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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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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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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65642121
쪽수 :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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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한국영화사총서 3권. 한국 영화와 미디어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적 전환, 독해의 대안적 가능성 모색, 동시대 한국영화의 정치적 경계에 대한 비평 담론 형성, 한국영화 또는 시네-미디어에 대한 트랜스내셔널한 접근을 국제 학술 심포지엄, 워크숍과 더불어 포럼과 아카데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꾸준히 생산해오고 있는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의 성과물이다. 1920~30년대 제국 도쿄와 식민지 경성에서 딴쓰홀보다 더 근대적 공간이자 문화/문명의 공간이었던 영화관에 모인 다양한 관객들의 ‘노는 방식’과 ‘주시하는 방식’이라는 딴판의 관람 문화를 다룬다. 영화 텍스트/배우/감독 등 제작 주체(생산자)가 아닌, 그간 시도되지 않은, 영화 텍스트가 소통되는 공간(매개자)과 그 관객(수용자)을 중심에 둔 제국(민)과 식민지(민)의 비교문화사다.
저자 소개
저자 _ 정충실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도쿄대 학제정보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한국과 일본의 영화사, 문화사다.
목 차
지은이의 말 제1장 다르게 역사 쓰기, 다양한 관객 그리기 1. 어둠 속에 집합해 스크린을 보는 눈 2. 분석의 세 시각 제2장 관객성 연구와 문화사 연구 1. 역사적 관객에 대하여 2. 새로운 역사 쓰기의 경향들 제3장 도쿄의 관객성 1. 영화관의 지역적 분포 2. 1920년대의 영화관과 관객의 관람 양상: 아사쿠사의 영화관 3. 1920년대 후반 이후의 영화관과 관객의 관람 양상 4. 오모리·가마타 지역의 영화관과 관객의 관람 양상, 그 효과 5. 도쿄의 불균질한 관객성 제4장 경성의 관객성 1. 영화관의 지역적 분포 2. 1920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영화관 3. 1920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상영 환경과 관람 양상 4. 1930년대 후반의 영화관 5. 1930년대 후반의 상영 환경과 관람 양상 6. 경성의 불균질한 관객성 제5장 관객성으로 본 1920?30년대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 1. 불균질적으로 존재한 관람 양상과 그 효과 2. 영화관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관계 3. 다양한 성격으로 존재한 식민지민 4. 관객성을 둘러싼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 5. 과제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영화사총서 제3권. 한국 영화와 미디어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적 전환, 독해의 대안적 가능성 모색, 동시대 한국영화의 정치적 경계에 대한 비평 담론 형성, 한국영화 또는 시네-미디어에 대한 트랜스내셔널한 접근을 국제 학술 심포지엄, 워크숍과 더불어 포럼과 아카데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꾸준히 생산해오고 있는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의 성과물이다. 제국과 식민지 수도 도쿄와 경성 모뽀모껄/도시남녀의 영화 체험, 영화관 체험은 어떠했을까? 