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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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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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89231200
쪽수 : 251쪽
편집부  |  그림씨  |  2019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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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신문 광고로 본 한국영화 100년, 왜 ‘신문 광고’인가?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상영된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義理的 구토仇討]는 우리 영화사의 시작이 된 탄생작이다. 어떤 작품을 최초의 한국영화로 볼 것인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의리적 구토]로 여긴다. 이 영화의 개봉일을 우리나라 ‘영화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어느새 100년이 지나 2019년 올해 100주년을 맞은 우리 영화는 국제영화제에서도 큰 인정을 받으며 세계 속에 자리를 굳게 하고 있다. 얼마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국제영화제에서 우리나라의 한 영화가 그 영화제의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 이는 한국영화사에 더없는 선물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임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을 받은 뛰어난 영화이기도 했지만, 한국영화사에서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영화가 되었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우리는 한국 독자들에게 신문 광고에 실린 한국영화의 모습을 소개하려 한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신문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만든 매체이다. 과거의 어떤 시기에 있었던 일은 그 시기의 신문이 말해 준다. 이는 신문에 실린 영화 광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개봉하는 날짜, 개봉하는 곳, 관람 요금, 제작진과 출연진, 그 밖의 상세한 정보들이 실려 있다. 우리가 신문에 실린 영화 광고를 모아 엮으며 알게 된 사실은 도서나 인터넷으로 전해오던 우리 영화에 관한 정보들에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개봉날짜이다. 발견한 오류들은 [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에 정정하여 실었다. 또 흥미로운 것은 신문 광고에도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제작진의 이름이 잘못 표기된 것과 같은 몇 개의 오타들이었다. 광고는 기본적으로 ‘홍보’를 위해 하는 행위이다. 어떻게 광고하느냐에 따라 홍보 효과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똑같은 영화여도 만들 수 있는 광고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광고를 보면 그때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반응하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또, 이 책의 [의리적 구토] 광고부터 [박하사탕] 광고까지 쭉 보다보면 광고의 모습, 즉 광고의 구성이나 형태 등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보인다. 초기 광고에는 한자가 많이 나와 읽기도 힘든 수준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읽을거리가 거의 없어진다든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에 나오는 광고 속 읽기 어려운 문안들은 모두 글로 옮겨 놓았다. 이렇게 신문 속 영화 광고를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 [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은 잘 몰랐던 한국영화에 관심은 가지만 선뜻 다가가기 힘든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고, 한국영화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영화의 색다른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 속 영화 광고들에 담긴 그 시절의 시대상·영화상을 한껏 체험해 보기 바란다.
저자 소개
목 차
머리말 001 의리적義理的 구토仇討 / 002 총희寵姬의 연戀 / 003 장한몽 / 004 아리랑 / 005 야서(들쥐) / 006 먼동이 틀 때 / 007 유랑 / 008 벙어리 삼룡 / 009 임자 없는 나룻배 / 010 청춘의 십자로 / 011 춘향전 / 012 미몽 / 013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 014 집 없는 천사 / 015 똘똘이의 모험 / 016 자유만세 / 017 검사와 여선생 / 018 마음의 고향 / 019 출격 명령 / 020 운명의 손 / 021 미망인 / 022 피아골 / 023 양산도 / 024 청춘쌍곡선 / 025 자유부인 / 026 시집가는 날 / 027 잃어버린 청춘 / 028 실낙원의 별 / 029 돈 / 030 지옥화 / 031 별아 내 가슴에 / 032 종각 / 033 인생차압 / 034 비극은 없다 / 035 육체의 길 / 036 이름 없는 별들 / 037 로맨스 빠빠 / 038 박서방 / 039 하녀 / 040 