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 삼총사의 작가와 함께 2천 년 프랑스 역사를 걷다 | 북파니

알렉상드르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 삼총사의 작가와 함께 2천 년 프랑스 역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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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 삼총사의 작가와 함께 2천 년 프랑스 역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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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93952865
쪽수 : 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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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역사소설의 대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프랑스사 이야기 이 책은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정통 역사서이다. 풍부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 희곡 등 뛰어난 작품을 남긴 뒤마는, 이번 책에서도 생생한 인물 묘사와 역사를 보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파란만장한 프랑스 역사를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역을 점령하여 로마 문명을 전파한 고대에서 프랑스 혁명을 거쳐 루이 필리프가 ‘시민왕’으로 등극한 근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중은 어떻게 자유를 쟁취하며 성장하였는지가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통해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 소개
1802년 7월 24일, 빌레르코트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806년 나폴레옹 군의 장군이었던 뒤마의 아버지가 죽자, 뒤마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어린 뒤마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로빈슨 크루소'나'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작품을 읽으며 읽고 쓰는 능력을 길러나갔다. 성인이 된 뒤마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파리로 간다. 파리에서 그는 1823년 오를레앙 공작(후에 루이 필리프 왕) 가문에서 서류 작성하는 일을 얻게 되지만 곧 연극계로 뛰어들었다. 1820년대 말에서 1830년대 초는 패기 넘치는 젊은 뒤마에게 작가로서의 장래를 보장해 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1828년에 화려한 문체로 프랑스 문예 부흥을 묘사한 '앙리 3세와 그의 조정Henri Ⅲ et sa cour'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시간, 장소, 행동의 3일치라는 고전주의 규칙을 무시하고 운문이 아닌 산문으로 씌어진 전형적인 낭만주의 작품이었다. 1829년 이 작품의 공연은 첫날부터 대성황을 이루었다. 뒤마를 후원한 루이 필립은 매우 흡족해했으며 한때는 극단적인 왕당파였던 빅토르 위고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작가로서의 뒤마의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20여 년 동안 뒤마는 위고, 비니Vigny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극작가로 활약했다. 한편 1820년대에는 많은 잡지가 창간되면서 '문예란'에 연재소설이 등장하였다. 뒤마는 연재소설에 매력을 느껴 차츰 극작품보다는 소설, 특히 역사소설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일만큼이나 삶의 자극에 탐닉했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권태를모면하기 위해 그는 연애, 음식, 잠, 쾌락, 여가, 운동 등 여러 방면의 자극을 원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뒤마는 여자, 오페라, 그리고 지중해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그런 가운데 그의 대작들이 잉태되어 여행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1944년에 리슐리외 시대의 모험담인 '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를, 이어서 '몬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을 세상에 내놓았다. 특히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출간 즉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번역되고 차용되고 표절되는 등, 한마디로 그 시대 최고의 '인기 소설'이 되었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성공 후에도 그는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여 당시의 가장 인기있는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지만 그의 사생활은 날로 황폐해 가고 있었다. 사치한 생활에 빠져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기 위해 그는 발자크처럼 날마다 더 많은 글을 써내야 했고, 그 때문에 발자크처럼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 뒤마에게는 또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가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춘희La Dame aux camelias'(1848)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뒤마 2세이다. 이들 부자 작가는 각자 이름 뒤에 아버지와 아들을 표시한 필명을 쓰고 있다. 아버지 뒤마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들 뒤마는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유능한 작가가 되었지만, 작품의 경향은 전혀 다르다. 아버지의 무책임한 사랑놀음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들 뒤마는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한 작품을 썼다. 아들 뒤마의 가장 재미있는 희곡으로는 '사생아Le Fils naturel'(1858)와 자신의 아버지 성격을 나름대로 해석해 극화한 '방탕한 아버지Un Pere Prodigue'(1859)가 있다.