이 책은 1920?30년대 제국 도쿄와 식민지 경성에서 딴쓰홀보다 더 근대적 공간이자 문화/문명의 공간이었던 영화관에 모인 다양한 관객들의 ‘노는 방식’과 ‘주시하는 방식’이라는 딴판의 관람 문화를 다룬다. 영화 텍스트/배우/감독 등 제작 주체(생산자)가 아닌, 그간 시도되지 않은, 영화 텍스트가 소통되는 공간(매개자)과 그 관객(수용자)을 중심에 둔 제국(민)과 식민지(민)의 비교문화사다. ‘노는 방식’이거나 ‘주시하는 방식’이거나 … 제국 도쿄와 식민지 경성 도시남녀의 불균질한 관객성 근대의 스캔들, 극장의 스캔들 … 딴스홀보다 더 문제적 핫플레이스였던 영화관에서 벌어진 1. 모던 타임스 혹은 시네마 데이즈의 경성과 도쿄 : 관객을 중심에 둔 제국(민)과 식민지(민)의 비교문화사 “모던 모던의 세상이다. 미국이 그러하고 歐羅巴 각국이 그러하고 상해가 그러하고 가직한 일본이 그러하고 그 운덤에 조선도 그러하다. 모던! 모든 것이 모던이다. 모던껄 모던뽀-이 모던大臣 모던王子 모던哲學 모던科學 모던宗敎 모던藝術 모던自殺 모던劇場 모던스타일 모던巡査 모던도적놈 모던雜誌 모던戀愛 모던建築 모던商店 모던妓生(조선에 限함) … 무제한이다. (중략) 조선에도 모던이씀이 잇는가? 잇다.” ―壬寅生, 「모던이씀[모던 있음]」(『별건곤』 제25호, 1930년 1월) “사실상 영화는 소설을 정복하엿다. (중략) 현대의 문명은 아모리 하여도 라듸오·스폿트·키네마이다.” ―승일, 「라듸오·스폿트·키네마」(『별건곤』 제2호, 1926년 12월) 1930년대의 대표적 논객 임인생(壬寅生)이 “과연 독개비도 갓고 수수꺽기도 갓다”라고 한 것처럼 “모든 것이 모던”인 시대에, “사실상 영화는 소설을 정복”한 시대에, 제국과 식민지 수도 도쿄와 경성 모뽀모껄/도시남녀의 모던 공간 체험, “모던劇場” 체험은 어떠했을까? 이 책은 1920?30년대 제국 도쿄와 식민지 경성에서 딴쓰홀보다 더 근대적 공간이자 문화/문명의 공간이었던 영화관에 모인 다양한 관객들의 ‘노는 방식’과 ‘주시하는 방식’이라는 딴판의 관람 문화를 다룬다. 영화 텍스트/배우/감독 등 제작 주체(생산자)가 아닌, 그간 시도되지 않은, 영화가 상영된 공간(매개자)과 그 관객(수용자)을 중심에 둔 제국(민)과 식민지(민)의 비교문화사다. 책은 지금까지 잘 언급되지 않은 식민 시기/초기 영화사 시기의 주제인 영화관, 영화관의 관람 환경, 관객의 영화 수용과 관람 문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아울러 이를 일국사를 넘어선 방법 곧 식민지 조선의 영화, 영화관, 영화문화가 제국 일본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도쿄와 경성이라는 지역적/도시적 특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 “한 집 한 장소 한 전기등 밋” “활동사진 홀-에” 모인 “낫모를 사람”들 : 콘택트 존(contact zone)으로서의 영화관, 딴판의 사람들이 관객으로 ‘접속/접촉’하다 “행인이 드믄 산길에서 낫 모를 사람을 잠시 맛나는 것도 한 인연이라 하는 생각으로 보면 30수만이 사는 京城에서 단 4, 5시간일망정 한 집 한 장소 한 전기등 밋헤서 가티 웃고 가티 눈물을 흘니게 되는 것은 특별한 인연이라 할 것이니 이것만으로도 겨를 잇는 때 활동사진 홀-에 잠시 드러가 안젓다 나오는 갑이 상당한 것이다. 더구나 거긔에는 자기의 물건 사는 상점 사람도 와 잇는 것을 맛날 수 잇고 인사는 업지만 길거리에서 자조 맛나는 사람과 나란히 안젓게 될 수도 잇다. 요정에서 가티 놀던 기생도 길거리에서 보던 여학생도반갑게 발견할 수가 잇고 친한 친구를 맛나서 정다운 한담을 할 수도 잇다.” ―波影生, 「스크린의 慰安, 서울맛·서울情調」(『별건곤』 제23호, 1929년 9월) 1920?30년대, “친한 친구”뿐 아니라 “자기의 물건 사는 상점 사람”, “인사는 업지만 길거리에서 자조 맛나는 사람”, “요정에서 가티 놀던 기생”, “길거리에서 보던 여학생”이 “한 집 한 장소 한 전기등 밋헤서” 만남을 이룬 ‘콘택트 존’으로서의 영화관은 어떠했을까? 다양한 문화와 세력이 만나 충돌하고 경쟁하는 사회적 공간인 ‘콘택트 존’으로서 영화관에는, 영화관 밖에서는 힘과 관계가 작용하지 않는 딴판의 사람들이 영화관 내부에서는 ‘관객’으로 만남으로써 그 힘과 관계 사이에 교섭이 발생한다. 영화관에서 관객이 영화에 집중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관객이라는 요소가 교섭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교섭은 활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지만 초기 영화사 시기에는 관객이 영화에만 집중하지 않고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그 교섭은 활발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3. 