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권력 그리고 불화 (고려와 조선의 왕실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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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권력 그리고 불화 (고려와 조선의 왕실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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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84118942
쪽수 : 244쪽
김정희  |  세창출판사  |  2019년 08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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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삼국시대에 불교가 수용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꾸준하게 왕실에서 발원한 불화가 조성되었다. 안타깝게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왕실발원 불화는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왕실발원 불화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왕실에서 시주하고 발원했던 불화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는 불교를 국시로 삼았던 만큼 태조 왕건의 숭불호법정신은 고려왕조 내내 이어졌고, 이것이 곧 왕실불화를 조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반면 조선시대는 건국 초부터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내세우며 숭유억불정책을 단행함에 따라 전 기간에 걸쳐 억불정책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나 세조와 문정왕후, 효령대군, 고종 등 호불적인 왕실구성원에 의해 왕실불교가 중흥되어 꾸준하게 불사가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에는 왕실구성원이 직접 시주 발원에 참여한 예는 많지 않다. 반면 조선 전기에는 특히 왕실여성들이 불화의 발원과 시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특징이다. 왕비와 후궁, 군부인 등 왕실의 여성들은 비구니절[尼寺]인 정업원(淨業院)과 자수궁(慈壽宮) 등을 중심으로 왕과 대군 등의 명복을 빌며 불화를 발원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왕실에서의 불사는 현저히 줄었지만 주로 왕실의 원찰을 중심으로 불화 후원이 이루어졌으며, 조선 말기에는 서울 인근 사찰을 중심으로 왕과 왕비, 상궁, 고위관료를 중심으로 한 왕실 불사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왕실의 불사는 불교미술의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성장을 가져오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와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했던 조선은 불교에 대한 정책과 인식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왕실을 중심으로 한 불화가 다수 조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금니와 선명한 원색이 어우러진 채색, 정치하면서도 유려한 필선,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형태 등의 뛰어난 불화가 조성된 반면, 조선시대에는 억불의 중심지였던 왕실의 발원과 시주로 도화서 화원에 의한 격조 높은 불화가 조성되었다. 왕실의 내탕금을 바탕으로 왕, 비빈, 대군 등 왕실 구성원의 발원 및 후원으로 이루어진 왕실불화는 한 시대의 미술 양식을 주도했다. 따라서 왕실발원 불화는 단순히 종교미술이라는 수준을 넘어 왕실의 불교정책 및 불교에 대한 인식, 불사 후원, 불교와의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왕실 불화를 통해 고려, 조선시대를 들여다본다.
저자 소개
저자 : 김정희 서울에서 출생하여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불교회화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상임연구원, 서울역사편찬원 위원, 원광대학교 박물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원광대학교 인문대학 역사문화학부 고고·미술사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기도·전라북도·인천광역시·대전광역시 문화재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장상』(1989), 『조선조 불화의 연구2─지옥계 불화』(공저, 1993), 『조선시대 지장시왕도 연구』(1996), 『극락을 꿈꾸다』(2008),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불화』(2009), 『한국 회화사 용어집』(공저, 2003), 『조선의 역사를 지켜온 왕실여성』(공저, 2014), 『회암사와 왕실문화』(공저, 2015), 『문화재학』(2017), 『영상으로 보는 고고미술사』(편저, 2017), 『신라의 조각과 회화』(공저, 2016) 등이 있으며, 고려불화 및 조선불화에 관한 논문이 다수 있다.
목 차
_ 머리글·4 I. 고려, 조선왕실과 불교·15 1. 고려왕실과 불교·17 2. 조선왕실과 불교·23 II. 기록을 통해 본 왕실불화·31 1. 삼국~통일신라시대·33 2. 고려시대·36 3. 조선시대·41 Ⅲ. 왕실불화의 현황·47 1. 왕실에서 발원한 불화·50 1) 고려시대·50 2) 조선 전기·59 3) 조선 후기, 말기·89 2. 왕실을 위해 발원한 불화·103 1) 고려시대·103 2) 조선 전기·109 3) 조선 후기, 말기·116 Ⅳ. 왕실불화의 조성 목적과 용도·127 1. 예배용·129 1) 법당 봉안용·129 2) 내불당 봉안용·133 2. 법회용·136 3. 기원용·142 4. 영가천도용·146 5. 기타·150 Ⅴ. 왕실불화의 발원자·151 1. 왕실·153 2. 종친·172 3. 고위관료·177 4. 상궁·184 5. 승려·186 Ⅵ. 왕실불화의 화가·191 1. 왕실 화가·193 1) 고려시대·193 2) 조선시대·198 2. 승려 화가·201 Ⅶ. 왕실재정과 왕실불화·207 Ⅷ. 고려, 조선시대 왕실불화의 특징·217 _ 참고 문헌·225 _ 도판 목록·236 _ 찾아보기·238
출판사 서평
- 편집자의 말 미술은 항상 시대를 닮는다. 그것이 그 시대에 그려진 까닭이기도 하고,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자 하듯이, 시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자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미술은 항상 시대를 담기에, 항상 시대를 닮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시대를 이해할 때는 그 시대의 남겨진 문헌만을 봐서는 부족하다. 예컨대 우리는 ‘조선’하면 숭유억불의 나라로 여긴다. 