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자유중국 그리고 중국 : 냉전시기 한국인의 중국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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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자유중국 그리고 중국 : 냉전시기 한국인의 중국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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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84946408
쪽수 : 268쪽
정문상  |  혜안  |  2019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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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김준엽, 민두기, 리영희의 시선을 통해 본 한국의 근현대 중국 인식 변천사! 이 책은 지난 냉전시기 한국인이 근현대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았는지를 해명하기 위해 1950~1970년대에 간행된 대표적인 일간지, 잡지 등은 물론 연구자들의 다양한 연구 성과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중국근현대사 전문가인 저자 정문상 교수는 이를 통해 얻어진 주요 성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냉전시기 한국인의 중국이해와 시선은 ‘중공’과 ‘자유중국’의 호칭에서 보듯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한국인에게 ‘중공’으로 호칭된 것은, 미?소 양국이 주도한 냉전질서, 더욱 직접적으로는 한국전쟁의 영향이 컸다. 반공과 반미로 상징된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한국인에게 침략자이자 팽창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반공주의에 입각한 중국인식, 즉, 반공냉전형 중공인식은 『사상계』, 『신동아』 등 유력 잡지의 중국관계 논설과 번역문, 그리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주요 대중일간지를 통해 유통되고 재생산되었다. 이들에 따르면 중화인민공화국은 ‘소련의 위성국으로 반전통적 반문명적, 1인 독재적, 팽창주의적 공산국가’였다. 이러한 인식은 문화대혁명 발발을 전후하여 한층 더 확산되고 강화되었다. 각종 대중 언론매체는 문화대혁명을 ‘비정상적 권력투쟁’이라고 반복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비이성적, 반문명적, 호전적, 팽창적 중공’, ‘혼란과 내전 그리고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불안한 중공’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냉전기 한국인에게 ‘자유중국’으로 호칭된 또 다른 중국, 즉 중화민국이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대치한 반공 자본주의진영의 또 다른 최전선이었던 점에, 과거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함께했다는 유대감이 더해져 중화민국은 한국인에게 ‘반공우방’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중화민국은 단순한 반공우방이 아니었고, ‘농업근대화의 모델’이기도 했다. 성공적인 토지개혁을 바탕으로 다방면에 걸친 농업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타이완은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 모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타이완 인식은 이른바 ‘외성인’의 관점에 입각한 것이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특히 신중국 건설을 둘러싼 중국공산당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중국국민당 및 그들과 함께 타이완으로 이주한, 그리하여 타이완의 지배세력이 된 중국인, 즉 외성인의 관점에 입각한 인식이었다. 그리하여 국민당의 타이완 접수, 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2?28사건’은 주목되지 않았으며, 약 50년 동안 지속된 일제 지배로부터 기인한 타이완사회의 일본풍에 대해 “괴이하고 기이하다.”며 강한 이질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요컨대 한국인의 타이완에 대한 연대와 유대감은 정치 이념적으로는 반공, 문화적으로는 대륙의 중국문화에 기초한 것으로 이는 외성인을 매개한 것이었다. 둘째, 이상과 같은 분열된 중국인식은 동아시아 냉전구도의 변화에 따라 일정한 변화를 보였다. 새로운 관점의 이해와 관심이 표출되면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국제관계를 보는 데 있어 이데올로기의 속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거나 한국인 독자의 이해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으며, 중공을 대신하여 중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자거나 공산중국의 수립을 근대화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제기되었다. 1970년대에는 미중화해에 따라 유사한 관점들이 좀 더 활발해져갔다. 중국국공산당의 권력 장악을 근대화의 과정으로 보아야한다는 관점이 확산되는 가운데, 타이완을 더 이상 자유중국으로 부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문화대혁명을 ‘인간혁명’으로 평가한, 반공냉전형 중공인식과는 유형을 달리한 중국인식이 등장하기조차 했다. 반공이데올로기와 외성인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타이완을 인식하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특히 계엄 해제 후 본격화된 민주화바람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반공이데올로기와 외성인의 관점에 가려졌던 이른바 ‘성적갈등(省籍葛藤)’의 양상이 한국인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28사건이 재조명되었고 본성인이 겪야 했던 정치적 소외와 문화적 억압들의 양상들이 새롭게 주목되었다. 그동안 외성인을 매개로 형성된 기존 한국인의 타이완인식에 균열이 생기면서 타이완사회가 보다 다층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타이완인식에서도 탈냉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셋째, 이상과 같은 한국인의 중국인식을 동아시아 냉전의 형성과 그 변화를 단순히 반영한 것이거나 그 산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온당치 않다. 