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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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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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30636030
쪽수 : 396쪽
이덕일  |  다산초당  |  2021년 0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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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성현의 말씀에 남녀와 반상의 차별이 어디 있는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형당한 당대 최고의 선비, 윤휴 340년의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다! 윤휴의 죄는 세 가지였다. 첫째,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주자의 학설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 죄, 둘째 서인 당파의 당론이었던 북벌 불가에 저항하며 조선을 동아시아의 맹주로 만드는 부국강병을 도모한 죄, 셋째 사대부 계급의 특권을 타파하고 반상과 남녀의 차별을 넘어선 세상을 실현하려 한 죄. 이 때문에 윤휴는 죽어야 했고 그 이름은 조선 최대의 금기어가 되었다. 그가 송시열과 노론 기득권 세력에 의해 사문난적(斯文亂賊)과 역적으로 몰려 사형당한 지 340여 년이 지난 지금, 역사가 이덕일은 10여 년에 걸친 열정적인 연구와 치밀하고도 섬세한 고증으로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윤휴의 삶과 사상을 오롯이 되살려낸다.
저자 소개
저자 : 이덕일 1961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덕일은 숭실대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에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시작으로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역사학자로서의 사료에 대한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과,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의 본능적인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한 부분을 건드려왔다. 그리고 언제나 발표하는 저술마다 논쟁의 중심에 섰으 며 역사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왔다. 윤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지 340여 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윤휴의 삶을 통해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나와 다른 너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증오의 시대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1~3》(10권까지 근간), 《이덕일의 한국통사》,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조선 왕 독살 사건》,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조선 왕을 말하다》, 《근대를 말하다》, 《리지린의 고조선연구》(해역), 《북한학자 조희승의 임나일본부 해부》(주해) 등이 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갈 신주류 사학의 정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목 차
개정판 서문 서문 1장 요동치는 대륙과 북벌의 희망 윤휴, 비밀 상소를 올리다 오삼계의 거병과 숭정제의 비극 청 태종, 중원을 집어삼키다 영력제를 죽인 오삼계가 복명의 기치를 올리다 파란의 정치 인생을 시작하는 윤휴 2장 주자를 거부하고 진리를 탐구하다 아버지의 신원을 위해 상언하다 복수 설치를 꿈꾸던 아름다운 시절 의리는 주자의 독점물이 아니다 서인들, 예송논쟁에서 계략을 쓰다 날아드는 절교장과 학문 세계로의 침잠 3장 시대의 혁명아, 출사를 결심하다 제2차 예송논쟁과 서인들의 후퇴 소년 숙종의 즉위와 뜻밖의 선택 송시열의 빈자리를 채울 유일한 대안, 윤휴 4장 윤휴의 도전과 기득권 세력의 조작극 14세 소년 숙종과 58세 윤휴의 첫 만남 자강이 먼저인가 선공이 먼저인가 삼복 제거 음모와 명성왕후의 정치 개입 부디 대비의 정사 관여를 엄금하소서 북벌의 깃발 아래 모여드는 당파들 5장 신분제를 해체해야 조선이 살아난다 호패가 적을 막을 수 있는데 왜 우리가 싸우겠는가 백골과 아이에게 군역을 지우지 말라 서얼을 허통하여 부국을 도모하소서 6장 말뿐인 북벌을 넘어 행동하는 북벌로 강희제와 오삼계, 형주를 두고 대치하다 북벌을 주장하는 상소가 잇따르다 반대에 부딪히는 전차 제작 백성들이 응시할 수 있는 무과를 실시하다 군사 총사령부 설치를 주장하다 7장 총공세에 나서는 서인 세력들 사직과 출사를 거듭하는 윤휴 바뀌는 숙종의 마음 남구만, 허적을 저격하다 서인들의 조직적 공세, 금송 사건 8장 소현세자 후손 추대 사건 오삼계의 죽음, 끝나가는 삼번의 난 강화도의 변서(變書)와 송상민의 상소 남인 정권을 정리하려는 숙종 9장 금기가 되어버린 이름 숙종, 하룻밤 사이에 정권을 교체하다 역모 사건의 덫에 걸려드는 허적 시대의 우환을 짊어진 죄 나라에서 유학자를 왜 죽이는가? 공작 정치의 나날들 윤휴의 빈자리
출판사 서평
