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질병과 의료, 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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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질병과 의료, 명의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질병과 의료, 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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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34988373
쪽수 : 356쪽
박영규  |  김영사  |  2021년 0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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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조선을 뒤흔든 10가지 질병으로 보는 생로병사 풍속도 감기, 종기, 중풍부터 홍역, 천연두, 학질까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위협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조선인들이 가장 두려워한 질병은 무엇이었을까? 고작 감기로 생사가 갈렸던 시대엔 질병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역병으로 온 나라가 팬데믹에 빠지면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의학 교육의 산실 전의감과 대표 서민 병원 혜민서 등의 의료 시설부터, 세종의 소갈증과 송시열의 치질 등 조선 땅을 휩쓴 10대 질병과 그 치료법, 왕들이 앓았던 질병과 사인(死因), 그리고 의술로 이름을 날린 명의와 각종 의서까지. 열악한 환경에서도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을 세우고 백성을 구제해온 조선인들의 질병에 대한 끈질긴 투쟁기.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500년 조선 의료의 모든 것, 조선 메디컬 사전.
저자 소개
저자 : 박영규 역사 대중화 열풍을 일으킨 대중 역사 저술가이자 밀리언셀러 실록사가. 200만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한 이후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아홉 권의 ‘한 권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를 펴냈다. 최근에는 《왕비들의 전쟁》 《크리미널 조선》 《조선 왕실 로맨스》 《에로틱 조선》 등 다채롭고 흥미로운 조선 주제사를 선보이고 있다. 《정조와 채제공, 그리고 정약용》 《조선전쟁실록》 《조선명저기행》 등 그간 30여 권이 넘는 역사서를 집필했다.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해 소설가로 등단했으며, 《책략》 《밀찰살인》 등의 소설을 펴냈고, 동양 역사와 철학에 관심을 두고 《깨침의 순간》 등 사상서를 썼다.
목 차
들어가는 말_ 조선인들의 질병 투쟁기를 펴내며 1장 조선의 의료 체계와 의료 시설 조선 의료 행정의 중심, 전의감 업무와 조직|의관 선발|약재 재배와 관리|내의원에서 밀려나면 전의감으로?|동물 치료도 병행한 전의감 의사들 왕실 전담 병원, 내의원 업무와 조직|내의원의 실질적 수장, 어의|내의원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 서민 의료 전담 병원, 혜민서 업무와 조직|의녀 선발과 교육|의녀의 임무|사건으로 본 혜민서의 역할 행려병자 구제를 위한 시설, 활인서 업무와 조직|활인서의 터줏대감 무녀들|버려진 시신들 조선시대의 찜질방, 한증소 승려가 관리한 치료소|한증소는 사라졌을까?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 탄생 과정과 개원|초대 병원장으로 취임한 알렌|제중원의 시작과 끝 2장 조선 백성을 괴롭힌 10대 질병 의외로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된 감기 어전회의에서 아들 감기를 고쳐달라고 호소한 형조판서|감기를 핑계로 사신을 피한 세종|감기에 대한 의학적 인식과 치료 천민에서 왕까지 쉽게 피하지 못한 치질 송시열을 괴롭혔던 고질병|치질 때문에 원접사를 바꾸다·76|치질로 고생한 문종과 성종, 토끼 똥을 발랐을까? 걸리면 인생 종 쳤다고 생각한 중풍 중풍에 걸리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중풍 치료약으로 쓴 누금원과 속명탕 세종과 황희를 평생 괴롭힌 종기 종기로 고생한 세종|종기 때문에 사직을 청한 황희|종기 치료약으로 쓰인 고약과 거머리|신비의 제독제 흡독석 부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던 소갈증 부자들만 걸리던 병|어떤 방식으로 소갈증에 대처했을까? 