1920년대의 ‘산만하고 자유로운 노는 방식’ ? 영화는 공연의 일부, 영화보다는 여흥 : 영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과 (무성)영화 텍스트 외부의 볼거리/즐길거리를 찾다 그리고 10분 휴식 간에 오케스트라도 잇스려니와 무슨 다른 여흥이 잇스면 좃켓다. 그것은 경영난인 現今의 극장에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무도나 독창이나 독주나 잇섯스면 십분 휴식 하는 의의가 잇지 안을가 한다. 그리고 장면이 벌서 지낫는데 지난 장면을 가지고 떠들고 섯스니, 그것도 자기 취미지만 觀者는 그러한 변사를 원치 안을 것이다. 특히 이 점에 생각 좀 하여 주엇스면 고맙겟다. 극장에 온 손님의게 전화가 올 때,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소래를 버럭 질러서 그 사람의 일홈을 부를 때 당자는 (더구나 여자) 퍽 불쾌할 것이다. ―「劇場漫談」(『별건곤』 제5호, 1927년 3월) 관객은 영화관에서 어떻게 ‘놀았을까/놀게 되었을까’? 노는 방식으로 영화 관람 양상이 결정된 것은 열악하고 소란스러운 영화 상영/관람 환경과 갖가지를 즐기면서 영화를 관람하려는 관객의 성향에서 기인했다. 1920년대 경성의 영화관에서는 무성영화가 상영되어 영화를 설명하는 변사와, 무성영화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맞춰 ‘음향’을 발하는 가수와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영화 상영 중에 장내를 돌아다니며 음식과 담배를 파는 과자장수가 있었다. 1920년대 도쿄의 영화관에는 변사·과자장수 외에도, 영화 상영 이후 입장한 관객을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춰대고 소음을 내며 자리에 안내하는 여자 안내원도 있었다. 대본과는 다르게 옆길로 새거나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변사, 영화와 불협화음을 내는 가수와 오케스트라, 호객 행위 하는 과자장수, 거기에 관객에게 전화 받으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영화관 사무실 직원 등은 관객의 영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1920년대 경성과 도쿄의 관객들은 이런 영화관에서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고 춤 추고, 음식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다른 관객과 신체적으로 접촉하면서 ‘산만하고, 자유롭게, 노는’ 방식으로 영화를 즐겼다. 곧 이때 영화관은 영화 감상 공간보다는 변사의 즉흥적 구술 공연이 있고, 가수·오케스트라의 음악/연주가 있고, 먹을거리를 파는 과장장수가 있는 공연장/유흥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했고, 관객들은 영화를 공연의 일부로 여겨 ‘영화보다는 여흥’을 즐긴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도 잇스려니와 무슨 다른 여흥이 잇스면 좃켓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 것이다. “관객은 영화가 만들어내는 환영에 완전히 빠져들어 조용히 영화를 관람하기보다는 변사의 재담이나 연기, 가수의 노래, 악사의 연주 등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영화보다 이들의 공연을 더 주목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경성 영화관의 영화 상영 양식은 관객을 영화가 만들어내는 환영에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연을 행해 전통 공연에서처럼 관객의 흥을 돋우고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상영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여지를 마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4. 