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그리고 유신 - 야수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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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그리고 유신 - 야수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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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57062768
쪽수 : 352쪽
홍대선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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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5.16은 한국판 ‘쇼와 유신’이었다! 메이지 유신에서 10월 유신까지, 《바람의 검심》에서 김재규까지… 괴물이 된 유신의 생성과 폭주, 부활과 소멸의 150년을 쫓는 본격 추적물! ‘유신’은 메이지 유신(일본)과 10월 유신(한국)의 정치적 사건만이 아니다. 《유신 그리고 유신》은 외세와 일본의 두 번의 만남(여몽연합군의 침공과 페리 제독의 흑선)에서 싹트기 시작한, 자기신성화와 자기파괴의 정념인 ‘유신’을 주인공 삼아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추적한다. 만주침략, 중일전쟁, 동남아시아 침략과 태평양전쟁… 일본의 폭주는 결국 가미카제와 ‘1억 옥쇄’ 그리고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종결되었다. 그것은 한편 ‘유신’의 종말이었지만, ‘유신’은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부활하였다. 박정희와 김재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유신의 세계관 안에서 성장했다. 한국은 ‘10월 유신’ 이전에 이미 ‘유신’과 만났었다. 박정희의 ‘5.16’은 당시 제3세계에 흔했던 여느 쿠데타와 달랐다. 메이지유신 전후의 사무라이들, 군부가 앞장선 혁명을 주창한 기타 잇키와 황도파 청년장교 등을 잇는 한국의 유신, 더 적나라하게는 일본에서 실패한 ‘쇼와 유신’의 한국판이었다. 일본의 유신이 폭주해 일본국민을 인질로 삼아 위기에 이르렀듯, 박정희의 유신도 폭주해 국민 살해의 임계점에 도달했었다. 부마항쟁 당시 몇 백만을 죽여도 괜찮다는 박정희의 뜻을 가까스로 막아낸 것은 마지막 ‘유신 지사’ 김재규였다.
저자 소개
저자 : 홍대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문학과 칼럼, 시나리오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해왔다. 국내 최초 인터넷 신문인 《딴지일보》에서 일하며 쓴 <테무진 to the 칸>은 역대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인문교양 팟캐스트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남 얘기〉 등의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1미터 개인의 간격》,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테무진 to the 칸》, 《축구는 문화다》, 《태양의 해적》 등이 있다. 한국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현재의 한국인이 되었는지를 탐구하며 답을 찾고 있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중간보고서이며, 한국 근현대사의 한 조각을 맞추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목 차
1장 씨앗: 바람이여, 흉포해져라 2장 잉태: 초대받지 않은 손님 3장 탄생: 신성한 타락 4장 팽창: 전쟁중독 5장 폭주: 정결한 세계를 지키는 야만 6장 광기: 순수의 시대 7장 임종: 덴노 헤이카 반자이 8장 부활: 윤리적 세계와 미학적 세계 9장 절정: 최고의 사랑, 완전한 사육 10장 완성: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다 후기: 유신의 제단
출판사 서평
이상하고 기묘한 정념, 죽음을 탐미하는 낭만과 폭력의 역사! ‘유신’의 눈으로 한일 근현대사의 주요 대목들을 조망한다. 일본 근현대사의 흥성과 파멸은 모두 ‘유신’ 때문이었다. 어떻게 한 나라의 역사가 이렇게 폭주할 수 있었는가, 에 대한 명쾌한 대답. ‘유신’은 메이지 유신(일본)과 10월 유신(한국)의 정치적 사건만이 아니다. 한국은 ‘10월 유신’ 이전에 이미 ‘5.16’으로 유신과 조우하였다. 한일 역사의 문제적 인물들을 움직인 동력, 그것이 ‘유신’이다. #1 자네들은 ‘유신’을 계속하라! 1936년 2월 29일, 나흘 전 시작한 청년장교들의 쿠데타(2.26사건)가 이제 막 종막으로 치닫고 있었다. 일본국 육군 제1사단 보병제3연대 제6중대장 안도 데루조 대위는 황도파 청년장교의 한 명으로서 군부 내 라이벌인 통제파의 상급자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을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다. 안도는 쿠데타를 말렸으나 결국 쿠데타가 일어나자 누구보다 열심히 현장을 지휘하고 사수하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토벌군의 투항 권유 방송이 계속되자 안도는 부하들에게 투항을 명령한 뒤 자신의 목을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즉사하는 데 실패하고 후에 사형 당했다). 안도 데루조는 자결을 말리는 부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전에 이 중대장을 혼낸 적이 있지. 중대장님, 언제 궐기하는 거냐고 말이야. 이대로 두면 농촌은 구할 수 없다면서. (*결국) 농민은 구하지 못하고 말았네.” 다른 부하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은 ‘유신’을 계속하라.” ‘쇼와 유신’을 내걸고 궐기한 청년장교들과 그들의 사상적 지도자 기타 잇키는 이후 재판에서 사형과 투옥 등을 받으며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 당했다. 안도는 살아남은 부하들이 ‘유신’을 계속하기 바랐지만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안도 데루조의 유언과도 같은 말에서 ‘유신’은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책의 한 항목,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어떤 관념이고 정신이고 정념임이 드러난다. 