살아서 죽음의 고통을 맛보는 학질 어린아이와 노인이 가장 두려워하던 질병|학질을 물리치는 노래를 지어 부른 정약용|학질의 증상과 대처법 소문만 듣고도 10리 밖으로 달아났던 염병 염병에 대한 조선 백성의 두려움|연일 죽어나가는 죄수들|염병에 대한 대처와 민간요법 집안의 대를 끊는 악귀 홍역 대유행으로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다|문인들의 글에 등장하는 홍역|전설의 영약 백화사환 사회적 거리 두기의 원조 천연두 천연두의 역사|천연두 예방은 강력한 ‘거리 두기’ 방식으로|천연두에 대한 의학계의 대응|정약용과 지석영의 종두법 도입 악병의 대명사 나병 하늘이 내린 천형으로 여긴 질병|태워지거나 버려진 나병 환자들|나병 환자를 치료한 관리|나병 치료에 쓰인 명약 3장 조선 왕들의 질병과 죽음 종기를 가볍게 여겼다가 풍을 맞고 쓰러진 태종 온갖 질병으로 온몸에 통증을 달고 산 세종 종기를 등한시하다 허망하게 급사한 문종 아토피와 흉복통으로 고생한 세조 감기를 앓다 돌연사한 예종 대장암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성종 얼굴 아토피에 시달린 연산군 심열증과 종기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중종 고의로 영양실조에 걸린 인종 어머니가 만병의 근원이었던 명종 어이없는 죽음을 맞은 선조 폐위가 오히려 장수의 비결이 된 광해군 피해망상증으로 진찰조차 거부한 인조 뜻밖의 의료사고로 죽은 효종 각종 질병으로 평생 환자로 지낸 현종 잔병치레 없이 비교적 건강을 누린 숙종 병상을 벗어나지 못한 경종과 무병장수한 영조 평생 종기로 고생한 정조 4장 조선을 풍미한 명의 죽음의 문턱에서 태조 이성계를 회생시킨 양홍달 태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일본 출신 의사 평원해 조선 초기 최고의 의사 반열에 오른 노중례 왕의 주치의가 된 유일한 의녀 대장금 허준과 쌍벽을 이룬 명의 양예수 동방의 편작으로 불린 허준 침과 뜸의 달인 허임 인조의 총애를 독차지한 번침의 명인 이형익 한낱 마의에서 어의로 발탁된 까막눈 백광현 고약 하나로 종기 치료의 명인이 된 피재길 5장 조선 의학의 초석이 된 의서 동양의학의 뿌리, 《황제내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의서, 《향약구급방》 조선 최초의 향약 사전, 《향약집성방》 조선 최대 의학 백과사전, 《의방유취》 약이 되는 음식을 다룬 식이요법서, 《식료찬요》 가장 대중적인 민간용 의서, 《구급간이방》 핵심만 간추린 요긴한 의서, 《의림촬요》 동양의학을 대표하는 명저, 《동의보감》 사상의학의 뿌리, 《동의수세보원》 그 밖의 주요 의서
출판사 서평
“천연두가 성안에 널리 퍼져 있는데, 전하께서 어찌 경솔하게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가십니까?” _《숙종실록》 조선을 뒤흔든 10가지 질병으로 보는 생로병사 풍속도 500년 조선 의료의 모든 것, 조선 메디컬 사전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전 세계가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전염병이 거의 매년 찾아와 팬데믹이 일상이었다. 이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조선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고, 가장 혹독했던 질병은 무엇이었을까? 고작 감기로 생사가 갈렸던 시대엔 질병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역병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메디컬 조선》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을 세우고 백성을 구제해온 조선인들의 질병에 대한 끈질긴 투쟁기다. 의학 교육의 산실 전의감과 대표 서민 병원 혜민서 등의 의료 시설부터, 세종의 소갈증과 송시열의 치질 등 조선 땅을 휩쓴 10대 질병과 그 치료법, 왕들이 앓았던 질병과 사인(死因), 그리고 의술로 이름을 날린 명의와 각종 의서까지.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500년 조선 의료의 모든 것을 흥미롭게 담아냈다. 저자 박영규는 역사 대중화 열풍을 일으킨 밀리언셀러 실록사가로서 정치, 사회, 문화 등 주제의 경계 없이 다채로운 조선사를 집필해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조선의 질병과 의료에 초점을 맞춰 우리 역사의 새로운 얼굴을 조명했다. 마음의 병인 심열증에 시달린 왕들, 의료사고로 사망한 효종과 찰밥이 목에 걸려 죽은 선조 등 구중궁궐의 사연부터 감기에 걸렸을 때 꼭 지켜야 할 금기 사항, 신비의 약재 흡독석 등 민간의 대증요법과 생활상까지 조선의 생로병사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렸다. “왕은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려 장수하지 못했다?” “문종은 원래부터 병약했다?” “조선 왕실에는 종기 인자가 있었다?” 등 세간의 오해도 바로잡는다. 부자병 소갈증, 거리 두기의 원조 천연두, 악병의 대명사 나병… 조선인들은 보이지 않는 위협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들의 끈질긴 질병 투쟁기를 만난다 오늘날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0세가 넘는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80세 이상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의 평균 수명은 기껏해야 30대 중반에 불과했고, 장수의 기준은 고작 환갑을 넘기는 것이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간단하게 치료하는 질병이 조선시대에는 공포의 병마로 인식되었다. 지금이야 간단한 외과 시술로 제거할 수 있는 종기가 당시에는 최고의 의료 혜택을 받았던 왕들을 사망으로 몰고 갔다. 얼마나 무서운 질병으로 여겼는지 종기 전문 기관인 치종청까지 두었다. 감기 또한 의외로 혹독해서 오래 지속되는 경우 과경(過經)이라고 부르며 몹시 두려워했다. 