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 반납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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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67354930
쪽수 : 264쪽
아미노 요시히코  |  글항아리(문학동네)  |  2018년 0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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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오래된 책을 찾아 자박자박, 첫번째 책. 한 역사학자가 빌린 고문서들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독특한 소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큰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1945년 패전 후 일본 정부는 전국 농어촌에 잠들어 있던 고문서를 대량으로 수집해 사회사 자료관을 세우고자 했다. 매우 야심찬 의욕이었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계획은 곧 좌절되고 만다. 연구원들은 제각기 먹고살 길을 찾아 흩어졌고 빌려온 문서들은 방치됐다. 저자인 아미노 요시히코는 1년간 이런저런 일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고등학교 교사로 취직했는데, 어느 날 자신이 '문서 도둑'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골 마을을 돌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문서를 빌릴 때는 6개월이나 1년 안에 꼭 반납하겠다고 말했지만, 이건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 더 이상 누를 끼치지 말자고 다짐한 아미노는 18년에 걸쳐 고문서 반납 여행에 나서게 된다. 실제로 문서를 빌리는 일은 1949년에 시작돼 몇 년간 이어졌고 반납이 완료된 것은 1998년이니, 문서 주인들은 50년 만에 책을 되돌려받은 셈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쉽지 않았을 고문서 반납 여행. 아미노는 문서 제공자와 이를 빌려간 이들의 실명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학자들과 정부의 지난 과오를 밝히고자 이 책을 써나간다. 처음 여행을 떠나는 심정은 '두려움'이었다. 어떤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게 될지…… 게다가 어떤 문서는 쥐가 파먹어 가느다란 끈처럼 변해 있었고, 일부 문서는 행방이 묘연해져 찾을 수 없었다. 1967년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으니 문서를 대출한 지는 어언 20년이다. 마음 한켠이 지옥 같았던 지난날의 짐을 과연 내려놓을 수 있을까.
저자 소개
저자 _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 1928년 야마나시현 출생. 역사가. 1950년 도쿄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재단법인 일본상민문화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사회과학연구회, 부락해방연구회 등의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1967년부터 나고야대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1980년에는 가나가와대학 경제학과 및 가나가와 단기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일본상민문화연구소 재건에 노력하는 한편 서양사 연구자들과 함께 계간지 『사회사 연구』를 창간했다. 1993년에 가나가와대학 대학원에 개설된 역사민속자료학 연구과 교수로 일하다 1998년 정년퇴임했다.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유산이 된 ‘아미노 사학’의 기둥 가운데 하나는 비농업민 연구다. 그는 농업 중심의 사학을 넘어 해민사海民史 중심의 중세사를 내세운 대표적인 학자다. 다양한 비농업민(어민, 산민, 상인, 직공 등)의 존재와 활동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일본 역사 연구의 시야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연구는 또한 문화인류학·민속학을 통해 역사에 접근하는 등 학제간 장벽을 허물고 기존 상식에 꾸준히 의문을 제기했다. 단일민족론과 일국一國 사관, 농경민·정주민·천황을 중심으로 한 기존 일본의 역사상도 철저히 재검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런 업적은 프랑스 아날학파나 미국의 일본 연구자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지은 책으로 『일본의 역사를 새로 읽는다』 『몽골 침략』 『일본 중세의 민중상』 『무연·공계·악』 『중세의 풍경』 『이형의 왕권』 『일본 사회의 역사』 『일본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역자 _ 김시덕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학부와 석사를 거쳐, 일본의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 자료관(총합 연구 대학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교수로 있으면서 인간 정신과 행동의 근본에 자리한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전쟁의 기억이 담긴 문헌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일본에서 출간한 첫 저서 『異國征伐戰記の世界 ─ 韓半島·瑠球列島·蝦夷地』(笠間書院, 2010)로 30년 넘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 고전 문학 학술상>을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수상해 한일 양국 학계를 놀라게 했다. 2015년 제5회 <석헌 학술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일본의 대외 전쟁』(열린책들, 2016)이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 『임진왜란 관련 일본 문헌 해제-근세편』(2010, 도서출판 문) 『그들이 본 임진왜란』(2012, 학고재), 『교감 해설 징비록』(2013, 아카넷),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2015, 메디치 미디어) 등이 있으며, <전쟁의 문헌학>에 관한 저서를 매해 출간하고 있다.
