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명경소』는 신라 스님 원효가 동아시아에서 호국경전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금광명경』을 해석한 것이다. 본 경은 현재 담무참曇無讖의 『금광명경』, 보귀寶貴가 합본한 『합부금광명경』, 의정義淨의 『금광명최승왕경』의 세 가지 한역본이 전해지는데, 『금광명경소』는 이 중 『합부금광명경』에 대한 주석서로 모두 8권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이 책은 일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전해 오는 기록에 따르면 11세기까지는 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광명경소』는 이 시기에 일본에서 찬술된 여러 문헌에서 활발하게 언급되고 비교적 많은 분량을 인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헌을 모두 찾아서 그곳에 인용된 『금광명경소』를 모두 묶은 것이 바로 집일 『금광명경소』이다. 본서는 김상현?후쿠시 지닌에 의해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금광명경소』 집일 작업을 두루 살펴서 그 성과를 계승하고 부족한 부분을 역자가 보충하여 새롭게 편찬한 것이다. 이로써 모두 24품으로 이루어진 『금광명경』 중 「수기품」을 제외한 나머지 23품에 대한 원효의 주석을 집대성하였다. 그리고 이해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각 주석의 내용에 상응하는 『금광명경』을 본문 앞에 배열하였다. 본서는 집일문의 한계로 인해 간접인용문의 형태를 띠는 것이 많은데, 이는 다른 학자들과 원효 사상의 동일성과 차이성을 확인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밖에 본서는 원효의 교체론敎體論에 대한 입장, 교판론에 대한 이해, 여러 경론에 나타난 삼신설三身說에 대한 이해 등을 두루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저자 소개
저자 : 원효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경상북도 압량군押梁郡에서 태어났고 속성은 설薛씨이다. 대략 15세 전후에 출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정 스승에게 의탁하지 않고 낭지朗智·혜공惠空·보덕普德 등의 여러 스승에게서 두루 배웠다. 학문적 성향도 또한 그러하여, 특정 경론이나 사상에 경도되지 않고 다양한 사상과 경론을 두루 학습하고 연구했다. 34세에 의상義湘과 함께, 현장玄?에게 유식학을 배우기 위해 당나라로 떠났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중간에 되돌아왔다. 45세에 재시도를 감행했으나, 도중에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며 마음 밖에 어떤 법도 있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고 되돌아왔다. 이후 저술 활동에 전념하여 80여 부 200여 권의 저술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 이 가운데 22부가 전해진다. 원효는 오롯이 출가자로서의 삶에 갇혀 있지 않고, 세간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대중과 하나가 되어 불교를 전파하면서, 그들을 교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의 삶과 사상은 진속일여眞俗一如·염정무이染淨無二·화쟁和諍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신문왕 6년(686) 혈사穴寺에서 입적하였다. 고려 숙종이 화쟁국사和諍國師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역자 : 한명숙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길장吉藏의 삼론사상연구三論思想硏究:무득無得의 전오방식轉悟方式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길장吉藏의 관법觀法이 갖는 수행론적 의미에 대한 고찰」, 「원효元曉 『금광명경소金光明經疏』 집일輯逸의 현황과 그에 대한 비판적 검토(1)·(2)」, 「정토교淨土敎의 종지는 불교의 근본사상과 공존이 가능한 것인가?」, 「원효元曉 『범망경보살계본사기梵網經菩薩戒本{私記』의 진찬 여부 논쟁에 대한 연구(1)·(2)」 등이 있고, 역주서로 『유심안락도』·『무량수경연의술문찬』·『범망경술기』·『범망경보살계본사기』·『범망경고적기』·『법구경』 등이 있으며, 공저로 『인물로 보는 한국의 불교사상』·『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동서철학 심신관계론의 가치론적 조명』·『동서철학 심신수양론』·『동서철학 심신가치론과 현대사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