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안고도 세상을 환히 들여다본 한 사람의 뜨거운 몸부림
화제의 작가 조승리의 소설 데뷔작 출간!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로 2024년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였던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조승리가 첫 소설집 『나의 어린 어둠』을 출간했다. 실명을 앞둔 청소년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네 편의 연작소설과 창작기를 담은 에세이 한 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부드럽고 무른 감정과 마디마디 단단해지는 자의식이 담긴 한 시절의 복합적인 지형을 훌륭하게 담아내는 새로운 소설가의 탄생을 알린다.
모든 화자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랑, 진로, 자존감 등의 균열을 겪는다. 시각장애인들이 가정에서 겪는 폭력이나 특수학교의 풍경도 그려 보인다. 무엇보다 살아가야 한다는 감각, 장마가 내려쳐도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듯 살아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실제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정제하고 분열시켜 허구로 빚어낸 이 소설들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든다. 모든 인물이 조승리 같지만, 어느 누구도 조승리 그 자체는 아니다. 『나의 어린 어둠』은 그렇게 “조승리들”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독자 각자의 자전으로 이어진다. ‘무엇을 잃었는가’보다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내는가’를 비추는 이 어둠은, 고요하지만 뜨거운 빛을 품고 있다.
저자 소개
저자 : 조승리
여름을 좋아합니다. 강렬한 태양의 광휘를, 장맛비의 운치를 사랑합니다. 여름의 향기를 품은 생기 가득한 소설을 쓰겠습니다. 2023년 샘터 문예공모전 생활수필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집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산문집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로 2024년 알라딘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산문집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을 쓰고, 단편소설 앤솔러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에 참여했습니다.
목 차
네가 없는 시작
내 안의 검은 새
브라자는 왜 해야 해?
나의 어린 어둠
소설가가 되었다 _에세이
추천의 글 _윤성희, 이길보라
출판사 서평
“호박 부침개를 먹으며 속없는 농담을 하다 보면
어둠은 영원히 ‘어린’ 상태로 남을 것만 같았다.”_윤성희
“부장님이자 새댁 행세를 하는 소녀이자 엄마 품이 가장 포근한
10대 조승리, 그다음은 무엇이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_이길보라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에서 소설가로,
조승리라는 세계의 탄생
“나는 캄캄한 눈으로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내놓겠다고 다짐한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에서 장애와 일상을 유쾌하면서도 뼈 있는 언어로 담아내며 ‘2024 올해의 신인’이라는 주목을 받은 조승리 작가가, 첫 소설집 『나의 어린 어둠』으로 돌아왔다. 전작 에세이에서 의도적으로 비워두었던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동한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실명을 앞둔 십대의 시선에서 출발해, 자립과 생존의 경계에 선 청년기의 시간을 통과하는 연작소설집은, 시각장애라는 고유한 경험을 당사자의 언어로 풀어내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보편성과 문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어린 어둠’을 지나면서도 자신만의 불꽃을 여실히 지켜냈던 작가는, 소설이라는 도구를 통해 삶을 다시 들여다보며 독자와의 새로운 대화를 시작한다.
『나의 어린 어둠』은 네 편의 연작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연작소설은 실명을 앞둔 중학생이 겪는 첫사랑, 특수학교에서의 기숙사 생활, 부모와의 충돌, 냉혹한 사회 앞에서의 좌절 등 “조승리들이 살았을 법한 순간들”을 펼쳐 보인다. 이 이야기들은, “작가를 둘러싼 외부 세계와 작가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내부 세계가 합쳐지는 순간” 만들어진 문학적 자화상들이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며, 살 수밖에 없는 현실
성장과 상실의 아름다운 교차점
“그만 울고 우리 집 넘어가 수박이나 썰어 먹자고.
수분을 다 빼냈으니 그만치 또 채워야 기운이 나지.”