1930년대의 ‘영화에 몰입해 스크린에만 주시하는’ 방식 ? 영화는 영화다, 고급 영화 팬의 등장 : 다른 요소의 방해 없이 조용히 타인과 분리되어 (유성)영화의 텍스트를 감상하다 대개 수요일이나 수요일 석간신문에는 각 영화간의 사진 교체 광고가 다투어 난다. 제군이 고급영화 팬이 되려면 먼저 그러한 광고 가운데서 한번 감상할 가치가 있음직한 영화를 선택한 다음에 그 영화의 감독이며 주연배우 등의 이름을 외워두고 사진 내용에 들어가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다소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띄어쓰기와, 고어/한자어를 현대어/한글로만 수정) ―講師 스크린·?-쥐, 「高級映畵 팬 되는 秘訣十則」(『별건곤』 제29호, 1930년 6월) ‘고급영화 팬 되는 비결 10칙’이 있을 만큼 영화에만 몰입하는 “고급영화 팬”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주시하는 방식으로 영화 관람 양상이 결정된 데는 유성영화가 도입되고 영화 상영·관람 환경이 개선되는 것과 더불어 유성영화를 감상‘해낼’ 수 있는 관객이 영화관에 모여든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때의 관객은 영화 감상 이외의 것에서 얻는 변사의 재담, 변사와의 대화, 과자장수로부터 사먹는 간식, 여자 안내원과의 접촉 등 놀면서 얻는 즐거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1930년대 후반에는 남촌에 대형 고급 영화관이 탄생했는데, 이곳에서는 공연의 상연, 과자장수 등의 출입이 사라졌다. 1인석 설치, 냉난방 장치 도입 등 영화관 시설도 개선되었다. 이 영화관에서는 유성영화만이 상영되고 영화만을 주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서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려는 관객이 모여들게 되고 영화 감상 이외의 행동이 금기시되었다.” “니시긴자 영화관에서 주시하는 방식의 영화 관람 양상이 성립한 배경에는 세련된 서비스의 실시, 유성영화의 도입, 그에 따른 변사 같은 다양한 존재의 퇴장으로 영화만을 주시해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를 원하는 관객이 그 지역 영화관에 모여든 것 등이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 계속된 ‘노는 방식’의 관객성 ― 유성영화의 도입보다 더 크게 작용한 지역적 차이/특성 그렇다면 ‘노는’ 방식의 관객은 유성영화의 도입과 함께 퇴장했던 것일까? 영화관과 영화관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민족 문제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관객의 구성과 그들의 영화 관람 양상이 지역·계급에 따라 차이가 있고 불균질적인 것에는 별달리 언급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관객성을 영화관이 위치한 지역적 차이 및 특성과의 관계 속에서도 파악하고 있다. 저자는 영화관 시설이나 유성영화의 도입뿐 아니라 영화관이 위치한 지역적 특성과 그 지역의 관객 구성 같은 요소 또한 관람 양상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에도 주목해, 경성과 도쿄라는 거대 도시의 내부에서도 세부 특성에 따라 지역마다 영화 관람이나 영화관의 성격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경성의 남촌에 대형 고급 영화관이 등장했다. 이 영화관에서는 유성영화가 상영되었으며 공연장으로서의 성격은 없어지고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출입도 사라졌다. 관객은 영화에 집중했고, 영화에 주시하는 것 이외의 행동이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영화관은 유성영화의 도입에도 여전히 공연장으로 성격이 강해서 관객은 요란하게 갖가지 것을 즐기는 등 여전히 노는 방식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도쿄에서는 1930년대 초반 대형 고급 영화관이 니시긴자 지역에 등장했다. 