목 차
옮긴이의 글 들어가며 제1장 웅대한 꿈이 좌절되다 제2장 가깝고도 먼 한반도 ― 쓰시마 제3장 가이후와 호수의 세계 ― 가스미가우라?기타우라 제4장 바다의 영주 ― 후타가미 가문과 후타가미섬 제5장 오쿠노토 지역과 도키쿠니 가문 조사 제6장 오쿠노토 지역과 도키쿠니 가문에서 배운 것 제7장 한신대지진으로 사라진 고야마 가문 문서 ― 기슈 지역 제8장 리쿠젠 지역 여행 ― 게센누마와 가라쿠와 제9장 아베 요시오의 일생 제10장 사도와 와카사 지역의 어촌 문서 제11장 전화위복 ― 빗추 지역 마나베섬 제12장 반납 여행의 끝 ― 이즈모·도쿠시마·중앙수산연구소 맺으며 주註
출판사 서평
패전 후 일본 정부는 시골 마을들에서 고문서를 대량으로 빌렸다 하지만 국책 사업은 곧 해산! 문서는 방치됐고 문서를 빌린 이들은 ‘도둑’으로 몰렸다 아미노 요시히코는 빚을 갚고 누명을 벗고자 고문서 반납 여행에 나선다 이 책은 한 역사학자가 빌린 고문서들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독특한 소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큰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1945년 패전 후 일본 정부는 전국 농어촌에 잠들어 있던 고문서를 대량으로 수집해 사회사 자료관을 세우고자 했다. 매우 야심찬 의욕이었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계획은 곧 좌절되고 만다! 연구원들은 제각기 먹고살 길을 찾아 흩어졌고 빌려온 문서들은 방치됐다. 저자인 아미노 요시히코는 1년간 이런저런 일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고등학교 교사로 취직했는데, 어느 날 자신이 ‘문서 도둑’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골 마을을 돌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문서를 빌릴 때는 6개월이나 1년 안에 꼭 반납하겠다고 말했지만, 이건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 더 이상 누를 끼치지 말자고 다짐한 아미노는 18년에 걸쳐 고문서 반납 여행에 나서게 된다. 실제로 문서를 빌리는 일은 1949년에 시작돼 몇 년간 이어졌고 반납이 완료된 것은 1998년이니, 문서 주인들은 50년 만에 책을 되돌려받은 셈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쉽지 않았을 고문서 반납 여행! 아미노는 문서 제공자와 이를 빌려간 이들의 실명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학자들과 정부의 지난 과오를 밝히고자 이 책을 써나간다. 처음 여행을 떠나는 심정은 ‘두려움’이었다. 어떤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게 될지…… 게다가 어떤 문서는 쥐가 파먹어 가느다란 끈처럼 변해 있었고, 일부 문서는 행방이 묘연해져 찾을 수 없었다. 1967년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으니 문서를 대출한 지는 어언 20년이다. 마음 한켠이 지옥 같았던 지난날의 짐을 과연 내려놓을 수 있을까. 앞뒤 재지 말고 일단 빌리고 보자 일본의 유서 깊은 집안에는 에도 시대의 문서들이 찬장, 선반, 장롱, 서랍, 궤짝 안에 잠들어 있다. 가늘고 긴 책 상자는 바닥부터 덮개까지 빼곡하며 오래된 가옥의 후스마(장지문)나 병풍 뒷부분에는 고문서가 덧대어져 있다.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이런 옛집은 빠른 속도로 허물어졌고 그 과정에서 넝마 같은 문서는 불에 타고 버려졌다. 고문서라면 사냥개 같은 후각을 가지고 달려드는 눈 밝은 연구자들에게 한 사회의 기초가 되는 이들 자료가 사라지는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어떤 마을은 어르신들 중심으로 공용문서를 잘 보관하고 있었지만, 어떤 곳에서는 순식간에 불쏘시개가 되어 사라졌다. 정부는 패전 이후 일본상민문화연구소를 발족해 예산을 배정한다. 이 연구소 가운데 스키시마 분실은 우노 슈헤이치가 수장이 되어 꾸려졌다. 그는 고문서에 대해서라면 천재적일 만큼 뛰어난 감각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분실은 일단 5개년 계획으로 10여 명의 상근 연구원을 채용했고, 이 책의 저자 아미노 요시히코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수장인 아미노는 실력과 가능성을 겸비한 학자였지만, 당시만 해도 풋내기였던 저자를 비롯한 몇몇 연구원은 마음의 준비나 목표도 없이, 근세·근대 문서를 해독할 능력과 경험도 없이 이 사업에 휘말려 들어갔다. 다섯 팀으로 나뉜 연구원들은 각자 맡은 지역을 돌면서 앞뒤 재지 않고 문서를 대량으로 빌렸다. 특히 1951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연구자들은 가스미가우라·기타우라 호수 주변을 중심으로 한 이바라키현의 문서 조사·수집에 매달렸다. 가령 세 명의 연구원이 사흘간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덟 건의 문서를 빌리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아미노가 특별히 이 지역 문서 수집에 열정을 기울인 것은, 짐작건대 서일본의 비와호와 쌍벽을 이루는 동일본의 호수로서 이 지역의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사업 2년 차. 