성춘향 / 041 마부 / 042 오발탄 / 043 삼등과장 / 044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 045 상록수 / 046 현해탄은 알고 있다 / 047 서울의 지붕 밑 / 048 다이알 112를 돌려라 / 049 또순이 / 050 고려장 / 051 돌아오지 않는 해병 / 052 김약국의 딸들 053 혈맥 / 054 맨발의 청춘 / 055 육체의 고백 / 056 마의 계단 / 057 검은 머리 / 058 춘몽 059 갯마을 / 060 비무장지대 / 061 초우 / 062 물레방아 / 063 산불 / 064 귀로 / 065 안개 066 천하장사 임꺽정 / 067 카인의 후예 / 068 미워도 다시 한번 / 069 장군의 수염 / 070 천년호 071 독짓는 늙은이 / 072 화녀 / 073 화분 / 074 별들의 고향 / 075 영자의 전성시대 / 076 삼포 가는 길 / 077 바보들의 행진 / 078 로보트 태권V / 079 고교 얄개 / 080 겨울 여자 081 바람 불어 좋은 날 / 082 최후의 증인 / 083 피막 / 084 어둠의 자식들 / 085 만다라 08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087 꼬방동네 사람들 / 088 안개마을 / 089 물레야 물레야 090 바보 선언 / 091 고래사냥 / 092 깊고 푸른 밤 / 093 장남 / 094 땡볕 / 095 길소뜸 096 티켓 / 097 씨받이 / 098 성공시대 / 099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100 칠수와 만수 / 101 아제아제 바라아제 / 102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103 우묵배미의 사랑 / 104 파업전야 105 남부군 / 106 그들도 우리처럼 / 107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108 경마장 가는 길 109 하얀 전쟁 / 110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111 첫사랑 / 112 서편제 / 113 그 섬에 가고 싶다 / 114 개 같은 날의 오후 / 115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116 꽃잎 / 117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18 축제 / 119 초록물고기 / 120 박하사탕
출판사 서평
한국영화의 시금석 <아리랑>, 그리고 나운규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아리랑>은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였음에도 당시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혁명적인 영화다. 조국을 잃은 백성의 울분과 설움을 고스란히 담아냈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관객들이 눈물바다가 되어 아리랑을 따라 부르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또한 <아리랑>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준 충격 또한 대단했는데, 카프 소속의 평론가 최승일은 <아리랑> 이전의 조선영화 모두를 불살라버려도 될 정도의 거상이라 극찬했다. <아리랑>은 조선영화인들에게 기념비이자 넘어야 할 산과 같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독립운동가였던 나운규가 직접 각본·감독·출연한 작품으로,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리랑>의 필름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아리랑> 이후 나운규는 일제강점기 조선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인이 되었다.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 발성영화, 즉 영화의 화면과 함께 소리가 나오는 영화가 나오기 전에는 어떻게 영화를 보았을까? 무성영화만 나오던 때에 우리나라에는 변사라는 매우 인기 있는 직업이 있었다. 이 변사는 영화 밖에서 영화의 진행과 등장인물의 대사 등을 관객들에게 설명해 주던 사람이다. 이처럼 발성영화가 나오기 전에는 변사의 말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곤 했다. 최초의 한국영화가 <의리적義理的 구토仇討>라면, 최초의 한국 발성영화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는 문예영화였다. 최초의 발성영화가 문예영화인 데다가, 한국 대표 소설인 《춘향전》이었다는 점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1935년 <춘향전>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는 발성영화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최초인 만큼 제작 과정에는 큰 어려움이 많이 따랐지만, 호기심으로 가득 찬 수많은 관객들의 발걸음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성춘향>vs<춘향전> 1961년, 구정을 앞두고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 두 편이 거의 동시에 개봉했다. 1월 28일에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과 그보다 열흘 먼저 개봉한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이 그것이다. 이 두 영화는 한국에서 처음 시도한 컬러 시네마스코프 작품이란 점과 같은 소재를 다루고 같은 시기에 개봉했다는 점 등으로 심한 경쟁이 예상됐다. 게다가 두 감독은 각자 자신의 부인인 최은희와 김지미를 ‘춘향’ 역으로 발탁해 그 대결은 더욱 치열해졌다. 결과는 어땠을까? 신상옥의 <성춘향>이 압도적인 승리! 