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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딘성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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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딘성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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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59312267
쪽수 : 280쪽
전진성  |  책세상  |  2018년 0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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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베트남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우리사회의 역사적 매듭을 풀어내는 중요한 기회이다. <빈딘성으로 가는 길>은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가 주도한 기억의 왜곡과 강요된 망각, 과도한 국가주의, 인간 경시 풍조, 사회정의의 부재를 드러낸다. 대한민국의 파병은 대체 누구를 돕기 위함이었나?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한국에서는 전쟁 특수만을 강조할 뿐,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은 안중에 두지 않았고, 파월장병 또한 어느 곳에서도 주역으로 평가받지 못했고,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베트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어쩌다 태극기를 들었을까? 특히 이 책은 사과하고 용서받는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윤리학적인 차원과 역사적 사례를 교차해 설명하면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파월장병들의 역사적 위치를 자각하게 해준다. 과거를 연구하는 역사가의 입장에서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진실의 다면성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고루 담아내는 이 책은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는 전쟁시대의 우리 아버지들과 베트남전쟁을 현재의 사건으로 여기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잇는 새로운 역사 인식의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전진성 부산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훔볼트대학교 역사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독일 현대 지성사 및 역사이론으로, 최근에는 문화사와 인권사 등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2003년부터 인권단체 아시아평화인권연대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서독 구조사학 연구』(독어본)『보수혁명: 독일 지식인들의 허무주의적 이상』『박물관의 탄생』『역사가 기억을 말하다』『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원폭2세 환우 김형률 평전』『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 등이 있다.
목 차
여는 글: 아픈 과거로 떠나는 여행 1장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서 베트남전 전사자 박순유 중령 맹호부대 안케패스 전투 베트남 민족의 고난과 한국군 운명의 장소 2장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이 땅의 냉전 역사적 전환점 영웅의 탄생 고삐 풀린 폭력 3장 떠도는 혼령들 양민과 베트콩 사이에서 고통의 기억, 기억의 고통 울부짖는 과거 타인의 죽음 앞에서 4장 국가는 내게 무엇인가?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나 훌륭한 국가란 존재하는가 국가의 기억과 몸의 기억 파월용사의 상처받은 육체와 영혼 5장 사과와 용서 가해자의 얼굴 미안해요, 베트남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악연을 인연으로 맺는 글: 망자에 대한 의무 감사의 글 - 참고자료
출판사 서평
“빈딘성은 우리를 애달프게 부르지만 아무리 달려가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세상의 이름이다” 빈딘성, 아픈 과거로 떠나는 여행 베트남 중남부 해안에 자리 잡은 역사의 고장 빈딘성. 한자로 표기하면 ‘평정平定’. 그 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이 지역은 예부터 군사적 충돌이 잦았다. 1965년 10월 22일 한반도를 떠나온 맹호부대가 빈딘성의 한적한 농촌마을 빈안사에 상륙했다. 그리고 곧 세상에 어둠이 깔렸다. 1966년 1월 23일에서 2월 26일까지 이곳은 말 그대로 맹호부대에 의해 ‘평정’되었다.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가축이 도륙되고 모든 가옥이 불태워졌다. 살아남은 마을주민들은 더 이상 이곳을 ‘평안平安’을 뜻하는 ‘빈안’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로부터 50년이 지난 2016년 2월 26일, 학살이 일어난 이곳에서 위령제가 열렸다. 비장하고 구슬픈 애도의 노랫소리 속에서 한 한국인 여성이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위령비 앞에 서 있었다. 시민사회활동가 박숙경 씨. 