세종 시기 형조판서였던 김점(金漸)은 어전회의 석상에서 자식이 감기에 걸렸으니 어의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질병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찜질 치료소인 한증소와 행려병자 구제를 위한 시설 활인서 등 여러 의료 기관을 운영했다. 또 전의감과 혜민서를 위시해 체계적으로 의관과 의녀를 양성했다. 덕분에 허준, 대장금 등 시대를 풍미한 명의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민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의서 《구급간이방》과 동양의학을 대표하는 걸작 《동의보감》 같은 의서를 편찬해 전국에 반포하여 모든 백성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인들 역시 무방비하게 질병의 공격에 당하지만은 않았다. 이처럼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끈질기게 분투하는 모습은 팬데믹 시대를 지나고 있는 요즘의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500년 전 조선인들이 겪은 위기와 그 극복 과정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의 일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밀리언셀러 실록사가 박영규가 복원한 우리 역사의 새로운 얼굴 그동안 몰랐던 다채롭고 풍성한 질병 이야기가 펼쳐진다 ? 팬데믹 대처법, 조선판 거리 두기 정책 당시 사람들은 팬데믹 같은 거대한 역병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백신이 없었기 때문에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만이 전염병에 대처하는 유한 방법이었다. 돈 있는 양반들은 산속에 피신처를 구해 때때마다 그곳으로 달아났고, 거리 두기와 봉쇄의 단계를 넘어 역병 때문에 아예 마을을 버리고 산으로 피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1급 감염병으로 분류되는 천연두가 유행하면 제사뿐 아니라 결혼과 같은 잔치도 금했으며, 심지어 부부간에 동침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나라에서는 외출을 금지하는 봉쇄령과 접촉 금지령을 내렸다. 연산군 시기에는 원자가 천연두를 앓는 중에 국상이 생기자 곡읍(哭泣, 소리 내어 슬프게 우는 것)을 중지하고 궐문을 닫아걸었다. 천연두가 만연한 시기에 숙종이 교외에서 청나라 사신을 만나려고 하자 당시 대사헌이던 윤휴(尹?)가 임금의 거둥을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거리 두기는 중국 사신이 왔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 피해망상증으로 진료조차 거부한 인조가 사술에 빠진 이유는?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의심이 많아 쉽게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필체를 누군가 흉내 내어 모반의 도구로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식에게도 친필로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병을 앓는 사실 역시 철저히 숨겨서 의관이 진찰을 권유해도 항상 거절했고, 설사 의관을 부르더라도 철저히 입단속을 시켜 병명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다. 그런 인조가 유일하게 총애한 의관은 당대 번침(燔鍼)의 달인 이형익이었다. 불에 달군 침을 의미하는 번침은 극히 위험한 처방이었고, 내의원에서는 사술(邪術)이라 하여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조는 자신의 오랜 병마가 그의 침을 맞은 후 호전되었다며, 임종의 순간까지 오직 이형익만을 곁에 두고 번침 치료를 받았다. 그런 까닭에 인조가 도대체 무슨 병을 앓다가 생을 마감했는지 《조선왕조실록》에조차 전하지 않는다. ? 조선 최초의 백신은 누가, 어떻게 도입했을까?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천연두 예방접종법인 종두법이 처음으로 조선에 도입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정약용이다. 그는 자신의 의서 《마과회통》에 인두종법(人痘種法)을 소개했다. 이는 천연두를 앓는 사람에게서 두즙(痘汁), 즉 진물을 취하여 인체에 주입하는 방법이다. 소의 두즙을 접종하는 우두종법(牛痘種法)도 함께 기술했는데, 인두종법에 비해 훨씬 안전하지만 서양에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배척되어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종두법이 중단되었다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지석영에 의해 널리 퍼져, 천연두 극복의 시금석을 마련하게 되었다. 책 속에서 조선시대에 수의사는 주로 말을 치료했기 때문에 대개 마의(馬醫)라고 불렸다. 마의는 조선에서 매우 귀한 존재였다. 조선 초기의 기록에 따르면 마의의 수는 기껏해야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당시 조선에 필요한 말은 수만 마리였고, 그중에 상품(上品)은 명나라에 진상했기 때문에 마의 양성이 시급했다. 거기다 중국에 사신을 보낼 때면 반드시 마의가 있어야 했다. 