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삼국지 : 촉서 | 북파니

정사 삼국지 : 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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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 : 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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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0801248
쪽수 : 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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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우리가 흔히 <삼국지>라고 부르는 것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이다. 원래 <삼국지>는 진수가 편찬한 것으로, 중국의 위.촉.오 삼국의 정사이다.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 소설일 뿐이므로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정사 삼국지>는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난세'라고 불린 후한 말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시작으로 삼국정립, 후한에서 위로의 정권 이양, 촉의 멸망, 위에서 진으로의 정권 이양, 오의 멸망까지를 아우르는 한 시대의 총화이며, 그런 까닭에 사마천의 <사기>나 반고의 <한서>와 함께 중국 고대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사서로 꼽히고 있다. <정사 삼국지>의 매력 중에 한 가지는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배송지가 <정사 삼국지>의 내용과 서술이 너무 간략한 것이 안타까워 주석을 달았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후대에 내려오는 <정사 삼국지>의 가장 대중적인 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자는 방대한 분량의 배송지의 주 가운데 독자들이 꼭 같이 읽을 만한 내용들을 선별해 함께 번역하여 주석으로 엮었다. 이 책은 사마천의 <사기>를 개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완역해, 국내 동양고전 번역의 일인자로 평가받는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의 김원중 교수가 펴냈던 <정사 삼국지>를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살펴, 번역과 주석을 다듬어 다시 펴낸 개정판이다.
저자 소개
저자 _ 진수(陳壽) 자가 승조承祚이고, 파서군 안한현을 본적으로 하여, 위·촉·오 삼국이 팽팽히 대치하던 시기인 233년, 촉나라에서 태어나 진나라에서 벼슬하다가 원강元康 7년(297)에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진수의 부친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진수는 촉나라에서 관각령사를 지냈는데, 환관들이 전횡하고 조정의 신하들이 아부하는 것을 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벼슬에서 쫓겨났다. 촉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배척을 받아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그 후 진나라(서진西晋)에서 진남대장군 두예杜預가 진수의 지식이 깊고 넓음을 알고는 표를 올려 산기시랑으로 추천했다. 진수가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감당했으므로 황제는 그를 다시 치서어사로 임명하여 곁에 두었다. 이후 모친이 돌아가시자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태자중서자로 기용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병사했다. 진나라 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280)에 오나라가 멸망하는데, 이때 진수는 48세의 나이에 《정사 삼국지》를 완성했다. 