실제로 조선은 불교를 억압하기도 했고, 유교를 숭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음이 왕실에서 조성한 불화를 통해 드러난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조선 왕실은 정책적으로는 숭유억불을 지속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불사를 행하고 불화를 조성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 시대에 대한 또 하나의 진실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고려야 당연히 불교의 나라라지만, 그들이 불교를 어떻게 숭상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도 불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려시대에 행했던 팔관회나 연등회는 그에 대한 묘사만 남아 우리는 그 행사를 상상할 수 있을 뿐,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화는 아직 남아 있기에, 그 시대에 어떤 믿음으로 또 어떤 양식으로 불화를 그려왔는지 우리는 생생히 관찰할 수 있다. 또 고려의 불화가 남아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조선의 불화와 비교하면서 시대에 따른 불화의 변천 과정 역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조선의 불교와 고려의 불교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왕실이 불화를 조성했다는 것은, 그 시대 최고의 화가와 최고의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서양의 종교화를 통해 그 시대 최신 양식을 관찰하듯이, 불화를 통해서도 그 시대 최신 양식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불화란 그 시대 미술 양식의 흐름도 보여 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미술품이라는 것을 뜻한다. 또 그 불화를 조성하기 위한 재원이 어디에서 나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품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숭유억불이던 조선에서 공공자금을 썼을 리는 만무하기에, (그랬다가는 수많은 대소신료의 “불가하옵니다! 전하!”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우리는 조선 왕실의 사적 자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왕실의 지배층으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개인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는 것을 뜻하므로 불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절에 방문할 때면, 우리는 항상 불화를 마주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지식 없이 그저 “다 똑같은 그림이겠거니” 하고 넘어가기가 쉽다. 하지만 우리는 미술관에 갈 때면, 이 그림은 어느 시기의 그림이고 어느 작가의 그림이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등 수많은 분석에 휩싸여 그림을 본다. 사실은 그렇게 할 때, 그 그림은 온전한 예술이 된다. 그림의 탄생에는 당연히 목적이 있고, 의도가 있으며, 그 그림을 담은 시대가 있다. 그리고 모든 회화가 그러하듯이, 불화에도 시대의 양식이 있고, 그 불화를 조성하는 마음에 따라 다른 그림이 된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불화에 대해 알려 주면서, 우리를 불화라는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이 책과 함께 불화를 마주한다면, 거기에 있는 것은 익숙한 절 풍경의 배경이 아니라, 저마다 새로운 예술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책 속에서 의종은 지나치게 불교·음양설 등을 믿었던 왕이었다. 그는 나라의 재앙을 물리치는 재를 올리자는 내시 영의(榮儀)의 진언대로 영통사, 경천사 등에서 해가 저물도록 불사를 시행하였고, 이어 왕의 수명장수를 위하여 천제석(天帝釋)과 관음보살을 섬겨야 한다는 건의에 따라 천제석도와 관음보살도를 다수 제작하여 여러 사원에 보내 축성법회(祝聖法會)를 열었다. 왕이 주술적인 불사를 좋아함에 따라 궁중에는 승려로 가득하였고, 사찰에서는 빈번하게 연회를 베풀었으며, 대신은 물론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앞다퉈 절과 탑을 지었다. _20쪽 이 밖에 왕이 직접 그린 불도 있었다. 권근(權近, 1352~1409)이 지은 『양촌집(陽村集)』의 「덕안전기(德安殿記)」에는 “1401년(태종 원년)에 태상왕, 즉 태조가 명하여 덕안전을 짓고 절[興德寺]로 만들어 정전에 석가모니가 출산(出山)하는 그림을 걸어 두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런데 흥덕사 석가출산도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공민왕은 화격이 매우 높다. 지금 도화서에 소장된 노국대장공주 진영과 흥덕사 석가출산도는 모두 왕의 작품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공민왕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_40쪽 젊은 나이에 승하한 인종의 명복을 빌며 공의왕대비 전하, 즉 인종비 인성왕후가 제작한 이 불화는 도화서 화원의 솜씨를 반영하듯 산수묘사에 있어 일반 불화에서는 볼 수 없는 뛰어난 필치가 잘 드러나 있다. 뿐만 아니라 눈·코·입이 중앙으로 몰려 있는 관음보살의 얼굴과 활형의 눈썹,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눈, 앵두처럼 작은 입술은 사불회도(1562), 문정왕후발원 약사삼존도(1565),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약사십이신장도(16세기) 등 같은 시기 왕실불화와 동일한 양식을 보여 주고 있어, 16세기 왕실불화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_67쪽 그러나 자성왕대비는 이 불화가 제작된 1483년(성종 14) 음력 3월 30일에 66세로 승하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성왕대비보다는 인수왕대비가 불화를 발원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더구나 화기에 대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불화 5점과 불경 30부를 인출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당시 성종에게는 이미 세자[연산군]가 있었으나 1479년(성종 10) 폐비 윤씨 사건이 일어난 후 인수대비가 세자[연산군]가 아닌 정현왕후와의 사이에서 태어날 새로운 손자[진성대군]가 성종의 뒤를 잇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불화를 발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_88쪽 고종이 시주한 불화에는 고종의 이름 대신 ‘건명임자생이씨(乾命壬子生李氏)’[1910년 진관사 칠성도]라고 적혀 있거나 상궁[1895년 불암사 아미타괘불도, 1905년 봉원사 신중도] 또는 관료[1907년 수국사 불화]가 ‘(황제의) 명을 받들어[奉命]’ 시주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을미사변(1895), 아관파천(1896), 대한제국 선포(1897), 을사조약(1905), 경술국치(1910) 등 정국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시기에 왕실의 원찰에 불화를 시주하면서 일본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_155쪽 이처럼 내수사, 상의원, 궁방 등을 중심으로 한 왕실의 불사 후원은 튼튼한 재정을 바탕으로 최고의 장인에 의한 높은 수준의 불교미술을 탄생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궁정 양식’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_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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