그 또한 이곳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맹호부대 소속의 정보통역장교였던 고 박순유 중령, 그는 정찰임무를 수행하다가 매복해있던 베트콩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 역사적 부침이 심했던 곳, 악연으로 얽힌 이곳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원래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까? 베트남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우리사회의 역사적 매듭을 풀어내는 중요한 기회이다. 현재까지 많은 학자와 언론에서 베트남전쟁이 왜 발발했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천착했다. 그리고 많은 자료들이 발굴되고, 전쟁 피해자들과 참전군인들의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자만 있을 뿐, 여전히 가해자는 진실의 물음에 응답하고 있지 않다. 《빈딘성으로 가는 길: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기억과 약속을 찾아서》는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이 전쟁의 상처와 기억을 처리해온 방식을 살펴보면서 국가가 주도한 기억의 왜곡과 강요된 망각, 과도한 국가주의, 인간 경시 풍조, 사회정의의 부재를 드러내고자 한다. 최근까지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에 관한 많은 연구가 참전의 배경과 과정, 영향 등을 정치, 외교, 경제 등의 거시적 측면에서 살펴보는 데 집중했다면, 이 책은 비운의 역사를 풀 주체로서 참전군인이 스스로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권유하면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모색하고자 하는 실천적 성격이 강하다. 특히 가해자로서의 참전군인들이 왜 베트남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지, 과연 사과하고 용서받는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윤리학적인 차원과 역사적 사례를 교차해 설명하면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자신들의 역사적 위치를 자각하게 해준다. 물론 단순히 가해와 피해의 구도로 전쟁을 물을 수는 없다. 저자 전진성 교수는 과거를 연구하는 역사가의 입장에서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진실의 다면성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고루 담아내며 한국사회에 한겨울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워진 저마다의 뼈아픈 역사의 기억들을 불러낸다. 무엇보다 저자가 참여하는 아시아평화인권연대와 연대하여 과거의 악연을 새로운 인연으로 만들고자 한 박숙경 씨 가족의 경험과 몇몇 참전군인과 그들의 가족 사례를 소개하며 과거의 악연이 어떻게 새로운 인연으로 역전될 수 있는지, 어떻게 상처를 부활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 책은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는 전쟁시대의 우리 아버지들과 베트남전쟁을 현재의 사건으로 여기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를 잇는 새로운 역사 인식의 유의미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파월장병과 그 가족들이 베트남전 참전의 의미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재고해볼 것을 권유하는 취지로 집필되었다. 피땀을 바쳐 조국을 지켜냈다는 자랑스러운 기억에서 잠시만이라도 벗어나 전혀 다른 관점에서 펼쳐내는 이야기를 인내심을 갖고 경청해주시길 바란다. 어두운 과거를 조명하는 이 책이 아무쪼록 그분들께 모욕감을 일으키지 않고 평소의 생각을 곱씹어보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좀 더 넓은 사회적 대화의 장에 나오실 수 있기를 기대한다. 평생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홀로 가슴 깊숙이 어두었던 아픔을 이제는 조금이라도 털어내셔야 하지 않겠는가. 가해와 피해의 당사자들이 스스로 나서지 않는 한 과거사의 얽인 실타래는 결코 풀릴 수 없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반성은 그저 굴욕일 뿐이다.” (본문 272쪽) 베트남전쟁, 역사적 진실의 소로 앞에서 한반도보다 훨씬 오랜 세월 동안 베트남은 식민지의 억압과 설움을 겪어왔다. 19세기에 프랑스가 강점하여 식민지를 만든 이래로 일본이 점령했다가 다시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의 식민지배가 되풀이되자 항불독립전쟁으로 이어지고, 미국의 개입으로 남북이 갈라지게 된다. 북부는 호찌민H? Ch? Minh을 중심으로 한 항불독립운동가들이 주도세력이 되었고, 남부는 일본이 만주에서 부이를 내세워 괴뢰정권을 만든 것처럼 후에를 중심으로 옛 베트남 황제 바오다이를 왕조로 세웠다. 초대 대통령 응오딘지엠Ng? Ð?nh Di?m은 열렬한 반공주의자로 미국의 지지를 받았고, 그 뒤 군사정권의 역대 대통령이 모두 프랑스 식민지 군대의 장교 출신들이었다. 정권 초기부터 반민중·반민족적이었던 남베트남 정권은 폭압과 부패로 이어졌으며 이 때문에 남쪽의 자유주의적 지식인과 항불전쟁 당시의 독립운동가 들이 주축이 되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하고 투쟁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모든 서방의 논문과 언론기사들이 지적하듯이 베트남전쟁은 100년에 걸친 ‘베트남민족해방전쟁’이었으며 프랑스 제국주의의 직접 지배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간접 지배에 대한 베트남민족의 ‘저항전쟁’이었다. 다시 말해 베트남전쟁은 흔히 ‘베트콩’으로 불리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북베트남의 조력을 받으며 외세 및 그 부역자들과 싸운 통일전쟁이었다. 