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시인의 시집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시작시인선 0369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98년 『예술세계』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왼손의 쓸모』 『수작』, 편저 『홍난파 수필선집』을 출간한 바 있다.
시집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에서 시인은 일상의 익숙한 풍경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고유한 시적 리듬과 이미지를 창조해 낸다.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거나 인간관계 자체에 주목한 시편들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노래한다. 이때 시인은 친숙한 일상어를 사용하면서도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보여 주면서 진한 감동을 이끌어 낸다. 감춰진 일상의 사소한 부분을 통해 삶 전체를 사유하게끔 하는 힘은 김나영 시의 특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해설을 쓴 김동원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김나영의 시는 “언어를 부화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고, “세상이 언어를 통하여 다시 열리”게 되는 과정의 연속이다. 시인은 “언어의 위력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도 활용 하”며, “계란이 닭밖에 되지 않던 생물학적 세상의 한계를 넘어 새롭게 열리”는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처럼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대립 관계에 있는 것들을 공존하게 하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시인의 다채로운 언어에서 탄생하게 된다. 한편 시인이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세계를 마주하는 방식은 통념이나 편견을 무력하게 만들며, 언어의 창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끔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우리는 시인이 낸 시의 창窓을 넘나들면서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가능성의 세계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김나영
한양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98년 『예술세계』로 등단.
시집 『왼손의 쓸모』 『수작』, 편저 『홍난파 수필선집』 출간.
2005년,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목 차
시인의 말
제1부
링 13
시베리아 숲에서 온 사람 14
모르는 사람 16
아는 사람 18
뜨거운 운동장 19
극 20
아담의 굴레 21
다 늦은 전화 22
무화과 24
길가에 널리고 널린 이야기 25
사람의 반경 26
아버지의 팔자 28
충만한 착시 29
중년 30
달력 31
모래시계 32
하지 34
그런 줄 알면서도 36
유산 37
모란 38
모델하우스 40
제2부
비유의 외곽 43
원정 44
욱 46
삼투압에 대한 사회 역학적 고찰 48
이것은 계란이 아니다 50
환생 52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계절 53
부푼 새 54
컴퍼스 56
실업의 능력 58
내 이름은 파랗게 일렁이는 발목 59
추수에 관한 몇 가지 소문 60
그늘의 설계 62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64
구두 66
제3부
슬며시 눈을 감으면 69
4월 32일 70
연결어미 ‘-ㄴ데’를 위한 문장 연습 71
온다 72
꽃 피었다는 이유 74
차연에게 76
환한 방 78
사월 79
코르셋 80
목련에 얽힌 전설 82
포도밭 밀서 84
입술 86
내용과 형식 87
11월 88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를 위한 시퀀스 89
로마로 가는 길 90
언어의 난민 91
높은 담장, 깊은 그늘 92
문학 94
제4부
처세와 처방 97
내 청춘의 비굴도卑屈圖 98
나는 별들의 무덤 99
얼굴을 쉬다 100
나의 처세술 102
대작對酌 104
4월 1일 106
허기의 환승 108
골목의 역사 110
나의 치외법권 112
가르마가 있던 자리 114
감 116
이 편한 세상 118
겨를 120
필경 121
허공이 내게 젖은 손을 얹어 올 때 122
떨어진다 124
권태 125
정적을 사다 126
의자에 나를 심어 놓고 128
추천 130
해설
김동원 언어로 부화된 새로운 세상 131
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원정
톱니처럼 생긴 꽃, 민들레가 맞물려서피어나고맞물려서피어난다
꽃이 꽃을 길어 올린다 대기에 미세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아무 곳 아무 데로 전투적으로 번 져 간 다 번 져 간 다 석유 한 방울 사용하지 않고
인조석과 활주로를 가볍게 넘는다 총 칼 없이 미사일 없이 드론 없이 국경과 바다를 건너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난민들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발아를 기다린다 시리아 홈스 주택가 주인 잃은 신발 안에도 뿌리를 내리고 상처 난 대지를 꽃으로 봉합한다
꽃으로라도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저렇게 비폭력적인 이데올로기도 없다
민들레 씨앗 안에는 엎질러지기를 소망하는 초록 물감이 수십억 톤
23.5° 기운 민들레 씨가 지구의 자전 속도에 따라 지구촌 어디든 번 져 간 다 번 져 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