목 차
· 옮긴이의 글_역사소설의 대가, 파란만장한 프랑스사를 한 권에 담다 · 프롤로그_프랑스의 뿌리, 갈리아의 역사 제1부. 프랑크 왕국의 탄생: 갈리아 정복자와 프랑크-로만 왕조 1장. 메로빙거 왕조의 서막 갈리아의 지배자, 로마제국 | 갈리아의 새 주인, 프랑크족 | 클로비스 1세, 메로빙거 왕조를 열다 2장. 끝없는 권력 쟁탈전 프랑크 왕국의 분할 | 아우스트라시아의 왕, 테우데베르트 | 통합과 분할의 악순환이 뿌린 봉건제의 씨앗 | 이슬람교의 탄생 3장. 메로빙거 왕조의 몰락 사치에 빠진 다고베르트 1세 | 왕권 약화와 궁재의 성장 | 궁재의 전횡과 꼭두각시 왕들 4장. 카롤링거 왕조 개창과 메로빙거 왕조의 유산 패배를 모르는 전사, 샤를 마르텔 | 단신왕 피핀, 카롤링거 왕조를 열다 | 메로빙거 왕조 시대의 지배층 | 교회, 피지배층의 수호자가 되다 제2부. 프랑크 왕국의 흥망성쇠: 단신왕 피핀에서 위그 카페까지 5장. 샤를마뉴 대제, 거대 제국을 건설하다 교황을 등에 업은 단신왕 피핀 | 서유럽의 정복자, 샤를마뉴 | 위대한 천재가 남긴 유산 6장. 샤를마뉴가 떠나고 혼란이 찾아오다 온후왕 루트비히와 왕자의 난 | 베르? 조약과 쪼개진 제국 | 노르만족의 침략과 귀족의 부활 | 비만왕의 폐위와 민족진영의 형성 7장. 카롤링거 왕조의 몰락 프랑스 왕 외드와 샤를 3세의 왕위 쟁탈전 | 망명객 롤로, 노르망디 공국을 건설하다 | 로베르 가문의 반란 | 해외왕 루이 4세의 반격 8장. 카페 왕조 개창과 카롤링거 왕조의 유산 카롤링거의 마지막 불꽃, 로테르 | 위그 카페, 카페 왕조를 열다 |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사회상 | 세속적 권력에 취한 교회 | 아홉 개의 호수와 한 개의 호수 제3부. 프랑크 왕국을 넘어 프랑스 왕국으로: 민족 왕조의 성장과 민중권력의 탄생 9장. 왕권 강화와 봉건제 위그 카페와 프랑스 왕국의 열두 형제 | 왕위 세습과 봉건 제도의 확립 | 경건왕 로베르 2세와 콩스탕스 왕비 | 온유한 군주, 반역자마저 품에 안다 | 앙리 1세, 악마 로베르와 손잡다 10장. 중세 시대를 여는 세 가지 사건 중세 시대의 산파, 필리프 1세 | 정복왕 윌리엄, 잉글랜드를 정복하다 | 만지케르트 전투와 순례자들 | 1차 십자군 원정 | 코뮌, 민중 자치의 탄생 | 잉글랜드 정복과 십자군이 불러온 혁명의 기운 11장.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대결 필리프 1세와 그의 시대 | 루이 6세, 봉건 영주에게 전쟁을 선포하다 | 영국과 독일, 프랑스를 노리다 | 왕권 강화를 위한 루이 6세의 원정 12장. 랑에서 일어난 최초의 민중 혁명 난폭한 착취자, 고드리 주교 | 주교의 꼼수, 혁명에 불을 지르다 | 비참한 포로, 고드리 주교 | 자유, 민중이 빼앗을 때만 왕이 내어주는 것 13장. 루이 7세와 엘레오노르 뚱보왕 루이 6세의 고백 | 십자군 원정이 뿌린 비극의 씨앗 | 루이 7세의 치세와 몇 가지 사건들 제4부. 서유럽의 강자로 부상하는 프랑스: 왕권 확립과 번영의 시대 14장. 필리프 2세, 번영의 기틀을 다지다 프랑스 왕 vs. 잉글랜드 왕 | 마르코 폴로가 남긴 암살교단 이야기 | 도망자 리처드 1세와 실지왕 존 | 또 다른 종교전쟁, 알비 십자군 원정 15장. 부빈 전투, 프랑스 민족을 하나로 묶다 독일과 잉글랜드 연합군의 침략 | 전운이 감도는 부빈의 다리 | 중기병과 생폴 백작 고셰의 대활약 | 오토 4세의 반격 | 황제, 기사들을 버리고 도망치다 16장. 전성기를 맞이한 프랑스 왕국 필리프 2세와 루이 8세의 갈등 | 비운의 왕, 루이 8세 | 프랑스 왕 최초의 성인, 루이 9세 | 시칠리아 만종 사건 | 프랑스군, 아라곤으로 진격하다 17장. 프랑스에 불어닥친 변혁의 바람 신앙의 몰락과 아크레 전투 |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필리프 4세의 갈등 | 성전 기사단의 몰락 | 의회의 정착 | 제3계층의 부활 | 공화정을 수립한 플랑드르와 스위스 18장. 카페 왕조의 몰락 넬 저택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 | 의문투성이 재판과 루이 10세의 교서 | 필리프 5세의 왕위 찬탈 | 나환자들이 우에 독을 탄 이유 | 샤를 4세, 카페 왕조의 막을 내리다 · 에필로그_프랑스 역사와 민주주의 갈리아에 문명을 전파한 로마제국 | 프랑크족의 메로빙거 왕조 | 프랑크족의 카롤링거 왕조 | 첫 번째 민족 왕정, 카페 왕조 | 두 번째 민족 왕정, 발루아 왕조 | 세 번째 민족 왕정, 부르봉 왕조 | 프랑스 대혁명의 시대 | 입헌군주, 루이 필리프 1세 | 자유를 향한 길을 닦은 나폴레옹 · 부록 | 후주 | 프랑스 왕실 가계도 | 프랑스사 연표 | 도판 출처 |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 갈리아의 주인은 어쩌다 프랑크족의 노예로 전락했을까? · 유럽 중세 시대 때 ‘봉건제도’는 왜 시작되었을까? · 유럽의 약탈자 노르만족은 어떻게 프랑스인의 조상이 되었을까? …… 역사소설의 대가, 파란만장한 프랑스사를 한 권에 담다! 루이 13세 시대를 배경으로 검객 다르타냥과 근위병 삼총사의 무용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 《삼총사》는 책을 뛰어넘어 수차례 영화와 만화로 각색된 대표적인 역사소설이다. 