 널리 인용되고 있으며, 대중적으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문화적·사회적 역할을 이해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해나 드러커는 미학과 디지털 인문학 분야 권위자로서 지난 40년 연구 결과물을 응축해 『알파벳의 발명(Inventing the Alphabet: The Origins of Letters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필로스 시리즈 29번)을 펴냈다. 이 책은 고고학·고문자학·금석학·지리학적 접근을 통해 알파벳의 기원과 발전 양상을 추적하고, 미학적 관점에서 언어의 시각적 형태를 탐구해 전자의 연구를 뒷받침하며, 디지털 인문학적 접근으로 현대의 언어 체계(프로그래밍언어, 유니코드, 영숫자표기법)로 분석을 확장해 나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술 연구자’이자 ‘예술가’로서 다음 두 가지 독특한 관점을 취한다.
첫째, 예술 연구자로서 주류 학계의 수많은 주요 논쟁점을 일괄하고, 산발되어 난해한 문헌을 물적 증거로 체계화해 해석함으로써 기존 서구권이 취해 온 문자의 배타성과 일원성에 맞서 다원성·혼종성·포용성의 증거를 추적한다. 이는 철저한 과학적 연구 방법을 통한 것으로 알파벳의 “탄생(genesis)” 혹은 “발견(discovered)” 신화를 불식하는 일이기도 하다.
둘째, 예술가로서 ‘문자사의 역사학(historiography)’과 ‘알파벳의 역사라는 주제에 관한 정치사 및 정신사’ 측면에 연구의 방점을 두며, 다음 질문을 던진다. “알파벳에 관해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알아냈는가?” “이러한 지식이―글, 그림, 명문(銘文), 또는 유물을 통해―획득된 방식은 알파벳 서자(書字)의 정체와 기원을 ‘인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저자의 이러한 메타인지 관점의 접근은 문자사 연구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며 신비로운 사색을 위한 비옥한 분야”라는 위상을 부여하는 기제가 된다.
위 두 관점으로서 저자는 다음 명제를 도출한다. “알파벳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알파벳을 대상으로 삼는 지식생산 양식을 통해 발명된 것이다.” 저자는 열띤 견해로 이루어진 논쟁점이 다분하며 서로 충돌되는 지점이 있는 문헌(고고학자, 고문자학자, 금석학자, 고전학자, 비교언어학자, 역사언어학자, 종교학자, 성서학자, 동양학자, 셈어학자, 룬 문자학자, 마소라 서기관, 고유물 연구자 들의 연구물)을 폭넓게 조망하여 학술적 가치가 높은 진귀한 도판 122컷을 제시해,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사유의 길을 연다.
또한 연구자들 각각이 지닌 맹점과 편견을 살펴, 현재의 위치에서 알파벳의 역사적 가치와 정치사적 위상을 세운다. 저자의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인류의 ‘사고방식’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서양 사상사’ ‘지성사’ 연구와 직결된다.
4000년 문자사의 역사학
― 문자는 언제 어디에서 나타났는가
『알파벳의 발명』은 ‘4000년 알파벳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지성사·문화사 최초의 설명을 제공한다. 알파벳을 처음 역사적으로 언급한 헤로도토스를 기점(기원전 440년경)으로는 2500년의 역사를 다루었으며, 이 책의 1장 「알파벳은 언제 ‘그리스 문자’가 되었는가」에서 그 경위에 대해 설명한다. 문자 초기의 모습인 기원전 2000년대 초 미노스문명의 선문자 A와 기원전 1600년경 그로부터 파생된 선문자 B에서부터(18~19쪽, 1장), 본질적으로 알파벳이 지식생산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 때인 2000년대 후반 비교적 표준화된 알파벳 문자인 선형 페니키아 문자가 티레, 비블로스, 시돈과 같은 해안 도시 문화의 일부로서 작용한 점을 저자가 짚는바(223~224쪽, 7장 「근대 고고학」), 다시 말해 이 책은 4000년을 관통하는 전 지구적 문자사를 다룬다.