쓰키시마 분실에는 서서히 위기감이 찾아들었다. 6개월에서 1년 안에 문서 정리를 마치고 반납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몇몇 연구원이 깨달은 것이다. 1953년,수장 우노를 향한 비판과 불신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연구소의 역량과 상관없이 무조건 빌려오는 방침은 계속됐고, 더욱이 임금은 제자리인 데다 먼지 가득한 연구실에서 건강보험도 없이 폐결핵에 걸리는 연구원도 생겨났다. 그런 와중에도 시골 마을의 고문서들은 그 귀중한 가치로 여전히 매력을 발산해 저자는 문서 대출 작업을 적극적으로 이어가기도 했다. 이처럼 무모하고 파탄이 예고된 계획을 밀어붙이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여기는 이들로 인해 연구소의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파탄과 좌절은 곧 현실이 되었다. 1954년, 마침내 연구소에 대한 예산은 중단된 것이다. 문제는 빌려온 문서의 처리였다. 당시 일본상민문화연구소는 해체되면서 수산청 수산자료관으로 계승되는 모양새를 띠었지만, 채 옮겨지지 못하고 남은 자료만 해도 최소 100만 점. 이 문서들은 사과상자에 담겨 우노가 새로 몸을 담게 된 도쿄여자대학 강당 뒤편 창고에 산처럼 높이 쌓여졌고, 세월은 그대로 계속 흘러갔다. 대범하게 빌려와 안이하게 처리하다 저자는 연구원 직을 잃고 1년 뒤 고등학교 선생이 되었다. 바쁜 교사생활 중 이따금 문의 전화가 왔는데, 그건 낯 뜨겁게도 과거 빌려간 문서들이 왜 반납되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약간의 예산을 배정받아 몇몇 문서는 반납을 완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결되지 못한 빚은 여전히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저자 자신이 빌린 문서뿐 아니라 우노 슈헤이치와 외부 연구원이었던 미야모토 쓰네이치, 아베 요시오 등이 빌린 문서에 대한 반납 재촉도 저자인 아미노한테 들어왔다. 설상가상으로 우노는 암에 걸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저자는 찔끔찔끔 빚을 갚아나가다가 마침내 재직하던 나고야대학을 그만두고 일본상민문화연구소를 인수해준다는 가나가와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쓰키시마 분실의 잔무 처리에 본격적으로 임하게 된다(좋은 직장을 버리고 좀더 낮은 대학으로 옮긴 것은 연구소를 인계해준 데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함이었다). 당시 빌려온 고문서들을 가나가와대학에 모아놓고 보니, 그중 다 부서져가는 종이 상자에 들어 있는 문서가 눈에 띄었다. 그건 우노 선생 댁 창고에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열어보니 빗추 지역 마나베섬의 문서였다. 살아생전 우노 선생에게 이 문서를 빨리 반납해달라고 재촉했던 저자는 순간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왜 이토록 많은 문서를 자기 집에 가져다놓은 걸까, 반납도 하지 않고…….’ 물론 저자의 잘못도 있었다. 생활에 쫓긴다며 자기 두 눈으로 반납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아베 요시오는 평소 사람 좋고 순박하기로 이름났다. 그 역시 단고 지역과 기슈 지역에서 대량의 문서를 대출한 적이 있는데, 저자는 아베가 빌려간 문서도 반납해달라는 연락을 여러 군데서 받게 된다. 아베의 느긋한 성격이 이런 데까지 발휘된 것일까. 하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소장자들은 속이 얼마나 타들어갔을까. 그는 같은 연구원으로서 아베의 이런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대범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너무 안이한 것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아베의 부고가 갑자기 날아들었다. 슬퍼하는 것도 잠시, 난제는 독신으로서 하숙생활을 하던 그의 집에서 문서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의 자택에서는 열 상자 분량의 고문서가 발견됐고, 그가 근무하던 릿쇼대학에서는 양복 상자 하나 분량의 문서를 수거했다. ‘아베 선생은 왜 이렇게 집에다 문서들을 갖다놓은 것일까.’ 저자는 머릿속으로 되뇌인다. 저자는 아베의 족적을 밟으면서 ‘정말로 사람이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료를 깊이 있게 읽고 학문적으로 엄격하고 면밀한 자세를 추구한 그가 고문서를 반납하지 않고 그리도 태연했던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나는 이 정도로 큰 괴리를 보인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다’며 저자는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이것은 배신행위였습니다, 미안하지만 이제야 돌려드립니다” 물론 일본상민문화연구소 연구원들의 작업은 엄청난 열정과 끈기를 요하는 작업이었다. 