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가 도달한 생물학적 SF의 정점
제노제네시스Xenogenesis 3부작 마침내 국내 최초 완역!
허블에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제노제네시스(Xenogenesis) 3부작’의 첫 작품인 『새벽』이 출간되었다. (이후 후속작인 『성인식Adulthood Rites』과 『이마고Imago』도 차례로 출간될 예정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여성 작가라는 정체성을 마주하며 혹은 이를 뛰어 넘나들며 인류의 본질을 가장 예리하게 파고든 거장이다. 그는 『킨』, 『블러드 차일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등의 대표작을 통해 인종, 성별, 계급이 얽혀 발생하는 권력의 위계를 철저히 해부하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윤리에 관해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여러 걸작 중에서도 특히 지금 국내 최초로 번역해 선보이는 ‘제노제네시스 3부작’은 이러한 버틀러의 사유가 도달한 가장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지점이자, 생물학적 SF의 정점이라고 평가받는다. 다른 작품들이 주로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위계를 날카롭게 포착해 왔다면, 이 시리즈는 그 논의의 단위를 아예 생물학적 존재 양식 자체로 과감히 이동시켜 인간성을 질문하고 재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제목인 ‘제노제네시스’는 ‘이종(異種)’을 뜻하는 ‘Xeno-’와 ‘기원’을 의미하는 ‘Genesis’의 합성어로, 부모 세대와 완전히 다른 자녀 세대가 나타나는 현상을 뜻하며, 이종 창세(創世)로 풀이된다. 핵전쟁으로 자멸한 인류의 폐허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외계 종족 오안칼리는 인류를 멸종 위기에서 건져 올려 유전적 융합을 요구하는데… 『새벽』은 낯선 외계 존재와 섞여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포스트휴먼의 창세기를 그려낸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이 책을 통해 낯선 존재와의 공생, 규정할 수 없는 퀴어함, 그리고 서로에게 깊숙이 침투하는 얽힘을 보여주며 혐오와 단절의 시대를 건너는 우리에게 절실한 연결의 감각과 공존의 윤리를 가장 낯선 방식으로 일깨운다.
상세이미지
저자 소개
저자 : 옥타비아 버틀러 (Octavia E. Butler)
194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패서디나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동안 어머니가 일터에서 가져다주는 헌책과 잡지를 읽으며 이야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열 살 때 어머니를 졸라 얻은 휴대용 타자기를 두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낮에는 공장 등에서 임시직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 전문대학에 다니며 꾸준히 글을 쓴 버틀러는 유명한 SF 작가이자 편집자인 할란 엘리슨에게 권유받아 클라리온 SF 작가 워크숍에 참석했고, 첫 단편을 상업 잡지에 팔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마침내 1976년 첫 장편 소설 『패턴마스터The Patternmaster』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 경력을 시작한 버틀러는 이후 『킨』과 『블러드차일드』, 『와일드 시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같은 작품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이전까지 엘리트 백인 남성 작가들이 주도하던 20세기 SF계에서 흑인 여성 작가인 버틀러가 인종과 젠더, 환경, 사회 역학 같은 주제를 탐구하며 써낸 소설들은 SF의 새 지평을 가리키는 이정표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21세기 들어 차별과 혐오가 극단화된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새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버틀러는 휴고상과 네뷸러상, 로커스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SF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이른바 ‘천재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재단 펠로십을 수상했다. 2006년 2월에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타계했다. 2021년 2월, 미 항공우주국은 인류 상상력의 지평을 넓힌 버틀러의 공로를 기리고자 화성 탐사 로봇 퍼서비어런스호가 착륙한 지점을 ‘옥타비아 E. 버틀러 착륙지’로 이름 지었다.
역자 : 장성주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를 거쳐 지금은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리말로 옮긴 책에 『종이 동물원』,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제왕의 위엄』, 『파워 오브 도그』, 『모나 리자 오버드라이브』, 『별도 없는 한밤에』, 「다크 타워」 시리즈, 『산산조각 난 신』,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의 자유로 가는 길』, 『오컬트, 마술과 마법』,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언더 더 돔』, 『워킹 데드』, 『아돌프에게 고한다』, 『표류교실』 등이 있다. 『종이 동물원』으로 2019년 제13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목 차
1부 자궁
2부 가족
3부 육아실
4부 훈련장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옥타비아 버틀러가 도달한 생물학적 SF의 정점
마침내 국내 최초 완역!
