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파란만장 고려왕사 : 34인의 왕, 474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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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파란만장 고려왕사 : 34인의 왕, 474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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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98822781
쪽수 : 328쪽
석산  |  깊은나무  |  2021년 0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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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의 특징 우리 역사상 가장 진취적인 시대이자 가장 굴욕적인 시대, 고려 474년을 다스린 왕의 목소리에서 배우는 파란만장한 참역사. 후삼국 통일, 무신정권, 몽골의 침입, 위화도 회군 등 거대한 사건 속에서 왕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또한 그들은 백성을 위해 어떤 목소리를 냈는가. 리더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통사적 역사를 재미있게 읽으며 그 모든 의미를 되새겨본다.
저자 소개
저자 : 석산 전문 작가, 본명과 필명으로 융합형 작품을 내놓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심리학으로 들여다본 그리스로마신화》,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이기는 리더십 10》, 《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 《명작에게 사랑을 묻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기》 등과 삼성생명의 콘텐츠 자료로 활용된 《대화의 연금술》 등이 있다. 삼성SDS, 우리은행, 한국산업단지공단 등 주요 경영잡지에 기고했다. KBS 해피FM에 다년간 고정 출연했으며, YTN, SBS, MBN, BBS, WBS, EBS 등 방송매체와 KIRD(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EMC, 대학교 등 다양한 단체에서 강의했다.
목 차
제1부 후삼국실록 1 천하 대란의 시대, 내가 왕이다 천년 왕국의 끝자락, 제도의 와해 | 천하 대란의 불쏘시개-세금 독촉장 | 견훤과 궁예-확고한 비전 제시로 후삼국의 문을 열다 | 견훤과 궁예, 군웅할거를 정리하다 | 궁예, 왕건을 영입해 견훤을 추월하다 2 승자의 갈림길, 내분이냐 단합이냐 호족을 버린 궁예가 미륵불을 자처하다 | 왕건의 흡입력, 궁예의 독선을 누르다 | 견훤 대 왕건, 성동격서 전략을 주고받다 | 왕건과 견훤이 가시 돋친 편지를 교환하다 | 왕건과 견훤의 일진일퇴 | 내분으로 진 견훤, 단합으로 이긴 고려 제2부 고려실록 1대 창업 군주 태조 - 왕조의 로드맵을 제시하다 나는 고구려인이다 | 정략결혼으로 친위 인맥을 형성하다 | 조직 관리 방식-당근과 채찍 2대 혜종 - 리더의 첫째 미덕은 용기 배경이 약한 주름살 왕 | 파워 밸런스에 실패하다 | 산토끼 쫓다가 집토끼를 놓쳤다 | 리더가 변덕스러우면 소인배가 몰려든다 3대 정종 - 왕은 모든 백성의 왕이어야 한다 의욕은 넘쳤으나 편파적이었다 | 중재 리더십의 포기 4대 광종 - 거침없는 결단력 준비된 리더, 리바이어던 | 준비하는 리더의 롤 모델, 당 태종 정관의 치 | 외국인 쌍기를 등용하다 | 민심 확보와 기득권 견제의 묘수, 호족들에게 떨어진 날벼락 | 공정 인재 등용책을 내놓고 피의 숙청을 하다 5대 경종 - 구심력을 포기한 화합 정책 설익은 화합 정책 | 현명했으나 권력의지가 약했다 | 후계자 선정은 탁월했다 6대 성종 - 성군이 현명한 신하를 부린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성했다 |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한다-내치 최승로, 외교 서희 | 고구려 땅을 내줄 수 없다 | 제도와 문물을 정비하다 7대 목종 - 천추태후의 치마폭에 싸이다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했다 |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야심 | 목종이 강조의 반란을 조장하다 8대 현종 - 스스로 디자인한 리더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 | 역경을 통해 직감적 통치력을 기르다 | 거란의 침입을 막다 | 강감찬, 거란에게 발해의 원수를 갚다 | 송나라가 고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 역사적 교훈을 중시하다 9~10대 덕종?