그리고 이 책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독자를 사로잡는 데 ... · 갈리아의 주인은 어쩌다 프랑크족의 노예로 전락했을까? · 유럽 중세 시대 때 ‘봉건제도’는 왜 시작되었을까? · 유럽의 약탈자 노르만족은 어떻게 프랑스인의 조상이 되었을까? …… 역사소설의 대가, 파란만장한 프랑스사를 한 권에 담다! 루이 13세 시대를 배경으로 검객 다르타냥과 근위병 삼총사의 무용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 《삼총사》는 책을 뛰어넘어 수차례 영화와 만화로 각색된 대표적인 역사소설이다. 그리고 이 책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독자를 사로잡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1829년 희곡 〈앙리 3세와 그의 궁정〉을 무대에 올려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급부상했을 때부터 1870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주로 역사를 종횡무진 누비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250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통사로 집필한 정통 역사서는 이번에 출간된《알렉상드르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Gaul et France)》이 유일하다. 소위 잘나가는 작가 뒤마가 역사서를 집필한 데에는 개인사와 얽힌 당시 시대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 뒤마의 아버지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나폴레옹 휘하에서 장군으로 활약하였지만 뒤마가 태어난 후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뒤마는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독학으로 글쓰기 능력을 길렀고, 성인이 된 후 오를레앙의 공작 루이 필리프의 가문에서 문서 업무를 맡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는데, 뒤마가 극작가로 주목받던 1830년 그의 고용주였던 루이 필리프가 ‘시민왕’이란 별칭과 함께 프랑스 왕좌에 오르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시대를 역행하여 극단적인 반동정치를 일삼은 샤를 10세를 성난 민중이 다시 한 번 끌어내린 7월 혁명의 결과였다. 이 같은 역사적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뒤마는 자연스레 왕의 운명마저 좌우하는 민중권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관심이 프랑스 민족의 형성과 민중권력의 탄생 과정을 되짚어보는 역사서 집필로 그를 이끌어 《알렉상드르 뒤마의 프랑스사 산책》이란 결실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서유럽을 만든 프랑스 중세시대 19세기 격동의 역사 한복판에 선 뒤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역을 정복한 시기부터 시민왕 루이 필리프 1세의 시대까지 근 2,000년의 역사를 다룬다. 그중에서 저자가 특히 주목한 시기는 오늘날의 프랑스 지역에 최초의 왕국을 세운 5세기 메로빙거 왕조의 개창부터 14세기 카페 왕조의 몰락까지이다. 뒤마가 유독 중세 프랑스 역사에 집중한 이유는 이 시기에 프랑스라는 국가의 근간이 제 모습을 갖추고, 이민족의 지배 아래 노예 상태였던 프랑스인의 조상이 갈리아 지역의 주인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해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역사는 갈리아 지역에 문명을 전파한 로마제국의 몰락에서부터 시작된다. 395년 “한 사람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광대했던 로마제국은 죽어가는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고”(19쪽),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갈라진다. 로마제국이 총독을 두어 통치하던 갈리아 지역은 서로마제국에 속했지만 반쪽짜리 제국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했고, 이 틈을 비집고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오늘날 벨기에와 프랑스의 국경 근방의 도시 투르네(Tournai)에 터를 잡은 프랑크족은 갈리아에 난립한 여러 게르만족을 정복하며 세력을 키워갔고 클로비 1세 때 동로마제국 황제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았다. 바로 이 무렵부터 프랑크족 통치자의 명칭이 족장에서 왕으로 바뀌었다. 갈리아에 최초의 왕국이 들어서고 첫 번째 왕조가 닻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갈리아를 차지한 프랑크족과 그들의 왕국은 태평성대와는 거리가 먼 역사를 써내려간다. 