니시긴자 영화관에서는 유성영화만 상영되었으며 변사·악사·상인은 없었고, 관객은 조용히 주시하면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잡다하고 서민적인 성격의 유흥가인 아사쿠사에서는 유성영화의 도입이나 대대적 영화관 시설의 개선에도 여전히 소란스러운 공연의 일부로서 영화가 상영되었고, 영화 상영 중에도 사람들의 이동이 많았으며, 관객은 요란하게 놀면서 영화를 관람했다.” 5. “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관객성 연구로본 제국과 식민지의 문화사” : 억압과 저항의 시기, 민족 개념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교섭하고 갈등하는공간으로서의 영화관 왜 하필이면 “1920?30년대”에, “경성과 도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일까? 책이 “1920?30년대”에 주목한 이유는 “우선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서 이 시기가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형 영화관의 등장, 영화 기술의 도입 등으로 새로운 관람 방식과 영화문화가 불균질적으로 성립함으로써 다양한 관객과 그들의 관람 양상,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경성과 도쿄에서”는 식민지와 제국의 수도라는 상징적 측면 뿐 아니라 영화 문화를 경성과 도쿄라는 도시의 특수한 조건, 특수한 도시구조 속에서 설명하려 하기 위함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실상 영화는 소설을 정복”한 ‘시네마 데이즈’의 시기에 영화관은 딴스홀보다 더 핫한 일상의 공간이자 문화/문명의 공간이었던 데서 비롯한다. 저자는 식민지 권력과 식민지민의 관계를 억압과 저항만으로 설명하기는 무리가 있다며, 영화관/관객/관객성 연구를 통해, 식민지 조선인의 일상과 문화를 다양한 세력이 “교섭하고 갈등하는 공간”으로 분석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영화관에서의 일상과 문화는 결코 화려한 소비 공간과 안정적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교섭·갈등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1920년대 경성의 영화관에서 조선인은 민족적으로 집합하고 때로는 식민지 권력 및 그 지배담론에 저항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은 영화 상영과 동시에 행해지는 부대 공연과 영화를 즐기기 위해 영화관에 출입했다. 그때 그들은 어둠 속에서 사회질서로부터 벗어나 유흥을 즐기고 자유를 분출하는 이들로 격렬한 저항의 주체로서의 민족과는 거리가 있었다.” “1930년대의 조선인 고급 영화 팬들은, 경성에서 일본인 생활권과 조선인 생활권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이중 도시론과 달리, 일본인 거주지의 대형 고급 영화관에 쇄도했다. 이를 통해 관객 구성 면에서 민족적 경계가 붕괴하게 된다. 이때 조선인 고급 영화 팬들은 일본인 관객과 뒤섞여 영화를 보면서 민족적 차별을 받기도 했지만 이에 식민지민으로서 식민 권력이나 일본인에 맞서 격렬히 저항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으로부터의 차별을 감내하면서도 민족 논리와는 관계없는 취향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오히려 조선인 고급 영화 팬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고급적인 것으로 설정하기 위해 자신과는 다른 관람 양상의 조선인 관객에게 배타적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저항 주체로서의 동질적 민족의 개념으로 식민지 사회를 분석하는 것은 식민지 조선인의 내부 위계 및 차별의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게 함을 알 수 있다.” 