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속에서 문학으로 지켜낸 민족혼
독립운동을 주도한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1950년 한성도서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수록!
인도에 타고르가 있다면 한국에는 만해 한용운이 있다!
문학의 감성을 일상에 더하는 특별한 키링북 출간!
최신 무삭제 완역본으로 구성된 『초판본 님의 침묵』이 미니미니 키링북 형태로 재탄생했다.
또한 이 미니미니북은 pvc 커버 키링 형태로 제작되어 가방, 파우치, 열쇠 등에 달아 감성적인 포인트 아이템으로 활용 가능하다. 작은 책 속에서 매일 삶의 위로와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물용으로도 추천한다.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인으로 활동한 한용운은 시인으로서 창작 활동 또한 활발히 했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본인 만해(萬海) 한용운은 1926년 첫 시집 『님의 침묵』을 발표했다. 1926년 회동서관에서 초판을 펴낸 후, 1934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재판을 펴냈다. 이번 더스토리에서 발행한 초판본 『님의 침묵』은 1950년 한성도서 초판본 오리지널 표지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하여 제작했다. 본문은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한글맞춤법에 맞게 수정했지만 시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원문을 최대한 살렸다. 간혹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나 어려운 한자어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주를 달아 설명했다.
이 책에는 책의 제목인 〈님의 침묵〉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최초의 님〉, 〈당신을 보았습니다〉 등 90편의 시가 실려 있다. 대부분 불교적 비유와 상징적 수법으로 쓴 서정시들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민족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시 〈님의 침묵〉은 은유와 역설을 뛰어나게 구사했으며, 정형적인 틀을 벗어난 산문적 개방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내재율을 드러내고 있다.
섬세한 언어로 이별의 정한과 그 속에서 다시 만날 희망을 통해 민족의 아픔을 위로했으며, 불굴의 투지로 실천적 민족의식을 보여준 한용운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저자 소개
저자 : 한용운
(韓龍雲, 만해, 한유천)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목 차
님의 침묵 / 이별은 미(美)의 창조 / 알 수 없어요 / 나는 잊고지 / 가지 마셔요 / 고적한 밤 /
나의 길/ 꿈 깨고서/ 예술가 / 이별 / 길이 막혀 / 자유정조(自由貞操) / 하나가 되어 주서요 /
나룻배와 행인(行人) / 차라리/ 나의 노래/ 당신이 아니더면/ 잠 없는 꿈/ 생명 / 사랑의 측량 /
진주(眞珠)/ 슬픔의 삼매(三昧) / 의심하지 마셔요 / 당신은 / 행복 / 착인(錯認) /
밤은 고요하고 / 비밀/ 사랑의 존재 / 꿈과 근심/ 포도주 / 비방 / “?”/ 님의 손길 / 해당화 /
당신을 보았습니다 / 비 / 복종 / 참아 주셔요 / 어느 것이 참이냐 / 정천한해(情天恨海) /
첫 ‘키스’ / 선사(禪師)의 설법 / 그를 보내며 / 금강산 / 님의 얼굴 / 심은 버들 /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 참말인가요 / 꽃이 먼저 알아 / 찬송(讚頌) /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 / 후회 / 사랑하는 까닭 / 당신의 편지 / 거짓 이별 /
꿈이라면 / 달을 보며 / 인과율 / 잠꼬대 / 계월향에게 / 만족 / 반비례 / 눈물 / 어디라도 /
떠날 때의 님의 얼굴 / 최초의 님 / 두견새 / 나의 꿈 / 우는 때 /
타고르의 〈GAROENISTO〉 시를 읽고 / 수(繡)의 비밀 / 사랑의 불 / ‘사랑’을 사랑하여요 /
버리지 아니하면 / 당신 가신 때 / 요술 / 당신의 마음 / 여름밤이 길어요 / 명상 / 칠석(七夕) /
생(生)의 예술 / 꽃싸움 / 거문고 탈 때 / 오셔요 / 쾌락 / 고대(苦待) / 사랑의 끝판 /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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