『나의 어린 어둠』의 연작소설들은 상실의 예감과 마주한 인물들이 삶을 받아안는 방식을 그린다. 「네가 없는 시작」의 화자는 실명 판정을 앞두고 선배 ‘너’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 감정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너’의 회피로 끝내 단절된다. “네가 나만큼 망가지면 당당히 네 옆에 있을 수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고백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자신을 ‘망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비틀림, 절망이 느껴진다. 상실은 감각의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내 안의 검은 새」에서는 자식을 포기하는 아버지, 부정당하는 진로와 자립, 낯선 도시에서 겪는 좌절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가족에게서도, 사회에서도 버림받은 듯한 순간에 화자는 “쫓겨난 것처럼 기분이 처참”하다. 실명은 감각의 상실일뿐 아니라, 관계의 파열과 불확실한 미래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체험인 것이다.
그러나 조승리의 인물들은 모든 상실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특수학교 진학을 결정하거나, 폭력적인 관계를 끊고 서울을 떠나보는 등 현재를 새로운 기점으로 전환하는 인물들의 의지가 돋보인다. 표제작 「나의 어린 어둠」의 마지막 장면은 어린 인물의 내면에 깃든 역동적인 기류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소나기처럼 예고 없이 들이닥친 실명 이후에도, 주인공 성희는 빗속에서 자전거를 타듯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예감한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장마의 시작”인 것이다.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모두 성장기의 한복판에 있다. 흔들리는 감정과 선택의 기로들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구축한다. 「브라자는 왜 해야 해?」의 화자는 특수학교에서 ‘부장님’이라 불릴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지만, 자신이 돌보는 부희 언니를 향해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 지역 초등학생들과 트램펄린을 두고 벌어진 갈등을 겪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거리감을 체감하지만, “그림자만 보면 불구 몸뚱이도, 구질구질한 가난도 표가 나지 않는 다 똑같은 그림자”라는 생각에도 다다른다. 이처럼 『나의 어린 어둠』은 상실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의 세계를 재건축해 가는 이야기다.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세계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결국 독자에게 질문을 건넨다. 나는 지금, 어떤상실을 견디고 있는가. 그 안에서 어떻게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삶에서 추출한 픽션, 픽션이 된 삶
우리 모두의 자전이 되는 이야기
“지숙의 얼굴엔 두려움과 절망, 막막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어쩌면 내 얼굴도 누군가에겐 저렇게 보일까.”
연작소설의 화자들은 모두 ‘조승리’처럼 느껴지지만, 서로 완전히 동일한 인물은 아니다. 실명을 앞둔 상황, 관계의 균열, 사회와의 거리감 같은 공통된 정서와 조건을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시기의 감정과 욕망을 품고 있다. 이는 하나의 완결된 자아로 자전적 이야기를 통합하기보다는, 분화되고 어긋나며 모순되기까지 한 여러 개의 자아를 병렬적으로 보여주며 도리어 진실을 드러내려는 시도다.
작품들은 픽션인 동시에 에세이 같고, 때로는 르포르타주처럼 생생하다. 허구적 설정이 삽입된 소설이지만, 인물들은 실존적 질감으로 다가온다. 그 모든 것이 작가가 통과해 온 시기와 감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소설과 에세이, 자전과 창작의 경계를 나누는 질문은 이 책 앞에서 무력해진다. 작가는 이러한 분류를 우회하며, 소설이라는 공간 속에서 삶을 관찰하고 기억한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건 조승리의 이야기야’라고만 말할 수 없게 된다. “조승리들”의 이야기이며, 나아가 우리 각자의 자전이 된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배치된 에세이 「소설가가 되었다」는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던 조승리의 연대기를 그리고 있다. 최초의 이야기는 세상을 향한 저주의 말 대신 적기 시작한 콩트였다. 장애학교와 사회를 거치며 두 눈에 들어온 부조리들을 공책에 차곡차곡 남겼다. 작가는 스무 살 안마사 생활을 시작하며 점자 단말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뒤 아무것도 쓸 수 없던 시기를 지나, 가슴이 텅 빌 때까지 고여 있는 이야기들을 몽땅 쏟아내기까지. 앞선 네 편의 소설이 시점을 달리한 자아의 스냅샷이라면, 이 에세이는 그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목소리로 응답하는 작가의 현재인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에게 ‘삶에서 추출된 픽션’과 ‘픽션이 된 삶’이 만나는 서사적 경계를 체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