저자는 1920?30년대 대중문화로서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진 영화의 관객성 곧 불균질하게 존재한 관람 양상과 그 효과를 통해 1920?30년대를 파시즘기 혹은 억압적 시기라고 단순히 정의하는 것은 1920?30년대 영화관에서의 자유, 영화에 매료됨, 관객 간 교류 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일상과 문화를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고 말한다. 6. ‘노는 방식’이거나 ‘주시하는 방식’ ― 경성의 불균질한 관객성, 도쿄의 불균질한 관객성 : 불균질한 관객, 불균질한 관객성, 불균질한 관람 양상에 따른 그 불균질한 사회적 효과 그렇다면 영화 관람 양상과 그 효과가 불균질한 까닭은 무엇일까? 1920?30년대 경성과 도쿄의 영화 관람 양상은 동질적이지 않고 크게 노는 방식과 주시하는 방식으로 구분되었다. 노는 방식의 관람 양상에 해당하는 영화관은 대형 고급 영화관을 제외한 경성의 영화관, 아사쿠사 영화관, 가마타·오모리 지역의 영화관이었다. 주시하는 방식의 관람 양상에 해당하는 영화관은 경성 남촌의 대형 고급 영화관, 도쿄 니시긴자의 영화관이었다. 영화 관람 양상과 그 효과가 불균질적이었던 까닭은 그것이 결정되는 데서 영화 텍스트 및 상영 환경 등 영화관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화관이 위치한 지역의 성격, 관객의 구성, 자본의 도입 등 영화관 외부의 문제 또한 여러 방식으로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20?30년대 경성과 도쿄의 불균질한 관객, 불균질한 관객성, 불균질한 관람 양상에 따른 그 불균한 사회적 관람 효과는 어떠할까? “경성의 영화관에서 노는 방식의 관람 양상은 젠더·세대의 경계를 넘은 자유 분출의 효과를 낳았으며, 특별한 영화가 상영되어 관객 사이 민족적 연대가 강화될 때에는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효과로 연결되기도 했다. 아사쿠사 영화관에서 노는 방식의 관람 양상은 젠더·세대·계급의 경계를 넘은 자유의 분출로 연결되었으며, 가마타·오모리 지역 영화관의 노는 방식의 관람 양상은 자유 분출을 넘어 주민 간 교류 강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형성·강화라는 효과를 낳았다. 가마타·오모리 영화관이, 아사쿠사 영화관과는 달리, 정체성 강화의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관객 간 긴밀한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성 남촌의 대형 고급 영화관과 도쿄 니시긴자의 영화관에서 주시하는 방식의 관람 양상은 노는 방식의 관람 양상을 타자화해 주시하는 방식의 관람 양상을 고급 취향으로 설정하게 했다. 경성 남촌의 대형 고급 영화관의 관객은 자신들의 주시하는 방식의 관람 양상을 고급화하는 과정에서 노는 방식의 관람 양상에 대해 도쿄의 경우보다 더 배타적이었는데, 이는 경성에는 도쿄와 달리 영화 이외 개인의 취향을 형성하는 수단이 많지 않았던 것에 기인한다.” 7. 식민 시기 불균질한 관객이 만들어낸 불균질한 문화사, 불균질한 영화사 : 관객의 불균질한 취향을 인정하기 … 관객을 추상화하지 않고 역사화하는 작업 노는 방식의 관람 양상에서 주시하는 방식의 관람 양상으로의 전환이 발전이나 진보일까? 글은 역사를 결정하는 단선적 진보 모델의 보편성이 아닌 다양성·불균질성에 주목하며 차이와 특수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저자는 “불균질하게 존재한 영화 관람 양상과 그 효과를 통해 하나의 관람 방식이나 하나의 경로만으로 1920?30년대의 영화사를 규정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동안의 많은 영화사 연구는 유성영화 도입 후, 영화 상영 시의 부대 공연은 사라지고, 관객의 영화 이해도가 높아졌으며, 관객의 영화 관람 양상은 조용하게 스크린을 주시하는 방식으로 균질화되었다고 설명해왔”는데, 이는 “유성영화 도입 이후 1930년대 도쿄와 경성의 영화 관객 상당수가 여전히 노는 방식으로 소란스럽게 영화를 관람하고 그 관람 양상의 효과가 자유의 분출과 정체성 강화 등으로 다양했다는 점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산만하게 노는 방식의 관람 양상이 자유 분출, 정체성 강화, 저항 등의 의미로 연결된 것은, 노는 방식의 관람 양상을 주시하는 방식의 관람 양상보다 열등한 것으로 치부할 수 없으며 노는 방식의 관람양상에서 주시하는 방식의 관람 양상으로의 전환을 발전이나 진보로 간주할 수 없음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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