저작으로는 《정사 삼국지》 외에도 《고국지古國志》 50편, 《석휘釋諱》, 《광국론廣國論》, 《진박사晉駁事》 4권, 《진탄사晉彈事》 9권, 《익부시구전益部蓍舊傳》 10편, 《익부시구전잡기益部蓍舊傳雜記》 2권, 《관사론官司論》 7편, 《제갈씨집諸葛氏集》 24편, 《한명신주사漢名臣奏事》 30권, 《위명신주사魏名臣奏事》 40권 등이 있다. 이상 12종의 저술은 모두 250여 권(편)에 달하지만 그중에서 《정사 삼국지》가 가장 높이 평가받는다. 역자 _ 김원중 충북 보은 출생으로 조부로부터 한학을 익혔으며, 성균관대학교 중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만 중앙연구원과 중국 문철연구소 방문학자 및 대만사범대학 국문연구소 방문교수, 건양대 중문과 교수, 문화융성위원회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학진흥사업위원장, 한국중국문화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동양의 고전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섬세히 복원하는 작업에 매진하여, 고전 한문의 응축미를 담아내면서도 아름다운 우리말의 결을 살려 원전의 품격을 잃지 않는 번역으로 정평 나 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최고의 번역서인 《사기 열전》을 비롯해 《사기 본기》, 《사기 표》, 《사기 서》, 《사기 세가》 등 개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사기》 전체를 완역했으며, 그 외에도 MBC 〈느낌표〉 선정도서인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한비자》, 《정관정요》, 《손자병법》, 《명심보감》, 《정사 삼국지》(전 4권), 《당시》, 《송시》, 《격몽요결》 등 20여 권의 고전을 번역했다. 또한 《고사성어 역사문화사전》(편저), 《한문 해석 사전》(편저), 《중국 문화사》, 《중국 문학 이론의 세계》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1년 환경재단 ‘2011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학계 부문)에 선정되었다. 삼성사장단과 LG사장단 강연, SERICEO 강연 등 이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한 대표적인 인문학 강연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목 차
옮긴이의 말 5 《정사 삼국지》 해제 10 <촉서> 해제 22 촉나라 가계도 31 일러두기 38 1. 유이목전劉二牧傳 감언이설에 빠져 제위를 넘보다|유언전劉焉傳 40 어리석어 유비에게 촉 땅을 빼앗기다|유장전劉璋傳 45 2. 선주전先主傳 때를 기다린 천하의 효웅梟雄|선주전先主傳 52 3. 후주전後主傳 우매하여 나라를 빼앗긴 군주|후주전後主傳 84 4. 이주비자전二主妃子傳 후처였으나 바른 행실로 존경받다|감 황후전甘皇后傳 98 유비의 정비正妃|목 황후전穆皇后傳 100 유선의 부인이 된 장비의 맏딸|경애황후전敬哀皇后傳 102 유선과 최후를 함께한 장비의 딸|장 황후전張皇后傳 103 유선에게 배척당한 이복동생|유영전劉永傳 104 요절한 유선의 이복동생|유리전劉理傳 106 종회의 난 때 살해당한 불운의 태자|유선전劉璿傳 108 5. 제갈량전諸葛亮傳 세상 다스리는 이치를 꿰뚫은 불세출의 정치가|제갈량전諸葛亮傳 112 6. 관장마황조전關張馬黃趙傳 의리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다|관우전關羽傳 140 장판에서 홀로 조조의 대군을 막다|장비전張飛傳 146 조조도 두려워한 서량의 맹장|마초전馬超傳 150 하후연을 죽여 노익장을 과시하다|황충전黃忠傳 154 유선을 품고 조조의 대군을 돌파하다|조운전趙雲傳 156 7. 방통법정전龐統法正傳 익주 탈환책을 내고 화살에 맞아 아깝게 전사하다|방통전龐統傳 160 계책을 내어 하후연을 죽이고 한중을 평정하다|법정전法正傳 166 8. 허미손간이진전許?孫簡伊秦傳 인재를 사랑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다|허정전許靖傳 176 유비가 곤궁할 때 군자금을 대주다|미축전?竺傳 184 유비를 그림자처럼 수행하다|손건전孫乾傳 186 풍자와 기지가 넘쳤던 유비의 세객|간옹전簡雍傳 187 언변이 뛰어났던 유비의 비서|이적전伊籍傳 189 탁월한 문장가이자 절세의 논객|진복전秦宓傳 191 9. 동유마진동진여전董劉馬陳董陳呂傳 제갈량과 나랏일을 협의한 청빈한 관료|동화전董和傳 204 청렴하고 고상했던 문장가|유파전劉巴傳 207 백미白眉 고사의 주인공|마량전馬良傳 210 오나라와 맹약을 맺어 평화를 이끌어내다|진진전陳震傳 214 충심으로 유선을 바르게 보좌하다|동윤전董允傳 217 청빈하고 유능했으나 지나치게 엄해 신망을 잃다|여예전呂乂傳 222 10. 유팽요이유위양전劉彭寥李劉 魏楊傳 죄를 부인하다가 자살을 명령받은 유비의 양자|유봉전劉封傳 226 오만하여 반역을 꾀하다가 처형되다|팽양전彭?