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1. 불교문화와 초의 스님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래 광범위하고 심오한 교의는 이 땅의 전통문화와 결합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우리나라의 차문화는 불교의 역사만큼이나 숱한 우여곡절 속에 선불?교의 선다(다선)일여禪茶(茶禪)一如·일미一味사상으로 전개되면서 그 다맥茶脈을 면면히 유지해왔다. 그러나 조선 후기 한반도 땅끝인 대둔사에서 초의의순艸衣意恂(1786~1866) 스님의 등장으로 어려웠던 상황은 달라진다. 초의 스님은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중흥 발전시켜 새로이 정립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데에 큰 업적을 남긴다.
현재 ...
1. 불교문화와 초의 스님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래 광범위하고 심오한 교의는 이 땅의 전통문화와 결합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우리나라의 차문화는 불교의 역사만큼이나 숱한 우여곡절 속에 선불교의 선다(다선)일여禪茶(茶禪)一如·일미一味사상으로 전개되면서 그 다맥茶脈을 면면히 유지해왔다. 그러나 조선 후기 한반도 땅끝인 대둔사에서 초의의순艸衣意恂(1786~1866) 스님의 등장으로 어려웠던 상황은 달라진다. 초의 스님은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중흥 발전시켜 새로이 정립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데에 큰 업적을 남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해지고 있는 다서는 사실 몇 편 되지 않는다. 한재 이목(1471~1498)의 『다부茶賦』, 초의 스님이 초록한 『다신전茶神傳』과 찬술한 『동다송東茶頌』이 가장 대표적인 다서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초의 스님의 저술인 『동다송』과 『만보전서萬寶全書』에서 초록한 『다신전』이다. 학계에서는 『다신전』이 순수한 스님의 작품인가에 대한 문제와 『동다송』의 저술 방식과 인용한 출처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필사본의오류와 유무에 관해서도 서로 다른 의견들이 상존한다. 이는 원본이 상실되고 필사본만 전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상기하면서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10책1(이하 한불전 10)에 실린 『동다송』을 저본으로 하여 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것이다. 다만 본 글은 초의 스님의 다도관에 대한 연구가 목적이므로 한정된 범주에서 고찰할 것이다.
초의 스님이 활동했던 조선 후기의 상황은 정치·경제·사회·종교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그런 시대상황 속에서 한반도의 땅끝 대둔사大芚寺에서 ‘동다東茶’에 대한 자긍심으로 차문화를 부흥시킨 초의 스님의 역할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는 승려들이 천민 신분으로 떨어지고, 도성출입마저 금지된 시절이었다. 이때 초의 스님은 주지하다시피 유·불·선을 넘나들며 신지식인들과 동다에 대한 담소를 나누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스님의 광범위한 학문 세계와 높은 수행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초의 스님에게 선차禪茶는 일상적인 생활이었다. 왜냐하면 출가한 선수행자의 신분으로 차를 마시는 일은 수행의 길에 좋은 길동무와 같이 맥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를 마시면서 선수행禪修行하는 것이 스님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으며 말 그대로 항다반사恒茶飯事였다. 이러한 선차문화의 수행 실천은 『동다송』이라는 차의 성전이 출현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물론 해거도인海居道人 홍현주(1793~1865)의 정중하고도 간곡한 청탁에 의해 『동다송』을 창작하게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홍현주는 권문세가의 자제로서 『동다송』은 그에 대한 맞춤형 다도지침서로 집필된 것이다. 즉 차에 대한 문화인의 필수 교양서적인 셈이다. 그렇지만 수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상적인 차생활에서 나온 평상심의 발로였다.
이미 초의 스님은 『동다송』을 저술하기 전에 『만보전서』의 「다경채요」를 초록하면서 차에 대한 식물학적인 이론을 정립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님은 그 초록한 부분의 말미에 발문을 쓰고 『다신전』이라는 새로운 책명을 붙인다. 이 『다신전』은 스님의 차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제다법에 대한 변화를 실용적으로 받아들인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 초의 스님은 차에 대해 이론과 실제를 갖추었을 뿐만 아라 선강禪講을 겸하고 유교와 도교, 그리고 시·서·화 등에도 능통하였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인도 고대어인 범어梵語에도 조예가 깊은 박학다식한 학승이었다. 이와 같은 스님의 이력을 통해 보면 차에 대한 필수 교양서적을 저술하기에 충분한 지적 능력을 갖춘 다승茶僧이며 다성茶聖이었다.
이러한 초의 스님의 사상은 선과 차, 그리고 시의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략 선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와『초의선과艸衣禪課』, 시는 『일지암시고一枝庵詩稿』와 『초의시고艸衣詩稿』 등에서 조선 후기의 시풍에 대한 흐름과 함께 고찰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