‘알파벳의 역사’는 현재 상당히 정확하게 연구된 결과물이 있지만, ‘알파벳의 역사학’은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저자는 4000년의 문자사 중에서도 근본적으로는 ‘알파벳의 역사학’을 다룬다. 알파벳이라는 ‘관념’을 구축한 인용, ‘사자(寫字)’, ‘전파의 계보’를 추적하는 문헌 연구 성격을 띤다. 이는 서양 사상의 역사와 연관해서도 매우 중요하고 매혹적인 사례연구가 된다. 지식생산과 전파의 물성이 어떻게 지적 개념을 낳는지 통찰해 주기 때문이다.
알파벳의 문화사, 알파벳의 문자성의 정치학
― 알파벳은 어떻게 전 세계로 확산했는가
― 어떻게 전 지구의 의사소통을 떠받치게 되었는가
저자는 역사적 과거와 연관해 사물의 계보를 수립하기 위해 고고학 연구법으로 접근한다. “증거물의 성질이 역사적 주장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고대(미케네와 미노스문명, 고대도시 테베, 고전기 그리스 등)의 초기 문자 체계부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알파벳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문화 속에서 알파벳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알파벳의 문화사’에 관한 지식을 결합한다. 알파벳의 발명이 인류의 ‘사고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미친 영향에서 나아가 알파벳의 신경학적·생리학적 효과(“유전자·문화 공진화론”, 로버트 로건, 데릭 드 커코브, 이반 일리치의 연구, 334~335쪽)까지 나아가고 다른 문화를 ‘젠더화’해 규정하는 데(레너드 실레인의 고대 문화 알파벳의 분석, 342~343쪽)까지도 다다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논의를 ‘알파벳 문자성의 정치학’에 이르는 탐구로 확장한다.
“지식의 탈식민화가 학술 대화 주제로 익숙해진 현재 학계에서는 알파벳을 중립적인 기술로 생각하는 일이 더는 용인되지 않는다. 분명히 알파벳 자체는 복잡한 문화 체계이고, 알파벳의 동력은 얼마간은 도구적이고 얼마간은 우연적이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사용되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표준법은 표준을 따르는 쪽보다 정하는 쪽에 힘이 실리는 비대칭적 정치구조의 일부가 된다. 어떤 양식을 띠든 문자성은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박탈하기도 한다. …… 지식과 상상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일에서 알파벳이 차지하는 역할과 역사적 위상은 우리 인간성의 상당 부분을 해치지 않고서는 지워 버릴 수 없을 것이다.”(348쪽, 덧말 「알파벳의 동력과 전 지구적 헤게모니」)
인간의 발명품 중 최고의 불가사의를 탐구하는, 흥미로운 지적 여정
― 플라톤의 상상, 카발라 사상, 오컬트 지식체계, 신비주의적 문자에서 근대 연구법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다음의 사실인 “모든 알파벳 문자는 같은 원시 셈 문자에서 유래해 유럽, 아라비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너머로 확산되고, 그러면서 시각적으로 그리스·키릴·타밀·버마·발리·로마·타이 문자 등으로 분화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인용·연구하며 각 시기와 지적 틀에서 조응해 온 신념을 짚는다. 또한 오해가 형성되는 과정 또한 지식생산과 전파가 일어나는 긴 역사의 한 일부임을 간과하지 않는다.