개봉 74일 만에 서울 관객 38만 명이라는 흥행사상 전례 없는 기록을 이뤘고, 이 기록은 1968년 <미워도 다시 한번>이 등장하기 전까지 약 7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렇게 이 두 영화는 대결은 한국영화의 흥행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한국영화 리얼리즘의 거장, 유현목의 <오발탄> 이범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1961년 개봉한 영화이며,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불러온 의미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부패한 자유당 정권 말기의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 자유당 말기에 촬영을 시작했으며, 1960년 4·19 혁명을 거쳐 1961년 4월 13일 1차 개봉을 한다. 그러나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영화의 상영은 금지되고 만다. 노파의 대사 가운데 ‘가자!’라고 하는 장면이 북한을 지향하고 사회를 저항하는 것으로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후에 유현목은 그 장면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출품하면서 상영 정지가 풀렸고 1963년 을지극장에서 재상영되었다. 한국영화 흥행 역사의 전설, <미워도 다시 한번>과 그 후편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국적인 멜로드라마의 전형으로,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그곳에서만 약 3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961년 <성춘향> 이후 역대 최대 관객을 기록한다. 이러한 흥행 성적이 힘입어 감독 정소영은 이듬해 <미워도 다시 한번 속편>(관객 약 25만 명), 1970년 <미워도 다시 한번 제3편>(관객 약 19만 명), 1971년 <미워도 다시 한번 대완결편>(관객 약 14만 명), 그리고 <미워도 다시 한번 2000>을 최종적으로 제작하였다. 한국영화의 침체기 1970~1990년대에서 고군분투한 영화들 텔레비전의 등장, 파도 밀려오듯 들어오는 외국 영화들 등으로 한국영화는 침체기를 맞는다. 신선한 외국영화를 두고 기존의 한국영화는 설 자리를 잃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려 꾸역꾸역 많은 영화를 찍어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유신 정권의 검열도 문제가 됐다. 1970년대에 유행했던 건 청년영화와 액션영화다. 하길종 감독으로 대표되는 청년영화는 당시 억압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뇌하는 청년들의 가슴을 울렸으며, 1975년 개봉한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 대표적이다. 당국의 검열로 약 30분정도 되는 분량이 잘려 상영되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1977년에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한 청년영화 <겨울여자>가 개봉하여 역대 관객 기록을 갱신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도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를 끈 여배우를 내세운 영화였다. 점점 여배우의 에로티시즘을 내세워 관객을 유인했고 한국영화의 침체는 날로 깊어만 갔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인들이 이런 트렌드를 따르진 않았으니, 그중 돋보인 건 감독 임권택이다. 한국적 소재와 한국의 역사로 영화를 만드는 데 집중한 그는 <만다라>로 대대적 호평을 받고, <씨받이>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감독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1993년에 개봉한 <서편제>는 단관개봉만으로 100만 명이 넘는 초유의 관객수를 기록했는데, 이로 인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기도 했다. 다시 시작될 한국영화 100년史 기록하고 보존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지는 법이다. 우리의 수많은 영화들, 특히 광복 이전 영화의 필름은 산실되거나 상태가 좋지 않고, 필름이 해외에서 발견된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와 관련된 자료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반면 기록과 보존이 어렵기는커녕 불법 복제하여 배포하는 것을 막느라 바쁜 요즘, 영화 소식을 전해 주는 매체는 단연 인터넷이 주가 된다. 하지만 한국영화사 초기, 그러니까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신문이 거의 모든 소식을 전하는 매체였다. 그리고 그 신문에는 오늘날 100주년을 이룩한 우리 영화의 발자취도 담겨 있다. 이 책은 영화를, 특히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그 시절을 영화를 선물하는 책이다. 한 영화가 지금이 아니라 그때 어떻게 존재했는지, 그때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싶었는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 등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을 통해 한국영화에 더 흥미를 가지고 한국영화에 관한 자료 보존의 절실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면, 세계인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주먹을 높이 치켜들던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감독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볼 날이 가까워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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