미국이 베트남의 진로에 개입하여 전쟁까지 치르면서 내세운 유일한 명분은 공산주의 확장을 저지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이 공산화된 마당에 베트남마저 공산화되면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 동남아 전체가 손쉽게 공산주의 진영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소위 ‘도미노 이론’이야말로 미국의 모든 군사개입을 정당화하는 근거였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싸잡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고 죽음의 공포를 조장했다. 공산주의라는 적은 미국의 패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베트남전이 종식되자마자 곧바로 베트남과 중공 간에 군사적 충돌이 빚어졌던 사례가 입증해주듯이, 베트남 통일은 공산주의의 확장보다는 외세의 축출과 주권 쟁취에 주안점이 있었다. 따라서 심지어 미국의 동맹국들마저 이처럼 명분 없는 군사개입에 동참하기를 꺼렸던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파병은 대체 누구를 돕기 위함이었나? 대한민국의 파병도 베트남이 적화되면 한반도가 자동적으로 위험해진다는 단순논리를 내세웠다. 당시 GNP가 남한의 1.7배에 달하던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대단히 실제적이었다. 원조물품을 시장에 내다 판 돈으로 겨우 세출예산을 세우던 가난한 나라, 구호물자가 부족해서 봄에는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인구가 태반이던 대한민국은 여러모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드디어 1964년 미국이 파병을 요청하자 대한민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맹국 최대의 파병으로 화답했다. 전투병만 해도 미국의 여타 우방인 뉴질랜드의 100배에 달하는 병력이었다. 파병의 대가로 박정희 정권은 중화학공원단지 건설을 위한 미국의 원조를 요청했다. 부국강병을 위한 군산복합체의 구축을 염두에 둔 것이다. 경제적 실익은 파병의 부산물이 아니라 근본사유, 처음부터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금전을 얻어냈던 것이다. “베트남 파병을 옹호하는 논리는 대체로 귀를 막고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제일 먼저 강조되는 논리는 동아시아의 세 나라, 즉 한국, 타이완, 그리고 남베트남이 공산세력과 대치하던 자유민주주의의 최전선이었으므로 북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안보사안이었고, 더욱이 한국의 참전은 1953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 조항에 따랐다는 점에서 법적 정당성마저 갖추었다는 것이다. 꽤 그럴듯한 논지만 사실은 기본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한 나라가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 공격받은 나라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진 다른 나라들이 원조해 공동으로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집단적 자위권은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이나 미국을 공격했다면 성립하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쟁의 도화선이 된 통킹만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에 비하면 차라리 한국전쟁 때 수많은 미군이 피 흘려 우리나라를 지켜준 데 대한 보답이라는 논리가 그나마 인간적 감정에 호소한다.” (본문 161쪽) 베트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어쩌다 태극기를 들었나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베트남 파병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도약대였다. 파월장병에게 지급된 전투수당과 각종 군사장비, 미국과 남베트남에 대한 수출 증가, 국내 기업과 노동자들의 베트남 진출 등 각종 전쟁 특수는 대한민국의 경제력을 전례 없이 상승시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가중심적 사고가 대부분의 국민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왜 우리나라 국민의 애국심은 그토록 남달랐는가. 왜 사람의 목숨보다 나라의 안위를, 경제적 실익을 더 중시했는가. 《빈딘성으로 가는 길》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기억의 왜곡을 초래한 대한민국의 정치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인한 전쟁 특수만을 강조할 뿐,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은 안중에 두지 않았고, 파월장병 또한 어느 곳에서도 주역으로 평가받지 못했고, 피해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파월장병 다수가 우경화한 것은 개별적, 집단적 경험의 차원과 그것의 정치적 재현 간의 심각한 비대칭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책의 설명이다. 파병군인들이 전쟁 속에서 점했던 위치는 패전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토록 목숨을 다해 싸운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그들 자신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정녕 전쟁의 주역이었다면 왜 분통해하지 않았는가? 베트남전에 대한 기억에 있어서도 그들은 국가의 논리에 두말없이 순응한다. 즉 해외파병을 통해 엄청난 실익을 얻었으므로 파병은 옳은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엄청난 외화와 더불어 우리도 해외에 나가서 우방을 도와줄 수 있다는 자부심을 얻었고 결국 이러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중동으로, 더 넓은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패전했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 이러한 논리는 전쟁터에서 목숨과 젊음을 잃어버린 이들을 도외시하는 철저히 국가중심적인 기억방식이다…. 