주자학의 교조에 얽매이지 않았던 자유로운 사상가 윤휴, 일반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것이다. 1617년에 태어나 1680년에 사망한 유학자이자 경세가다. 성장기에 전란을 겪었던 윤휴에게는 특별한 스승이 없었다. 이 때문에 어떤 제약도 받지 않은 채 학문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주자는 본래 장과 절의 구분이 없었던 『중용』을 33장으로 나누고 장의 끝에 장하주(章下註)라는 이름으로 해석을 붙인 후 다시 130개의 절로 나누었다. 그런데 윤휴는 이런 주희의 구분을 따르지 않고 10장 28절로 나누었다. 윤휴는 『중용 독서기』에서 중용을 「천명(天命)」, 「중용(中庸)」, 「비은(費隱)」, 「행원(行遠)」, 「문왕(文王)」, 「박학(博學)」, 「자성(自成)」, 「성인(聖人)」, 「중니(仲尼)」, 「상경(尙絅)」의 10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이상 『중용장구』 차례를 이와 같이 교정하였다.”라고 밝혔다. 윤휴가 『중용 독서기』에서 주자의 설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주희와 다른 장절 구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주자를 절대화하던 서인 세력들로부터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렸던 것이다. ‘사문난적’이라는 낙인은 훗날 윤휴가 사형당하는 주요한 구실이 된다. 당시는 주자의 학설이 절대적인 이데올로기로 굳어가던 때였다. 특히 송시열 등 서인 세력은 주자학을 통해 신분 질서를 강화하려 했으며 양반 사대부의 특권을 굳히고자 했다. 이러한 시대에 유학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으로 반상을 차별을 뛰어넘으려 했던 윤휴는 서인들에게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 말뿐인 북벌에서 행동하는 북벌로 윤휴는 57세가 되어서야 조정에 출사했다. 비록 벼슬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산림山林이었지만 그 학문적 권위만큼은 송시열과 겨룰 정도였다. 초야에 묻혀 있던 그가 정치 일선에 나선 것은 평생 가슴속에 품어왔던 뜻, 즉 북벌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였다. 당시 집권층이던 서인들은 겉으로는 북벌을 외쳤지만 속으로는 북벌 불가가 당론이었다. 그들에게 북벌은 군주를 압박하고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공허한 슬로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윤휴는 청나라를 치는 북벌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여겼다. 당시 대륙에서는 오삼계, 상가희 등 삼번의 난이 일어나 혼돈에 휩싸인 상태였고 대만을 장악한 정성공 등 우호 세력도 있었다. 윤휴는 백성들이 주체가 되는 북벌을 통해 조선을 동아시아의 맹주로 만들려 했고, 평민들을 위한 무과인 만인과를 실시하고 전차를 제작하는 등 실제적인 북벌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집권 사대부들은 청나라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고 윤휴의 북벌 플랜을 그저 큰소리치기 좋아하는 사람의 헛된 공상으로 치부했다. 윤휴는 북벌 준비를 위한 구체적인 기관으로 체부(體府)를 설치하고 황해도에서 전차를 만들었지만 이 역시 역모의 빌미가 되었을 뿐이다. 반상의 차이를 넘어 남녀의 차별까지 윤휴는 벼슬을 하지 않은 백두白頭의 신분으로 백성들의 질고를 몸소 함께했다. 그러기에 죽은 사람과 간난아이까지 군포를 부과하는 군적수포제 대신 양반 사대부들이 군역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호포법과 구산제를 주장했다. 또한 성현의 말씀을 배우는 데는 남녀의 구별이 없다고 여기고 여성들에게도 학문을 가르쳤다. 『효경(孝經)』과 『시경(詩經)』의 「주남(周南)」, 「소남(召南)」 등이었다. 성리학이 남존여비의 이론적 무기로 변해가던 조선 후기에 여성들에게도 경전을 가르친 것이다. 조선 초 권근(權近)은 『시경』 주석서인 『시천견록(詩淺見錄)』의 첫 머리에서 “「주남」은 규문(閨門: 여성의 거처)의 일로부터 시작해 천하의 일에 통달하는 것이요, 「소남」은 천하의 일로부터 말미암아 규문의 일에 근본을 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남」, 「소남」은 여성들에게 삼종지도를 강요하는 책이 아니라 가정사와 천하의 일이 하나임을 말해주는 책이었다. 윤휴는 반상의 차이를 넘어 남녀의 차별까지 넘어서려 한 것이었다. 지금 왜 윤휴를 말하는가? 윤휴는 조선 개혁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윤휴에게 조선은 소변통(小變通), 즉 작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에 가까운 대변통(大變通)이 요한 나라였다. 그는 평민을 위한 무과인 만인과와 서얼 허통 등을 통해 인재를 길러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북벌을 추진했다. 이러한 그랜드 디자인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윤휴가 주자의 해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소신으로 학문 세계를 수립한 자유로운 사상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진영 논리에만 집착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모두 대한민국을 개혁할 그랜드 디자인과 정책이 없고 정치인들의 이미지 메이킹에만 주력하는 모습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할 그랜드 디자인은 무엇인가? 금기어가 되어버린 조선 개혁가의 삶과 사상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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