그것은 분명 동아시아 냉전(과 그 변동)의 양상을 반영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한국인이 독자적으로 중국을 사고하고 이해하려한 지적 노력의 산물이었다. 20세기 중후반 냉전시기는 한국인이 일본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중국을 이해하고 이것을 체계화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따라서 앞서 살핀 한국인의 중국인식은 한국인의 어떤 지적 노력의 산물이었는지, 그리하여 어떤 학문적, 지적 논리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책에서는 냉전기 대표적인 중국근현대사 연구자로 김준엽, 민두기, 리영희 등에 주목하고 이들의 연구활동을 비교 분석하여 이들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중국인식의 유형과 그 내용을 해명하고자 했다. 냉전기 근현대중국에 대한 연구자의 관심과 해석은 반공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1950년대 김준엽의 공산당사 연구가 대표적인 중국근현대사 연구였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공주의에 입각한 공산당사만으로는 근현대 중국사를 해석하고 구성할 수는 없었다. 중국근대사는 중국공산당사로 등치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사 연구와 해석은 반공이데올로기라는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반공주의와 호응하는, 중국근대사 전체를 시야에 넣고 해석해낼 수 있는 논리가 필요했다. 1950년대 말부터 한국에 유입된 근대화론은 근현대중국을 해석하고 그 역사를 구성할 수 있는 관점과 논리를 연구자에게 제공했다. 김준엽이 중국공산당사 연구를 중국근대사 연구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화론을 중국사 해석 논리로 수용한 이후였다. 그는 근대화를 서구화와 동일시하고 후발국이 서구문화, 특히 자유와 민주주의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근대화를 달성해야 한다고 사고한, 전형적인 근대화론자였다. 그는 자신이 이해한 근대화론에 입각하여 중국근대사를 해석했다. 즉 근대사회로 진입할 내부 동력을 갖지 못한 중국은, 아편전쟁을 계기로 선진문명인 서구의 충격을 받아 비로소 근대사회에 진입할 기회를 맞았으며, 이후 중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서구문화를 수용해 가는 근대화의 도정에 들어섰다. 그에게 중국근대사는 서구화과정이었으며, 따라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은 근대화의 실패이자 근대화로부터의 일탈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대한 평가는 김준엽의 그것이 유일하지는 않았다. 김준엽과는 다른, 아니 상반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대한 관점과 해석이 1960년대에 들어 제기되기 시작했다. 민두기와 리영희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중국적 근대화의 실현’으로 해석했다. 이는 근대화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기인했다. 민두기는 김준엽과 동일하게 근대화는 서구화이며 후진국이 달성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지만, 김준엽과 달리 근대화의 핵심과제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아닌 국가수립에 주목했고 국가수립 과정에서 주체성 여부를 중시했다. 리영희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중국적 근대화의 실현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 의미와 근거는 민두기와 달랐다. 근대화를 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인데, 민두기에게 근대화는 후진국이 주체적으로 달성해야 할 과제였지만, 리영희에게 그것은 비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리영희의 관점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추구한 한국 근대화 정책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는 경제성장과 발전 위주의 근대화가 초래한 정치, 사회, 문화적 차원의 부정적 결과에 주목하여 근대화를 비판했고 대안을 찾고자 했다. 그는,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등 혁명운동을 통해 제국주의에 대항하고 마침내 그것을 극복한 근대 중국인들의 역사적 경험에 주목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은 그에게 혁명운동의 승리였고, 서구(혹은 서구적 근화)의 극복이었다. 이상 3인의 근대화에 대한 이해는 중국근현대사의 구성에도 반영되었다. 김준엽은 신해혁명을 자유와 민주주의의 문제를 중국역사에 근대화의 과제로 제기한 중대한 사건으로 주목했고 이후 중국의 역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역사로 서술하고 구성했다. 반면 민두기는 주체적인 국가수립의 첫 시도로 1898년 무술변법운동에 주목했으며, 신사층과 청대 봉건론 등 전통이 서구적 정치론 수용과 어떻게 결합되면서 근대국가 수립 시도로 구체화되었는지를 해명했다. 그에게 근대화는 김준엽의 분석처럼 중국인들이 서구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전통적 자산을 활용하여 주체적으로 근대국가를 수립해가는 과정이었다. 한편 중국적 근대화를 서구(적 근대)에 대한 도전이자 극복으로 본 리영희는 서구문명을 극복할 수 있는 논리, 즉 혁명사상의 형성 문제에 주목했다. 혁명사상은 태평천국운동에서 태동되었다고 보아 그는 태평천국운동을 근대화의 시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태평천국운동에서 시작된 혁명사상은 5·4운동 시기에 이르러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하면서 서구문명을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맞았고 마침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혁명사상은 현실에서 일단락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이들 3인의 연구결과는 어떠한 유형의 중국인식을 대변할까. 