초창기 알파벳사 서술에서 알파벳을 ‘탄생된 것’ 혹은 ‘신의 선물’이라 여기며, 무려 2000년 동안 영적 또는 종교적 신념 체계에서 알파벳은 우주론과 연결되어 반신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알파벳의 기원을 “신의 손가락에, 별들이 쓴 글에, 시나이반도를 방랑하던 유대인에게, 이집트의 신 토트(테우트)에게, 페니키아인에게” 돌리는 등 신화와 부분적인 사실이 뒤섞여 있었음을 방대한 문헌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앞선 예들처럼 알파벳의 기원을 구명한 역사 지식은 당대에 알려진 증거, 그 증거와 결합된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고, 이는 현재의 정설 수립에 이바지한 지적 유산이 되었음을 역설한다. 플라톤은 이집트에서 문자가 발명되었다고 주장하며, 문자의 기원을 이집트 신 토트의 업적으로 돌리며 더욱 다면적인 언어 발전 개념을 소개했다(26쪽). 이집트의 공헌은 플라톤이 상상한 대로는 아니지만 현재 통용되는 정설에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알파벳 문자에 신성한 힘을 부여하려는 욕망은 카발라 사상(판 헬몬트 남작의 연구, 59쪽)에서 중심을 이룬다. 저자는 이들 신념 체계가 ‘알파벳이라는 원동력의 심오한 힘’을 인식하고 살피려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헬레니즘 세계의 다른 신비주의 전통인 그리스의 문자 개념을 복잡한 우주 질서와 연결한 영지주의와 피타고라스 상징 등에서도 공유하는 특징이었다.(76쪽, 3장 「중세의 사자생」)
또 알파벳은 오컬트 지식체계(암호술, 마법 문자, 고대 헤르메스주의에서 나온 상징체계, 트리테미우스가 심취한 분야), 신비주의적 문자(천상 발달꼴 히브리 문자, 강 건너기 문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저자는 빌럼 후레이와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저작물의 사례에서 보듯, 신화적 문자와 실존 문자를 혼합하는 관행은 이들의 출간물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맥락의 시각 정보(표)가 도입된 것을 기점으로 사라졌음을 특기한다.(200쪽, 6장 「표의 수사법과 알파벳의 조화」)
이들의 시각 정보 도입으로 오컬트와 밀교 문헌 밖의 ‘천상 문자’ ‘마법 알파벳’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음을 말하며, 16~17세기(불완전한 문자 표 형태)와 18세기(합리적인 비교연구법의 표 형태, 언어 연구에서 보다 높은 정교성을 띠게 된 시점), 두 시기 연구법의 차이에 대해 짚는다. 저자는 이 변화의 시점에 금석학적 연구법이 있었음을 논한다.(269쪽, 8장 「초기 알파벳 해석하기」)
이국땅을 찾아가 “폐허, 바위, 기념비 등 고대 유물에 새겨진 명문을 읽고 해독하려 애쓰던 용감한 여행가들의 호기심”이 풍부한 자료적 가치를 함의한 그리스 라틴 명문이 17세기에 들어서야 ‘형태와 유형을 다루는 연구’로서 체계화되었음을 밝힌다. 금석학은 고고학적 발견에 힘입어 18~19세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분야로 20세기의 프랭크 무어 크로스가 “형태를 보는 안목”이 기초적으로 수반되어야 함을 말하며 찬양한 학문이다.
문자 연구는 역사 지식, 성서고고학, 언어학적 식견이 모두 중요하지만, 이 금석학(혹은 고문자학)이 밑바탕을 이루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를 통해 “체계화된 글자 유형분류법”에 따른 지역적 연구가 가능하며, 역사를 구체화할 수 있었음을 제시한다. 이는 민족주의와 관련되었다. 민족마다 독특한 뿌리가 있다는 생각, 이와 아울러 문화정체성에 맞게 고유한 문자나 언어가 발명되었다는 생각은 18세기의 학문적 유행이었다. L. D. 넬름의 『언어와 문자의 기원과 요소를 연구하기 위한 시도』가 바로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저작이다. (180~181쪽, 5장 「고유물 해설」)
알파벳의 동력, 전 지구적 헤게모니
― 근대 실증과학 연구법에서 현대적 이해에 이르기까지
정리하면, 이 책은 알파벳의 역사에 대한 ‘현대적 이해’에 기여한 잘 알려지지 않은 학자들의 면면을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과 함께 세부적으로 밝혀낸다. 저자가 언급하는 연구자들 중 주요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
흐라바누스 마우루스(이스테르 알파벳 옹호),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최초의 주요 인쇄본 총람 『다중 표기학』 출간), 테세오 암브로조(『칼데아어 개론』 내 다양한 언어 부록 저술), 안젤로 로카(표본 일람표, 그래픽 범례 활용한 문자의 형태 중심 배열), 토머스 애슬(문자 창조 설화 일축, 『문자의 기원과 발전』 내 페니키아, 히브리, 사마리아 문자의 상호 연관성 강조), 에드먼드 프라이(문자의 포괄적, 절충적 컬렉션 제시한 『만유문자』 출간), 찰스 포스터(알파벳의 기원을 보는 성서의 시각, 이성적 원리에 따른 포괄적 시각 종합한 총람 표 제작), 아이작 테일러(알파벳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보여 주는 증거 제시), 프랭크 무어 크로스(알파벳 형성에 이바지한 제 문자의 발전 분석), 요세프 나베(그리스 비문과 알파벳의 여러 발전 단계를 비교하는 연구), 르네 데롤레즈(룬 문자의 계보, 학술 전통의 특기), 벤저민 세스(금석문학자로서 『알파벳의 탄생과 발전』 내 실증적 접근법과 연계한 미적 속성을 띤 표 제작), 빌레메인 발(고고학, 금석학, 언어학 증거 종합해 문자 전파 연대 제시).