국가가 그들을 버렸어도 철저히 국가를 따랐다. 순수한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별다른 논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일각에서 얘기하는 평화나 인권, 민주주의 등은 이들이 평생 접해온 가치들과 결이 맞지 않았고, 용병이라는 말은 모욕으로 느껴졌다. 그들 각자의 개인적 고통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뒤엉클어져 있었다. (본문 185~186쪽) 그들은 국가를 위해 바친 젊음과 육신의 정당한 대가를 얻지 못하고 늘 국가의 손쉬운 도구로 동원되기만 했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꾸려갈 수 있는 길을 차단당한 파월장병들은 오로지 국가주의에 기대어 삶의 정당성을 찾아보려했으나 정작 국가로부터 끊임없이 배신당하면서 삶의 나락으로 밀려났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그들에게 그들의 과거를 정당화할 수 있는 기억이, 이념이, 대의가 필요했다. 적절한 보상과 대우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망가진 몸과 정신은 소위 ‘빨갱이 척결’이라는 전쟁통 속의 명분을 강화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 그 가해의 기억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희생의 기억으로만 남아 ‘빨갱이’들과는 타협이 없다는 금기의 성벽을 만들고 더 이상의 기억을 금지했다. 이 지점에서 책은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국가의 신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애국심의 논리는 일부러 눈을 감고 세상의 비탄을 보지 말자는 논리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문명사회에 요구되 도덕성과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인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존중이다. 나의 생명만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인식, 내가 고통스러우면 타인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최소한의 공감능력, 경제적 실익보다 정치적 올바름을 우선시하는 정신, 이와 같은 기본소양을 도외시한 채 국가는 적대감만 가득한 ‘반공’과 ‘자유’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웠다. 그리고 결국 전장의 병사들을, 평범한 국민들을 타락시켰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스스로를 가해자의 자리에 세울 때 가능하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은 죽음이 두려웠던 평범한 청년이며, 집안의 생계를 걱정했던 가난한 아들이며, 전우를 가슴에 묻은 선량한 친구이며, 전쟁 후에도 끝나지 않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지니고 살아가는 전쟁의 피해자다. 그런데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때때로 가해자 위치에 서게 됨을 뜻한다. 병사들은 국가에 대해서는 피해자지만, 베트남인에게는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간인학살에 대해 책임을 추궁받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주로 상황논리를 통해 책임을 희석시키려 한다는 데 있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무고한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면 물론 그 책임은 전쟁터에 동원된 병사 개개인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게 만든 국가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진실을 누가 말하고 있는가이다!” 가해자 스스로를 면책하는 논리라면 설령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더라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참전군인들은 여전히 국가 차원의 사과조차 반대하는 걸 보면, 베트남들에게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혔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기본발상부터 전환해야 끊임없는 자기모순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다. 우선 살인마와 용병이라는 누명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자신의 삶을 짓눌러온 고통이 조국을 위한 숭고한 희생의 증거라는 자기만족적인 기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고엽제에 찌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참전용사들이여! 왜 고엽제 피해자인 당신들이 반전평화 대신 국익과 안보를 논하시는가? 대체 누가 당신들을 동원하고 몸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아시는가? 누가 당신들의 고통을 억누르고 침묵을 강요해왔는지 아시는가?” (191쪽) 어제의 용사들은 새롭게 해석된 과거를 필요로 한다. 자유의 투사도, 살인마도 아닌 낯선 전장에 던져진 초라한 인간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더 큰 역사의 그림 속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분명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측면을 강조한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피해자로만 간주하는 것은 자신의 폭력성을 무용담으로 미화하는 것만큼이나 그릇된 일임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엄정한 사법적, 도덕적 잣대로 단죄하기에 그들은 너무나도 고통 받으며 살아온 역사의 희생양이다. 