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과 수치심에 맞서는 부서지고 휘어진 불구의 몸들
“우리가 망가져 있음을 수용하고 주장하고 포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프면 나아지기 위해 병원에 가듯, 크고 작은 사고를 겪은 뒤 이전의 상태를 찾으려고 애쓰듯,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장애를 가진 사람 역시 장애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상태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여긴다. 하지만 『눈부시게 불완전한』의 저자이자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인, 시인, 장애 및 트랜스 활동가인 일라이 클레어는 이렇게 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 장애가 없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전작 『망명과 자긍심』에서 장애인, 노동계급, 퀴어, 트랜스젠더라는 다중적인 정체성을 바탕으로 교차성 정치의 사유를 보여준 일라이 클레어의 신간 『눈부시게 불완전한』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일라이 클레어의 다중적인 정체성은 “뇌성마비”, “정신분열”, “젠더 정체성 장애”라는 진단명과 ‘치유’에 뿌리내린 정상성에 도전한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자신의 몸을 고쳐져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제도, 문화, 가치 체계를 낱낱이 해부하는 한편, 트랜스젠더로서 자신이 원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치유와 얽히고 치유를 갈망하며 길어 올린 빛나는 통찰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담아냈다.
장애를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의 몸과 마음을 주장하고,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에 저항하고, 자신이 가진 몸과 마음의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눈부시게 불완전한』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으로 포착할 수 없는 다양한 몸과 마음의 차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는 정치를 모색해 간다. 시러큐스대학교의 여성·젠더학과 및 장애학 프로그램 부교수 김은정의 〈해제〉는 한국 사회의 장애와 퀴어, 돌봄에 대한 담론에 이 책의 메시지가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 상세히 안내한다. 요컨대 이 책은 의사 조력 사망이 존엄한 삶과 죽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사회에 “의존과 삶에 대한 전혀 다른 상상”을 불어넣을 것이다.
작가정보
상세이미지
저자 소개
저자(글) 일라이 클레어
인물정보
현대시인>영미작가
(Eli Clare)
일라이 클레어(1963~)는 백인이자 장애인이며 젠더퀴어다. (버몬트라고 알려진) 아베나키족 영토의 챔플레인 호숫가에 살고 있다. 장애, 퀴어, 여성, 환경 등의 복잡한 교차를 다루는 책 『망명과 자긍심』(1999)을 썼고, 15년간 쓴 시들을 묶은 시집 『골수의 이야기: 움직이는 말들』(2008)을 펴냈다. 그 외 다수의 학술지와 선집에서 집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시인이자 스토리텔러, 사회정의 교육자이기도 한 저자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의 대학, 콘퍼런스, 커뮤니티 행사 등에서 강연, 교육, 상담 등을 해왔다. 현재는 트랜스젠더법률센터 장애 프로젝트의 커뮤니티 자문위원단으로 일하고 있으며, 포드재단과 앤드루W.멜론재단의 지원을 받는 장애 미래 펠로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평화운동의 일환으로 미국 대륙을 걸어서 횡단하거나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퀴어 장애 컨퍼런스를 발족하는 데에 기여하는 등 활동가로
서의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목 차
서론
차례
읽기 전에
◇스트로브잣나무
1장 | 치유라는 이데올로기
◇경련과 떨림
2장 | 치유라는 폭력
◇단풍나무
3장 | 치유와 공모하는
◇돌
4장 | 치유의 뉘앙스
◇소라껍데기
5장 | 치유의 구조
◇소라게
6장 | 치유가 작동하는 법
◇구르기
7장 | 치유의 한가운데
◇배롱나무
8장 | 치유를 누비기
◇드랙퀸
9장 | 치유의 영향
◇생존 노트
10장 | 치유의 약속
◇자전거 타기
감사의 말
해제
옮긴이의 말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내가 망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단순한 진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1장 치유라는 이데올로기, 25쪽
우리가 세계에 보급한 코미디와 시, 행위 예술, 격렬한 액티비즘, 야한 영화, 중요한 사유, 좋은 대화, 즐거움을 생각한다.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의 특정한 몸-마음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장애가 없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2장 치유라는 폭력, 57쪽
나는 진단을 때로는 믿을 만하고 때로는 의심스러운 지식의 한 가지 원천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유용할 때도 있지만 위험할 때도 있는, 특정 신념 체계가 빚어낸 도구이자 무기로. 사방으로 힘을 뻗치는 맹렬한 폭풍으로.