조해나 드러커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5권의 핵심 구절에서의 언급(카드모스와 페니키아인의 선물인가), 구약성서에서의 기록(문자는 신이 모세에게 내려 준 선물인가)으로 시작해, 실증과학이 표준 연구법으로 정착한 근대에 이르는 주요 논쟁을 추적하며 현대적 개념에 이른다.
고대부터 전해진 코드가 전 지구적 체제인 컴퓨터 미디어와 디지털 통신망에 통합되어 있음을 역설하며, 기계적 디지트와 비트로 이루어진 이진코드 바로 위 단계에서 영숫자표기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짚는다. 알파벳 기호의 이 집요한 체계는 “동시대 전 지구 네트워크에서, 심지어 알파벳을 쓰지 않는 언어권에서도 동력을 행사한다”라는 것이다.
알파벳은 오늘날 표준에 따라 정보와 지식을 조직하는 방법으로서, 알파벳 서자의 정체성이 ‘내구성(endurance)’과 ‘다용성(versatility)’의 특징을 지녔다고 분석한다. 전 지구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알파벳은 표준에 의지하는 탓에 여러 수준의 인프라스트럭처에 서구적 편견을 불어넣는 지대한 헤게모니 체제의 필수 요소가 된다. 즉, 이 도구적 동력은 동시대 삶에서 알파벳 문자성의 정치학을 명백히 보여 준다.
이 능동적 동인을 논하기 위해 저자는 루서 마시(Luther Marsh)의 애니미즘 이론에 기반한 독특한 전망을 인용한다. 진화가 인간에서 끝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고 밝힌 마시의 맺음말에서, “길고 긴 생명의 알파벳에서 우리의 XYZ였던 것이 이제는 우리의 ABC가 되었습니다”라며, 그는 자모 조합에 끝이 없음을 찬양하고 “즉시 취하지 못하는 조합이란 없으며 수행하지 못하는 거동도 없습니다”라고 낙관했다. 이를 두고 조해나 드러커는 독창적이고 독특하지만 정곡을 뚫는 통찰임을 언급한다.
이는 현대 문자의 동력에 대한 통렬한 묘사인 것이다. 컴퓨터가 등장하며 알파벳의 근본 정의를 이해하는 새로운 준거틀이 나타나며, 기호와 부호 들이 이제는 인코딩된 정보교환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시스템의 바탕을 이루는 심벌세트인 것이다. 저자의 논의는 문자의 시각적 정체성, 열린집합(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연구)으로의 성질, 유니코드의 정체성(디지털 캐릭터 코드)에 대한 측면을 개괄하며, 인간 지식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측면을 언급한다. “우리는 여전히 알파벳을 발명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책이 기념비적 가치를 지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파벳의 역사를 구명하려는 저자의 연구는 어떻게 시기마다 알파벳을 새롭게 ‘발명’했는지에 대한 의의를 상기하게 하며, ‘서양 사상사’ ‘지성사’ ‘문화사’ ‘문자성의 정치학’ ‘디지털 인문학’ 연구를 통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