특히 벌레 먹어서 방망이처럼 딱딱해진 수십 통의 문서를 대나무 주으로 살살 벗겨 펼쳐서 목록 작성을 하는 것은 웬만한 성실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목표해두었던 작업 일정은 자꾸만 뒤로 미뤄지는 가운데 넝마 같은 조각을 한 점 한 점 정성스레 봉투에 담는 작업은 허무하고 쓸데없는 노력인 것만 같아 마음이 여러 번 흔들리기도 했다(하지만 이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고 이는 나중에 빛을 발하게 된다). 뼈아픈 실수도 했다. 고문서를 발굴한 기쁨에 창고에서 꺼내는 데 열중하다가 보존 상태를 기록하지 못했고, 출처를 엄밀히 분류하지도 못했다. 한번 위치를 이동시키면 그 문서의 내력은 온데간데없이 실종되는데 말이다. 어쨌든 과거의 열정이 까마득한 기억이 되어버린 1967년. 뉘우치는 심정으로 나선 첫 반납 여행의 목적지였던 쓰시마. 저자는 심한 질책을 들을 거라며 단단히 각오한 채 마을의 담당 연구관을 찾아갔다. 하지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여태껏 문서를 가져갔다가 되돌려주러 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이것은 미담이자 쾌거입니다.” 한숨 돌리게 된 저자는 그러나 문서를 반납하지 않는 것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듣자 하니, 고문서를 몇십 년 동안 대출해줬다가 겨우 돌려받은 가문들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 이후로는 문서를 공개하는 데 매우 신중해졌다고 한다. 문서를 빌려준 이나 반납하러 간 저자나 피차간에 머리숱이 적어져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 가문의 어르신은 “몇십 년 전 소중한 문서를 빌려간 젊은이가 아직도 돌려주지 않았다”며 한탄을 했다.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그 한탄의 대상은 마음 아프게도 바로 저자 자신이었다. 그동안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세월, 저자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문서를 돌려드리고자 사죄의 발걸음을 하게 된다. 고문서가 바꿔놓은 학문세계 고문서 수집과 필사 작업은 단순노동이 아니었다. 연구원들은 공부 모임을 조직해 문서 한 점 한 점을 소리 내어 읽고 상세히 해독하는 것을 7~8년간 지속하기도 했다. 문서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저자를 비롯해 연구원들은 기존 사관에 커다란 빈틈과 왜곡이 있음을 처절히 깨달아나간다. 특히 아미노는 자신이 청년 시절 실증적 사료를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연구가 아닌, 이념적 운동 차원에서 써내려간 글을 혐오하며 학자로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령 농업과 토지 소유의 진전이야말로 사회의 진보라 여겼던 그의 상식은 근본부터 무너져내렸다. 특히 오쿠노토 지역과 도키쿠니 가문의 문서를 조사하면서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결정적으로 바뀌었다. 즉 ‘사농공상’은 완전히 허구적인 개념이며, 사회의 실상을 크게 잘못 보도록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임을 깨닫게 된다. 농업을 우선시하는 흐름 속에서 호숫가 주민들의 생활이 퇴화하기도 했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감에 따라 역사 기술이 왜곡됐던 것이다. 아미노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사학계에서 ‘아미노 사학’을 형성하게 된다. 아미노 사학의 기둥 가운데 하나는 비농업민 연구다. 농업만을 가지고는 역사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어민, 산민, 상인, 직공들의 존재를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그는 피지배층을 주목함으로써 새로운 역사관을 확립해갔는데, 즉 권력은 다른 무엇보다도 주변부, 변경, 저변 민중을 장악했다는 역설을 제시하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은 문서 한 점 한 점이 한 사람의 역사관과 한 국가의 역사관을 바꿔나가는 과정을 밝힐 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고문서를 다루는 이들에게 자성의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당신은 문서를 정직한 과정을 거쳐 입수했고, 선입견 없이 해석하고 있는지? 문서 소장자의 진심을 알아주고는 있는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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