傳 232 인사에 불만을 품고 조정을 비방하다 유배되다|요립전廖立傳 237 제갈량을 모함하여 쫓겨나다|이엄전李嚴傳 240 유선이 아내와 사통했다고 의심했다가 처형당하다|유염전劉琰傳 245 양의와 제갈량의 후계를 다투다가 패하여 죽다|위연전魏延傳 247 제갈량의 후계가 되지 못하자 불만을 토로하다 죽다|양의전楊儀傳 252 11. 곽왕상장양비전?王向張楊費傳 수백 명으로 고립된 가맹성을 일 년 넘게 지켜내다|곽준전?峻傳 256 제갈량의 남방 정벌을 만류한 경제 관료|왕련전王連傳 259 높은 학문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다|상랑전向朗傳 261 지조가 굳었던 제갈량의 참모|장예전張裔傳 264 근면하고 공정하여 제갈량의 신임을 받다|양홍전楊洪傳 268 유비의 칭제稱帝를 반대하다가 좌천되다|비시전費詩傳 272 12. 두주두허맹래윤이초극전杜周杜許孟來尹李??傳 제갈량의 존경을 받은 은자|두미전杜微傳 278 천문을 읽고 점을 친 자|주군전周?傳 281 촉의 멸망을 예언하다|두경전杜瓊傳 284 박학으로 이름을 날린 유학자|허자전許慈傳 287 직언을 좋아하여 세상의 미움을 받다|맹광전孟光傳 289 신중치 못한 언행으로 여러 번 쫓겨난 훈고학자|내민전來敏傳 293 경서와 사서에 통달하여 유선의 스승이 되다|윤묵전尹?傳 295 경학과 잡학에 두루 능했던 학자|이선전李?傳 296 문장 해석에 정통한 일세의 큰 선비|초주전?周傳 298 탁월한 문장가로 유선을 끝까지 따른 충신|극정전?正傳 310 13. 황이여마왕장전黃李呂 馬王張傳 위나라에 귀순했으나 끝내 촉나라를 버리지 않다|황권전黃權傳 322 제갈량의 남정南征을 승리로 이끌다|이회전李恢傳 327 절개 지켜 반란자 옹개를 꾸짖다|여개전呂凱傳 330 과감한 결단력으로 여러 차례 남쪽 변방을 평정하다|마충전馬忠傳 334 위연의 모반을 평정하다|왕평전王平傳 337 덕으로써 15년간 만족蠻族을 다스리다|장의전張?傳 341 14. 장완비의강유전蔣琬費?姜維傳 정직하고 엄숙했던 제갈량의 후계자|장완전蔣琬傳蔣 350 마지막까지 제갈량의 뜻을 받든 유선의 보좌|비의전費?傳 357 지나친 출병으로 촉의 멸망을 재촉하다|강유전姜維傳 361 15. 등장종양전鄧張宗楊傳 오나라와 국교를 회복시킨 명사신|등지전鄧芝傳 372 강유와 함께 촉의 부활을 꿈꾸다|장익전張翼傳 376 외교로써 오나라 군사를 물리치다|종예전宗預傳 379 강유를 비웃다 평민이 되어 죽다|양희전楊?傳 382 촉나라 연표 402 찾아보기 409
출판사 서평
조조, 유비, 손권, 제갈량 … 난세를 살았던 수많은 영웅의 진면목을 보다! 우리가 흔히 《삼국지三國志》라고 부르는 것은 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이다. 원래 《삼국지》는 진수陳壽가 편찬한 것으로, 중국의 위·촉·오 삼국의 정사正史이다.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 소설일 뿐이므로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정사 삼국지》는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난세亂世’라고 불린 후한 말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시작으로 삼국정립, 후한에서 위魏로의 정권 이양, 촉蜀의 멸망, 위魏에서 진晉으로의 정권 이양, 오吳의 멸망까지를 아우르는 한 시대의 총화總和이며, 그런 까닭에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나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와 함께 중국 고대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사서로 꼽히고 있다. 소설을 뛰어넘는 진짜 역사의 감동! 동양고전 번역의 대가, 김원중 교수가 국내 최초로 옮긴 진수陳壽의 정사正史 삼국지! 진수는 기전체 형식에 따라 삼국의 역사를 서술하려 했으나 위, 촉, 오 삼국의 군주가 저마다 황제라고 일컫는 상황에 직면하자 세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에 정통성을 부여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는다. 그 까닭은 진수가 벼슬을 한 나라가 진晉나라였는데, 진나라의 전신이 위나라였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정사 삼국지’의 매력 중에 한 가지는 남북조시대 송宋나라의 배송지가 ‘정사 삼국지’의 내용과 서술이 너무 간략한 것이 안타까워 주석을 달았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후대에 내려오는 ‘정사 삼국지’의 가장 대중적인 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자는 방대한 분량의 배송지의 주 가운데 독자들이 꼭 같이 읽을 만한 내용들을 선별해 함께 번역하여 주석으로 엮었다. 