“버틀러는 나의 사이보그 이론가다. 그는 인간이라는 개념의 경계와 한계를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심문한다.” _도나 해러웨이(철학자)
“이 소설은 로맨스처럼 관능적이며, 코즈믹 호러처럼 무섭고, 철학서처럼 심도 깊다.” _김보영(소설가)
"SF 역사상 '타자'에 대해 가장 창의적이고 급진적으로 탐구한 3부작." _《로커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버틀러는 이 시대가 마주해야만 하는, 가장 절실하고도 서늘한 기록을 남겼다.” _마거릿 애트우드(소설가)
“우리는 왜 똑똑하면서도 이토록 어리석은가?”
인류세, 잡종성의 윤리, 퀴어, 미래의 공동체에 대한 질문
인류가 자멸한 폐허 위
낯선 외계 존재와 섞여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가장 끔찍한 구원이자, 가장 매혹적인 종말
포스트휴먼 창세기
“살아 있다!
아직 살아 있다.
살아 있다… 이번에도.
늘 그렇듯, 각성은 힘들었다.” _11쪽
기이한 우주 함선 안에서 깨어나는 릴리스. 이미 지구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후다. 약 250년 만에 눈을 뜬 릴리스가 마주한 것은 문도 창문도 없는 방, 그리고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목소리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명으로 선택된 릴리스는 곧 자신을 구한 존재들을 마주하게 된다. 온몸을 덮은 예민한 촉수로 세상을 감지하는 외계 종족, 오안칼리. 그들은 인류를 멸종 위기에서 건져 올린 구원자를 자처하지만, 그들의 그 선의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우주를 떠돌며 마주치는 생명체들과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변화시키는 존재들이라고 설명할 뿐.
오안칼리는 인류를 다시 지구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인류의 근간을 뒤흔드는 기묘한 결합을 요구한다. 이 독특한 관계성 속에는 오안칼리의 세 번째 성별, 울로이가 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울로이는 양성 사이를 중재하며 생명의 질서를 다루는 존재들. 릴리스는 울로이를 통해 인간의 감각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경계의 확장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이 그들의 손에 의해 조금씩 변형되는 과정에 몸서리치게 되는데….
“그것이 두 사람과 함께 빚은 강력한 삼중 결합은 오안칼리식 삶의 방식에서 가장 이질적인 특징이었다. 그 결합이 이제는 그들의 인간적인 삶의 방식에도 없어서는 안 될 특징이 된 걸까?” _392쪽.
『새벽』은 릴리스가 겪는 서늘한 긴장감과 압도적인 몰입감의 페이지 터너로서, 강력한 서사적 재미를 선사한다. 더불어 이 작품의 진짜 힘은 40년 전의 상상력이 2025년 현재에 이르러 가장 뜨겁고 적실한 문학적 의의를 획득한다는 점에 있다. 인류세와 기술적 특이점 이후의 윤리를 선제적으로 다루는 이 소설은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가 많이 참조했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바, 오늘날 변화하고 변이하는 인간성을 되묻는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공생과 혼종, 그리고 이질적인 타자와 어떻게 한 몸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생물학적 시뮬레이션을 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았다.
옮긴이의 말
『새벽』은 사회의 비주류였던 흑인 여성 릴리스가 핵전쟁 이후 태초의 원시 상태로 돌아간 지구를 무대로 삼아 신뢰할 수 없는 외계인 무리와 폭력성을 억제하지 못하는 인간 무리 사이에서 양 진영을 조율하며 두 번째 창세創世의 새벽을 열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책의 결말 부분에서 이미 확인했듯이, 그 준비 과정은 조지프의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다만 버틀러는 그러한 파국을 수습할 실마리가 ‘연민’이라는 점 또한 책 속에서 함께 제시하고 있다. 릴리스는 목숨이 위태로워진 니칸지를 구하기 위해 동료 인간들에게 외계인의 끄나풀로 오해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알몸이 되어 니칸지 곁에 나란히 눕는다. 오안칼리에게 약물을 주입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인류와 오안칼리를 가르는 선을 넘은 것이다. 이는 진정한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 인류와 오안칼리의 최초 접촉이다. 나중에 릴리스가 인간 선발대가 지구로 떠난 사실을 감춘 니칸지의 행동 또한 자신이 니칸지를 위해 나섰을 때와 같은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방향을 넌지시 알려주는 단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인류와 오안칼리 사이에 태어난 새로운 종은 부모 세대의 장점을 골고루 물려받은 최선의 모습으로 등장할까? 『새벽』의 결말에서 릴리스가 오안칼리들과 함께 남으며 되새기는 각오(‘배워서 달아나요’)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다음 이야기는 이책의 후속편인 『성인식』과 『이마고』에서 릴리스가 낳은 아이들을 통해 계속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은 지구를 넘어 화성으로까지 넓어진다. _장성주(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