그들 스스로가 이런 주장을 펼친다면 자기변명의 오류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후세대인 우리는 이렇게 판단해야 옳다. 사실 참전용사들에게 베트남 민간인학살의 죄를 묻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은 우리사회가 그들 스스로 참회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오래도록 자기변명의 구실을 제공했던 반공주의에서 벗어나 그들의 과거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새로운 논리를 제공하는 일은 우리사회의 당면한 과제다. 따라서 우리가 심판자가 되어 그들을 가해자로 몰아세우기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가해자라고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는 사회풍토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날이 요원하더라도 말이다. 마음의 빚을 넘어... 상처는 치유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한 법정이 준비 중이다. 2018년 4월 21~22일 양일에 걸쳐 열리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시민평화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사건은 1968년 2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위치한 퐁닛-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 학살로 각 사건의 생존자들이 법정 참석해 피해사실을 직접 증언한다. 물론 이번 시민법정이 참전군인 개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며, 시민법정에서의 판결이 어떤 사법적 효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민법정 이후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는 실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며, 정부 차원의 공식사과를 촉구하는 정치권과 종교계,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우리 정부의 부담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의 아픔에만 공감하는 도덕적 엄격주의로부터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가해자의 아픔에서 출발한다면, 그래서 가해자 자신이 피해자에 공감하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그런 과정에서 피해자 측에서도 가해자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이러한 역사적 공감대를 매개로 가해와 피해의 악연을 새로운 인연의 계기로 전환시킬 수 있지 않을까? 혹여 이러한 접근이 가해자의 오기와 피해자의 원한을 너무 쉽게 보는 것은 아닐까? '화해'를 운운하는 것이 자칫 망자에 대한 모독은 아닐까? 참으로 막막한 길이었다.” (237쪽) 반면 이 책은 가해자의 아픔에서 출발한다. 참전군인과 그 가족이라는 당사자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본 저자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이 참전군인을 비난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진정한 사과와 화해는 당사자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해자의 자리에서 속죄하겠다는 결단이야말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악연을 끊는 유일한 길이며, 가해자가 자신의 기억과 인격을 되찾는 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민사회 일각에서 분출된 베트남전 참전과 민간인학살에 대한 비판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는데, 이 또한 남의 죄를 기억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에서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피해자인 참전군인들, 그들이 직접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학살의 가해자가 되는 그 피해자를 우리사회가 품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참전용사들에게 반성하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인 자신들의 역사적 위치를 자각하게 만듦으로써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우리가 정녕 파월용사들의 민간인학살을 문제 삼고자 한다면 사법적, 도덕적 심판에 앞서 좀 더 풍부하고 섬세한 역사적 논의를 전개하고 이를 공론화함으로써 한 세대가 겪었던 고통과 책임에 대해 사회 전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해갈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도 이럴 때만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과연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처음부터 도덕적 양심의 만년설로 뒤덮인 저 높은 봉우리에서 출발할 것인가, 아니면 온갖 거짓과 모순, 회한의 울퉁불퉁한 자갈밭으로 뒤덮인 평지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올라갈 것인가?”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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