그것은 자기가 속한 세계를 바꾼다는 믿음 아래 자기와 타인을 기꺼이 파괴해버리는 마음이다. #2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다 유신은 선언이 아니다. ‘이제 일본이 재통일되었으니, 유신이란 것을 선포한다.’는 의식 같은 건 없었다. 지금은 메이지 유신 원년으로 불리지만, 1868년 당시는 한쪽에서는 신정부가 수립되고 다른 쪽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난세의 시기였다. 유신(維新)이라는 말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서경(書經)》에 기록된 표현이다. 고대 중국의 주나라가 체제를 완전히 새롭게 정비해 멸망의 위기를 극복하고 되살아난 사건을 유신이라고 한다. 막부를 뒤집어엎은 신정부세력은 자신들의 성공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서경》에서 ‘유신’이라는 표현을 찾아 사용했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여러 유신 지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한 결과 주어진 선물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 청년장교들의 2.26 쿠데타가 ‘쇼와 유신’을 내걸었던 것처럼,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유신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목숨을 걸고 행동에 나서는 이들의 대의명분이 되었다. 하지만 성공신화는 어느새 고스란히 실패담으로 이어졌다. 대의명분을 내걸고 일본제국의 번영과 성공을 부르짖으며 사실은 자기 앞가림에만 열중하거나, 자기 생각에 현실을 뜯어 맞추며 부하와 동료, 국민들을 태연히 위험에 빠트리는 자들이 일본을 이끌었다. 이상하고 기묘한 우연이 모여 일본의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언제라도 허물어질 수 있는 위험한 질주였다. 일본 근현대사에 흔적을 남긴 문제적 인물들은 과감하게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역사 진행을 앞당기거나 궤도를 이탈하곤 했다. 만주침략, 중일전쟁, 동남아시아 침략과 태평양전쟁… 거침없던 일본의 질주는 결국 가미카제와 ‘1억 옥쇄’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종결되었다. ‘유신’의 종말은 그만큼 파괴적이었다. 대한민국 독립에 공헌한(?) 비밀 독립지사로까지 불리는 무타구치 렌야는 버마와 인도의 접경지역에서 벌어진 임팔전투에서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군은 먹을 것이 없어도 싸워야 한다. 무기가 없다, 탄약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 등은 퇴각의 이유가 될 수 없다. 탄약이 없다면 칼로, 칼이 없다면 맨손으로, 맨손도 안 되면 다리로 걷어차라, 다리도 당하면 이빨로 싸워라. 일본 남아에게 야마토 정신이 있다는 것을 잊었는가? 일본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다.” 자기파괴적인 유신-관으로 무장한 일본은 이처럼 파괴적인 생각을 앞세워 미국, 중국, 소련 등과 전쟁을 시작했으나 세 방향 모두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유신이 마침내 당도한 초라한 결말이었다. #3 성공한 ‘쇼와 유신’ 5.16과 유신 지사 박정희와 김재규 유신은 그냥 영영 사라지고 말았을까? 일본에서 파멸을 맞은 유신은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조용히 부활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마침내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역사에서 해방되었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를 경험한 이들과 달리, 한반도의 어느 세대는 ‘일제’를 조국으로 한 채 태어나 자랐다. 공과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어도, 해방 이후 지금 우리와 잇닿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역시 박정희를 꼽을 수밖에 없다. 그 박정희와 박정희의 폭주를 막은 김재규는 각각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유신’의 세계관 안에서 성장하였다. 한국은 1972년의 ‘10월 유신’으로 명칭을 달기 이전에 이미 유신의 시대에 돌입해 있었다. 박정희와 그를 따르는 청년장교들의 ‘5.16’은 당시 제3세계에 흔했던 여느 군인들의 쿠데타와 달랐다. 메이지유신 전후의 사무라이들,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기의 황도파 청년장교들, 세계전쟁을 꿈꾼 이시와라 간지와 군부가 앞장선 혁명을 주창한 기타 잇키 등을 잇는 한국의 유신,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해 일본에서는 실패한 ‘쇼와 유신’의 한국판이었다. 가난한 농민의 자제들인 사병들로부터 일본의 진짜 현실을 전해 듣고 새로운 일본의 장래를 추궁 당했던 안도 데루조와 황도파 청년장교들처럼, 박정희는 스스로 발견하고 체험한 가난한 대한민국의 농촌을 구원하고, 산업화된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싶어 했다. 5.16 이후 전투적으로 진행된 산업 발전은 가까이는 만주국의 경험, 더 거슬러서는 전쟁과 국가총동원체제로 성장한 일본 유신의 한국판이었다. 하지만 자기파괴의 정념은 결국 한계에 도달한다. 일본의 유신이 폭주해 일본 국민 전체를 인질로 삼아 위기에 이르렀듯(이들은 1억 옥쇄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려 했고, 그 1억 명 속에는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정희의 유신 역시 폭주해 국민 살해의 임계점에 도달했었다. 부마항쟁 당시 몇 백 만 명을 죽여서라도 나라와 정권을 지키겠다는 박정희의 뜻을 가까스로 막아낸 것은, 한때 그가 사랑하고 믿었던 김재규였다. 러일 전쟁의 영웅 ‘노기 대장’을 가슴에 품고 성장했던 김재규는 ‘유신’의 세계관 안에서 성장했고, 그가 주군 대신 택한 ‘국민’을 위해 마지막 바친 충정은 몇 발의 탄환이었다. 김재규는 마지막 유신 지사였고, 박정희의 죽음으로 유신은 마침내 150여년 역사의 긴 질주를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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