3장 치유와 공모하는, 79쪽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 정상적인 것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게는 실로 안갯속에 있는 문제다. 누가 당신의 오돌토돌한 보랏빛 피부를 부자연스럽다고, 내 떨리는 손을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걸까?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그런 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는 걸까?
4장 치유의 뉘앙스, 101쪽
만일 가능하기만 하다면, 회복은 상실에 대한 대책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구의 안녕에도 기여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훼손은 비가역적인 것이다. 어떤 생태계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회복하는 데 몇 세기가 필요한지 알 수 없고, 어쩌면 벌어진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망가진 것을 고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4장 치유의 뉘앙스, 108쪽
그 어떤 기술도 치유 이데올로기의 완벽한 본보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이데올로기는 갖가지 도구들에 달라붙어 있다. 이 행성만큼이나 오래된 것부터 과학의 최첨단을 달리는 것까지.
5장 치유의 구조, 147쪽
뇌성마비를 치료해 줄 가상의 약을 먹겠느냐고 묻는 비장애인들은 실로 다양한 층위의 환상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뇌성마비에는 그런 기술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망한 치료법 후보가 있는 유방암이나 당뇨, 자폐와는 달리 만들어지고 있지도 않다. 이러한 질문은 장애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데 초점을 맞춘 사고실험에 지나지 않는다.
6장 치유가 작동하는 법, 155~156쪽
우리는 평화로이 지낸다. 수용한다. 축하한다. 내려놓는다. 자긍심을 찾는다. 애매모호함을 받아들인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연민과 극복을 거부한다. 공동체를 구축하고 고립에 익숙해진다. 상호 의존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아주 높은 생산성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몸-마음에 관해 아는 바를 주장한다. 상실과 자긍심의 균형을 맞추는 법을 배운다. 좌절과 고통과 씨름한다. 나는 장애를 주장하는 일을 규정하고 싶지 않다. 때로 그것은 적극적으로 장애를 선택하는 일과, 또 때로는 장애를 기피하는 일과 겹친다. 이 일에는 종종 모순이 섞여든다.
8장 치유를 누비기, 229쪽
정신지체는 중간에 빠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혐오 표현이라는 형태로 나를 따라다닌다. 뇌성마비는 나의 부모가 치유를 탐색하는 동안 나를 찾아냈다. (…) 정신분열로부터는 가까스로 도망쳤다. 목소리를 듣고 환영을 보는 것이 본질적으로 나쁘거나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진단이 동반하는 의학적 치료와 사회적 상황이 때로 끔찍했으므로, 탈출했을 때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젠더 정체성 장애의 경우, 나는 능동적으로 그것을 찾아냈다.
8장 치유를 누비기, 246쪽
그러나 나는 우리가 더 멀리 갔으면 한다. 『DSM』 자체를 해체하는 일, 이상disorder과 결함이라는 개념을 폐기하는 일, 백인 서구의 진단 너머에 있는 의료 기술에 접근하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일을 상상했으면 한다. 그렇다, 나는 반란을 제안하고 있다.
8장 치유를 누비기, 252쪽
치유는 회복력과 생존을, 균열·틈·이음매 사이의 거미줄을 외면한다. 우리 중 망가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바로 그 점에서, 치유의 약속은 힘을 갖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다. 우리가 우리의 망가져 있음을 수용하고 주장하고 포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9장 치유의 영향, 280~281쪽
손으로 가슴팍을 훑고, 셔츠 핏을 보며 마음에 들어 하고, 내 피부 안에서 한없이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지난날의 자기의심이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지속한 일평생의 투쟁을, 젠더화되고 섹스화된 몸-마음을 재형성하기 위해 이용한 의료 기술과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까? 나는 조금 더 지저분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
10장 치유의 약속, 301쪽
부치 다이크에서 백인 남성으로 사는 젠더퀴어로 차츰 이행해 온 과정은, 이상disorder을 치유하거나 망가짐을 고치는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차라리 욕망이나 편안함의 문제에 더 가까웠다. 트랜지션은 문이었고, 창문이었고, 짙푸른 하늘이었다.
10장 치유의 약속, 306쪽
나는 치유의 약속이 열어젖힌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욕망의 소리를 들었으며 몸-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나는 젠더 이분법 안에서 더 편하게 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지금의 내가 풀밭에서 연을 날리던, 자신이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아홉 살의 나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치유하지 않았다. 치유할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힘들이 나를 밀치며 통과해 376간다.
10장 치유의 약속, 3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