사신과 그 일행이 모두 말을 타고 다녔기 때문인데 사신이 행차할 때면 대개 마의 두 명이 따라다녔다. _27쪽 염병으로 온 집안 식구가 모두 사망하면 관에서 그 시신들을 치워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만큼 염병 탓에 일가족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지어 부모가 염병으로 사망하면 자식들이 장례도 치르지 않고 달아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니, 당시 사람들이 염병을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알 만하다. (…) 염병은 전염성이 강했기 때문에 집단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금세 퍼졌고, 환경까지 열악하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환경이 열악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감옥이었다. 그런 까닭에 감옥에 염병이 퍼지는 경우가 잦았다. _107쪽 천연두를 옮기는 귀신을 ‘두창신’이라고 불렀는데, 이 때문에 각종 금기 사항이 생겼다. 두창이 발생하면 제사를 지내지 못하도록 했고, 결혼과 같은 잔치도 금했으며, 심지어 부부간에 성관계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서로 접촉하지 못하게 했는데, 이는 현대의 바이러스성 전염병을 예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제사든 잔치든 부부관계든 모두 접촉이일어나는 일이므로 접촉을 막기 위해 이런 금기 사항을 둔 것으로 보인다. 요즘 말로 하면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했던 셈이다. _121쪽 인종은 즉위 당시만 해도 매우 건강했다. 잔병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즉위 후에 갑자기 죽었을까? 야사에는 건강하던 인종이 문정왕후가 내놓은 독이 든 떡을 먹고 시름시름 앓더니 갑자기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것은 사실일까? 사실 문정왕후가 준 떡을 먹고 죽었다는 것은 낭설에 불과하다. 건강하던 인종이 병을 얻은 것은 누구 탓도 아닌 바로 인종 자신 때문이었다. (…) 이때 인종은 국상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빈전을 지키며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았고, 몸이 몹시 쇠약해져 있었다. 이를 염려하여 모든 신하들이 건강을 돌볼 것을 요청했으나 인종은 듣지 않았다. 도리에 얽매여 건강을 돌보지 않은 것이다. _180~181쪽 이성계가 병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며 사경을 헤매는 사이 이방원은 정도전, 남은 등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해버렸다. 이른바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것이다. 아마도 이방원은 이성계가 병상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리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성계는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다. 이때 태조를 회생시킨 인물이 바로 양홍달이었다. _231쪽 이형익에 대한 인조의 총애가 끊이지 않자 조정 신하들 사이에서는 이형익이 요술로 임금을 현혹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몇몇 간관들이 이형익을 멀리할 것을 직언했지만 인조는 화를 내며 그들을 지방관으로 내쫓아버렸다. 이형익의 의술에 대한 인조의 믿음은 아주 대단해서 인조는 그에게 현령 벼슬을 내렸을 뿐 아니라 특명으로 어의로 서용했다. 이형익은 당시 인조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던 후궁 소용 조씨와도 친밀했다. 심지어 조씨의 친정어머니와 왕래가 잦아 두 사람이 내연관계라는 추잡한 소문까지 돌았다. 그래도 인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_285~286쪽 중국에서는 일본보다 먼저 《동의보감》을 가져갔지만 《동의보감》을 인쇄한 것은 1766년이었다. 놀라운 것은 국가에서 먼저 간행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청나라 의사들이 《동의보감》을 보급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동의보감》의 명성을 익히 들은 청나라 의사들이 1731년에 황제에게 단체로 청원서를 넣은 것이다. 그로부터 35년 뒤인 1766년에 국가에서 목판본으로 인쇄하여 중국 각지에 보급했다. 당시 청나라 의사들이 이 책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는 책 서문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줄기 햇빛이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기만 해도 어둠이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동의보감》은 피부 깊숙이 감춰진 몸속을 환히 꿰뚫어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책이다.” _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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