프랑크족에게는 유산을 골고루 나누어 갖는 관습이 있었는데, 왕국의 영토도 마찬가지였다. 선대왕이 확장한 영토는 후손들의 손에 넘어가며 조각 났고, 형제들은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자 서로 전쟁과 암살에 몰두하였다. 이 과정에서 왕들은 장군들의 지지를 얻고자 정복한 영토의 일부를 주고 충성을 샀고, 영토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약해진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 영토 일부를 줘야 했다. 이것이 통합과 분할의 악순환이 뿌린 초기 봉건제의 씨앗이었다. 국가의 이익도 민중의 삶도 뒷전인 프랑크 왕국의 혼란은 카롤링거 왕조가 들어선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샤를마뉴(독일에서는 ‘카를 대제’)가 서유럽을 정복하고 오늘날의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영토 대부분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었지만, 후대가 벌인 수차례의 전쟁 끝에 샤를마뉴의 프랑크 제국은 셋으로 나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843년 베르? 조약과 870년 메이르선 조약). 1부와 2부에서 메로빙거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의 역사를 풀어놓은 뒤마는 3부와 4부에서 카페 왕조의 통치 아래 프랑스라는 국가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과 프랑스가 유럽의 강자로 부상하며 겪는 성장통을 다양한 사건과 인물을 통해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 시기는 중세 시대를 상징하는 ‘십자군 원정’, 프랑스 발전의 초석을 다진 ‘부빈 전투’ 등 대내외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뒤마는 작가 특유의 생생한 필치로 사건들을 생생하게 재현할 뿐 아니라 복잡하게 뒤얽힌 유럽 각국의 이해관계 아래 입체적으로 조망하여 프랑스와 서유럽의 역사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예루살렘의 거점 도시에서 벌어진 아크레 전투) “시간이 지나면서 기사들의 무기는 떨어져갔고 행운 또한 비켜가고 있었다. 군인이자 수도사인 기사들은 한 명씩 서로에게 죄를 고백한 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죽음을 맞았다. … 사라센인들은 도시를 완전히 파괴했다. 성곽과 탑, 교회와 주택이 모두 무너졌다. 총대주교와 자선 기사단의 총장은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몇몇 생존자의 도움을 받아 배에 올랐다. 그들은 시칠리아나 다른 섬에 닿기를 바랐지만 결국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296쪽) (부빈 전투에서의) “승리는 완벽했으며 그 결과가 지닌 중요성은 어마어마했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정복자로서 다스리고 소유했던 프랑스에 대해 영향력을 회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희망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당시 푸아투에 와있던 잉글랜드 왕 존 또한 필리프 2세와 5년간의 휴전 협정을 맺었다.”(273쪽) 프랑스의 토대를 다진 세 왕조의 역사를 생생하게 살핀 후, 뒤마는 에필로그에서 발루아 왕조부터 19세기 초반까지의 프랑스 역사를 핵심만 간추려 살피며 앞선 왕조의 유산을 물려받아 각 왕조가 프랑스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짚는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며 2,000년의 역사 산책을 마무리한다. 노예에서 주권자로, 자유를 위해 싸운 프랑스 민중의 역사 이 책에서 뒤마는 프랑스를 통치했던 왕조들을 중심축에 두고 역사를 되돌아본다. 그렇다고 권력의 향배에 역사 서술의 초점을 맞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권력의 변천과 더불어 각 시대를 산 민중의 처지가 어떠했는지를 살펴, 노예 신분에서 권력의 한 주역으로 성장해가는 민중세계의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로마가 통치하던 시기의 갈리아 원주민은 로마 시민이었다. 이들은 로마 시민의 명예를 갖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로마군단에 들어가 브리타니아를 로마제국에 편입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건 마치 인도의 왕이 잡아서 길들인 코끼리들이 왕을 도와 다른 야생 코끼리 포획에 나서는 것과도 같았다.”(332쪽) 하지만 로마가 물러나고 갈리아를 차지한 프랑크족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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