정종 - 부왕의 길을 따르다 내치는 덕이 있었고, 외치는 엄격했다 | 거란의 기를 꺾다 | 명분보다 안정과 실리를 추구했다 | 천리장성 축조를 마무리하다 11대 문종 - 황금시대를 연 펭귄 리더십 기본기를 갖추었다 | 백성 위주로 법을 고치다 | 문종의 러닝백- 해동공자 최충과 이자연 | 서방에 알려진 코레아, 코레아 | 교육을 장려해 사학이 융성했다 12~14대 순종?선종?헌종 - 중도정치 부정이 그리워 여막에서 쓰러지다 | 거란이 공물을 바치다 | 후계자 선정 실패 | 왕의 무게에 짓눌리다 15대 숙종 - 카리스마의 상징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교활함 | 제3의 수도 건설과 기마 부대 창설 | 최초의 화폐 해동통보 발행 16대 예종 - 여백이 있는 왕 <서소>를 쥐고 영토를 확장하다 | 왕과 신하가 시로 화답하는 세상을 꿈꾸다 17대 인종 - 우유부단, 좌고우면의 대명사 왕조 위기의 서막 | 양위 조서까지 받은 이자겸의 난 | 묘청에게 농락당하는 왕 18대 의종 - 향락에 취한 왕 거친 천리마 대신 편한 노새를 택하다 | 왕명은 고자가 내린다 | 무신의 쿠데타 | 무시당하는 왕 19대 명종 -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을 거쳐 최충헌을 만나다 소심한 왕, 왕 자리로만 만족한 왕 | 비윤리적 집단의 윤리적 지도자 경대승 | 독종 이의민을 넘어선 최충헌 20~22대 신종?희종?강종 - 최충헌의 허수아비 악어의 눈물, 이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 장기 집권의 틀을 만들다 23대 고종 - 30년 대몽 항쟁, 말년에 찾은 왕권 안정된 무신 정권을 흔드는 외부 변수 | 칭기즈칸의 명령 “고려는 몽골의 형제국이 되어라” | 30년 대몽 항쟁의 서막 | 강화도 천도 | 천국 강화도, 지옥 내륙 | 춘주성, 충주성의 영웅적 전투 | 최충헌의 노비가 최 무신 정권을 끝내다 24대 원종 - 세계 지배 구조에 편입되길 원하다 친원 정책으로 무신 정권을 종식시키다 | 고려의 마지막 자존심, 삼별초 | 가자 진도로, 그리고 제주도로 | 백성 앞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25~30대 충렬왕?충선왕?충숙왕?충혜왕?충목왕?충정왕 - 위에서 눌리고 아래를 누르다 스톡홀름 신드롬 | 일본 정벌에 동원되어 만난 가미가제 | 충선왕, 원격 정치 전지 정치 | 충선왕의 이중 플레이 탓에 만주를 놓치다 | 충혜왕, 충동조절장애자 | 충목왕과 충정왕, 두 모후가 권력을 다투다 31대 공민왕 - 고려왕조의 마지막 횃불 노국공주와 함께 배원 정책, 민족성 회복의 깃발을 들다 | 신돈을 선택하고 신돈을 버리다 32대 우왕 - 이인임을 아버지라 부른 왕 15년 동안 이인임이 왕이었다 | 홍산대첩 스타일과 황산대첩 스타일 | 최영의 요동 정벌론과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33~34대 창왕?공양왕 - 이성계의 도약대 두 왕의 축출 논리를 세우다 | 토지 문서를 불태워 조선왕조의 새 길을 밝히다
출판사 서평
파란만장하다! 태조 왕건, 29명의 부인과 34명의 자녀를 두다. 광종, 개국 초의 혼란기를 극복하고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 현종, 전세계 GDP 50%를 차지한 송나라를 굴복시킨 최강 거란을 물리치다. 문종, 벽란도에 들어온 아랍상을 통해 서방세계에 코레아(Corea)를 알리다. 숙종, 조선 세조처럼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다. 예종, 전국의 감옥이 비었을 만큼 선정을 베풀며 요순 시대를 꿈꾸다. 목종, 마마보이로 천추태후의 연인 김치양에게 살해되다. 성종, 고려 최고의 성군이 되다. 인종, 이자겸의 난으로 가택연금의 수모를 겪다. 의종, 김돈중이 수염을 태운 정중부가 무신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잃다. 희종,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폐위당하다. 