김준엽의 연구는 반공주의에 입각한 주류적 중국인식, 즉 반공냉전형 중공인식의 학술적 버전으로, 그에게 근현대 중국사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쟁취하는 근대화과정이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근대화로부터 일탈한,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반공주의에 입각한 근현대 중국사 연구에 비판적이었던 민두기는 근대화론과 전통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근현대역사를 주체적인 근대국가 수립의 역사로,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주체적 근대화의 노력이 일단락된 것으로 간주했다. 근대주의자였던 그에게 중국은 ‘주체적으로 근대화를 달성한 사례’였다. 그리고 근대화 자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그 대안을 모색했던 리영희에게 근현대사는 반제국주의, 반봉건을 지향한 혁명운동의 역사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은 그러한 혁명운동의 성공, 즉 서구근대문명에 대한 도전이자 그 극복의 일단락을 의미했다. 문화대혁명을 제3의 인간유형을 창조하려는 시도로 이상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에게 중국은 ‘근대의 대안’이자 ‘한국사회를 되돌아보는 거울’로 간주되었다. 이 책에서 담은 내용들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갖는다. 첫째, 냉전시기를 보다 다층적, 역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냉전시기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반공 냉전이념에 의해 압도된 것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비록 반공 냉전 이념의 영향은 컸지만 그것과 거리를 두거나 그것에 비판적이었던 중국이해와 관심도 표출되어 상호 병존하면서 경쟁하는 양상을 보였다. 둘째,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문화냉전의 양상을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학계에서 표출된 다양한 중국인식은, 한국인들의 냉전체험의 차이, 특히 대표적인 냉전담론인 미국발 근대화론에 대한 수용, 재해석 그리고 비판 과정에서 표출되고 형성된 것으로, 이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문화냉전이 일방적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한국 현지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셋째, 오늘날 한국사회의 중국인식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중수교 이후 오늘날 한국사회의 중국을 보는 시선은 냉전을 배경으로 형성, 체계화된 중국인식이 재현되고 있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학계의 경우에도 비록 그 근거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냉전시기에 형성된 중국인식의 유형의 또 다른 버전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만큼 냉전이 오늘날에 미치는 영향은 넓고도 깊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중국인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은 한반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탈냉전을 상상하는 데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중 하나의 시도로 근대주의적 중국인식과 이상주의적 중국인식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그런 비판적 중국연구에 입각한 다양한 학술활동의 전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정문상 연세대학교에서 「국민혁명기 상해지역 학생운동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푸단대학(復旦大學) 역사학과 고급진수생(高級進修生),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연구교수,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UCI) Research Professor 등을 역임하고, 현재 가천대학교 가천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중국의 대학교육과 대학문화, 동아시아 냉전문화 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의 국민혁명과 상해학생운동』(2004), 『공자, 현대중국을 가로지르다』(2006/공저), 『20세기초 상해인의 생활과 근대성』(2006/공저), 『반전으로 본 동아시아』(2008/공저), 『한중관계의 역사와 현실』(2013/공저), 『연동하는 동아시아를 보는 눈』(2018/공저), 『중국근현대사 강의』(2019/공저)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당안관리학 개론:중국의 현대 기록관리학』(2003)이 있다. 최근 발표한 주요 논문으로는 「1930년대 중반 上海 대학생의 신생활운동과 군사문화의 확산」(2018), “How South Koreans Interpreted Modern China”(2018), 「1930년대 자유주의자의 대학교육개혁구상과 학술독립」(2019), 「從“衝擊-反應論”到“時代環境-適應論”」(2019) 등이 있다.
목 차
목 차 책을 펴내며 서 장 제1부 분열된 중국:“중공”과 “자유중국” 제1장 “반공 냉전형 중공인식”의 전개와 동요 Ⅰ. 들어가며 Ⅱ. “반공 냉전형 중공인식” Ⅲ. “중공”과 “중국” 사이에서 Ⅳ. 미중화해와 “이상화된 중국인식”의 표출 Ⅴ. 나가며 제2장 문화대혁명과 “반공 냉전형 중공인식” Ⅰ. 들어가며 Ⅱ. 대중 언론매체의 문화대혁명 보도와 관점 Ⅲ. 학계의 문화대혁명 이해와 시각 Ⅳ. 나가며 제3장 “자유중국”에서 타이완으로 Ⅰ. 들어가며 Ⅱ. 일본문화에 압도된 반공우방 Ⅲ. 농업근대화의 모델 Ⅳ. 자립과 자강 의지가 넘치는 강소국 Ⅴ. 민주화 도정에 들어선 타이완 Ⅵ. 나가며 제2부 중국을 보는 세 가지 시선 제4장 반공주의자의 중국:근대화의 일탈 Ⅰ. 들어가며 Ⅱ. 독립운동가에서 역사학자로 Ⅲ. 계몽과 역사학 Ⅳ. 중국의 근대화 Ⅴ. 중국체험, 냉전 그리고 학문 Ⅵ. 나가며 제5장 근대주의자의 중국:주체적 근대화의 사례 Ⅰ. 들어가며 Ⅱ. 고대사에서 근대사로 Ⅲ. 철저한 고증과 객관 Ⅳ. 주체적 근대화:전통의 근대적 변모 Ⅴ. 반제 대중운동의 전개와 근대화 Ⅵ. 나가며 제6장 이상주의자의 중국:근대의 대안이자 거울 Ⅰ. 들어가며 Ⅱ. “전환시대”와 중국 Ⅲ. “인간혁명”과 한국근대화 비판 Ⅳ. 개혁개방과 문화대혁명의 유산 Ⅴ. 나가며 종 장 보론|냉전기 북한의 중국인식-한국전쟁 후 중국방문기를 중심으로- Ⅰ. 들어가며 Ⅱ. “피로 맺어진 형제의 나라” Ⅲ. “노동 인민이 주인된 나라” Ⅳ. “농업집단화에 성공한 나라” Ⅴ. 나가며 참고문헌 주석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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