이 책은 사마천의 《사기》를 개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완역해, 국내 동양고전 번역의 일인자로 평가받는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의 김원중 교수가 펴냈던 《정사 삼국지》를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살펴, 번역과 주석을 다듬어 다시 펴낸 개정판이다. ◎ 촉서 소개 진수가 위나라를 정통에 놓으면서도 촉나라와 오나라에 독립된 역사적 위상을 인정해주려 했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진수는 촉나라 출신이고 촉에서 관리 생활을 했으므로 당대의 중요한 사건을 직접 보고 들었고, 통치자들의 경력을 잘 알았으며, 그 시대의 제도에도 익숙했다. 게다가 그는 《제갈씨집諸葛氏集》이라는 책을 편집했으므로 제갈량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했다.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의지할 것도 없이 노력만으로 천하를 차지하려고 했던 유비는 고향의 대학자 노식盧植에게 사사했으나, 공부보다는 잡기에 능했다. 하지만 평소 말수가 적고 아랫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며 기쁨이나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다투어 그와 사귀고자 했다. 분명한 사실은 유비는 조조, 손견孫堅(손책, 손권)과는 출생 배경이 전혀 다르고 의지할 만한 지연이나 혈연도 없었다는 점이다. 유비는 형제도 없고, 자식 이외에는 친족도 없으며, 같은 고향 부하도 장비와 간옹簡雍뿐이었다. 따라서 유비가 한 왕조를 부활시킨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유비의 정치적 입지는 후한의 군벌 세력과 다른 점이 있으니, 구세제민救世濟民의 원대한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가 한실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분투노력한 것은 유가적 가치관과 맞닿아 있음을 의미한다. 유비는 겸허한 성품의 소유자였고 백성을 가장 높은 위치에 두었다. 수십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 조운 등이 온 힘을 다해 지켜주었다. 제갈량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다. 형주목 유표와 친분이 두터웠던 숙부 제갈현諸葛玄이 죽자 제갈량은 직접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은둔했다. 항상 자신을 관중管仲과 낙의樂毅에 비유했지만, 당시에는 이를 받아들이는 자가 없었다. 오직 박릉군의 최주평崔州平과 영천군의 서서(徐庶, 서원직徐元直)만 제갈량과 친교를 맺었다. 그 무렵 유비는 신야에 주둔하고 있었다. 서서가 유비를 만났는데, 유비는 서서를 인물로 생각했다. 때마침 서서가 유비에게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이니 “장군께서 몸을 굽 수레로 찾아가야만 합니다.”라면서 만날 것을 강력하게 권했다. 이에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러 갔는데, 모두 세 차례 찾아간 후에야 비로소 만났다고 한다. 여기서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한 인물은 서원직인데 그에 관한 전傳이 없으니 그의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다만 과장이 적지 않게 들어갔음은 분명하다. 촉은 어떻게 멸망했는가? 263년 10월 위나라 종회鐘會는 18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촉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인 검각을 지키던 촉나라 대장 강유姜維와 대치하게 된다. 한편으로 관중에서 내려온 등애鄧艾는 음평에서 강유로 들어와 촉을 급습하여 면죽에서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이 이끄는 촉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른다. 촉나라 조정은 대경실색하여 투항을 결의했고, 망국의 군주 유선은 도읍 성도의 북쪽까지 온 등애의 군문軍門에서 스스로 손을 묶고는 자신의 죄를 사죄하고 항복했다. 이로써 촉나라는 유비에서 유선으로 이어지는 43년 역사를 허무하게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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