원종, 100년 무신정권이 막 내리며 원나라에 입조하다. 육충왕(충렬, 충선,충숙,충혜,충목,충정), 원나라에 굴복한 수치스러운 역사의 이름이 되다. 공민왕,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개혁을 포기하다. 34명의 왕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왕건이 왕이 된 후 34명이 고려를 다스렸다. 우리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서건, 교과서를 통해서건 조선 왕이 무엇을 했는지는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다. 아이들도 “태정태세문단세……”라고 리듬을 타서 왕조의 순서를 외울 정도다. 아마도《조선왕조실록》이라는 소상한 기록물이 남아 있기 때문이겠지만, 고려 시대도 조선 시대 이상으로 파란만장하고 되돌아볼 교훈이 많은 시대다. 어쩌면 더 극적일지도 모른다. 거란이 중원으로 진출하려던 성종 시대에는 오히려 과감하게 강동 6주까지 국토에 포함하며 북으로 진출했다. 반면 무신정권 이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왕권을 행사하던 원종은 몽골의 속국을 자처했다. 이후 고려는 몽골식 변발을 하는 등 사실상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물론 당시 몽골에 대항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하지만 성종 때의 거란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세력이었다. 결국 누가 앞에서 이끄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가 된다는 것을 고려 왕을 통해 우린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래서 고려 왕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통사적 의미가 있는 고려 왕 이야기 일반적으로 고려에 대한 지식은 파편화되어 있다. ‘태조 왕건’, ‘무신정권’, ‘최영 장군과 이성계’ 식으로 모든 역사가 따로 논다. 역사는 그렇게 따로따로 흘러가지 않는다. 역사에는 원인이 있으며 결과가 있다. 왕조시대에는 원인을 만든 것도 왕이며 결과를 만든 것도 왕이다. 그래서 왕의 이야기를 읽으면 원인과 결과를 모두 알게 된다. 시대정신을 통사적 의미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에 열거한 세 가지 단어도 통사적으로 해석하면 하나의 사건으로 묶을 수 있다. 왕건은 건국을 하며 ‘고구려 고토 회복’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북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인 서경(평양)을 중시하라고 후대 왕에게 유언으로 남겼다. 이후 서경은 후대 왕들에게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된다. 서경 세력과 개경 세력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왕권이 확립되거나 흔들렸다. 인종은 고려 전성기에 왕권을 물려받았으나 외척인 이자겸에 의해 제거될 뻔하자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품고 서경으로 천도를 하려 했다. 하지만 서경 천도는 무위로 끝난다. 이는 결과적으로 무신이 천대받는 환경으로 이어진다. 고토 회복 쪽으로 나라의 뜻이 모였다면 상대적으로 무신이 우대받을 수 있지만 그 뜻이 꺾였기에 문신이 더욱 득세하게 된 것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무신은 의종 시대에 변란을 일으켜서 왕을 꼭두각시로 만든다. 왕권이 무너지고 무신에게 지배당하는 상황에서 몽골이 강성해지자 고려는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결국 식민지나 다름없는 시기를 거치고 나서, 원(몽골)이 쇄하고 명이 흥하자 최영은 다시 북벌(고토 회복)로써 나라를 다시 세우고자 했으나, 현실적인 이성계에 가로막혀 고려 역사는 막을 내린다. 이처럼 단편적인 사건도 통사적으로 바라보면, 의미가 남다르다. 그것도 하룻밤에 읽을 만큼 재미있는 ‘파란만장’한 통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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