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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주변국 지식인이 쓴 反중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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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주변국 지식인이 쓴 反중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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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52238160
쪽수 : 328쪽
양하이잉  |  살림  |  2018년 0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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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왜곡된 역사 앞에 우리는 올바르게 사고할 수 있는가. 중국 중심의 '편식'을 넘어선 시각으로 오늘날 중국의 문제점까지 도발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자기중심 사관으로 똘똘 뭉친 '중화사상'에 대해서 중국이 국제적으로 개방되고 한층 더 발전을 이룰 가능성을 묶는 '족쇄'라고 말한다. 또 '만약 중국이 21세기에 세계를 이끄는 대국의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과거 당.원.청 같은 국제적이면서 다른 민족, 다른 문화의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때야말로 두보와 이백의 당시(唐詩)가 그랬던 것처럼, 지나 문명의 잠재력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점점 권력의 일원화와 사상적인 동화 압력을 강화하기만 하는 현재 중국에게 그런 행보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염려한다. 이 책을 통해 '성벽'으로 막힌 중국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전체, 나아가 세계로 시야를 넓혀 역사를 바라보면, 제대로 된 중국사와 더불어 오늘날 중국이 만들어 내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저자 소개
저자 양하이잉(楊海英) 1964년 중국 내몽골 오르도스에서 태어났다. 1987년 베이징 제2외국어학원대학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일본으로 유학, 2000년에 귀화했으며 문화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현재 국립 시즈오카대학(일본) 인문사회과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을 연구·기록하는데 ‘한문 문헌, 한족 중심주의’에서 탈피하여 유라시아 각국의 자료 섭렵 및 문화인류학·고고학적 관점에서의 현지 조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학통을 이어받은 최고의 소장파 동아시아 연구가다. ‘한족 중심’ ‘중화주의’가 아닌 유라시아 관점으로 동아시아를 재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학문 연구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의 내몽골 제노사이드를 고발한 논픽션 『묘지 없는 초원』(이와나미 서점)으로 시바 료타로상을,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양성된 몽골기병대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의 티베트 원정에 이용되며 전멸한 비극을 기록한 『티베트에 흩날리는 일본도-몽골 기병의 현대사』로 가시야마 준조상을 받았다. 역자 우상규 2018년 현재 「세계일보」 도쿄 특파원으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일본 우익 설계자들: 아베安倍를 등위에서 조종하는 극우조직 ’일본회의’의 실체』『끝이 없는 위기: 세계 최고 과학자들이 내린 후쿠시마 핵재앙의 의학적·생태학적 결론』이 있다.
목 차
표 ‘지나支那=중국’과 ‘유라시아 동부’ 국가의 변천사 들어가며 중국의 역사를 뒤집어 보다 1. 상상 속 ‘중국 4,000년사’ ‘중국사’ ‘중화 문명’이라는 속박의 주문 이민족 통치하에서 번영하다 늘렸다 줄였다 하는 자기중심 사관 2. 문명 사관과 유목 사관 문명 사관의 사고 ‘구동력’으로서의 유목 상상 속 ‘중화 문명’ 공자의 가르침은 어디로 갔는가 3. 해양 문명에서 멀어지려는 중국 바다에서 펼쳐진 근대화에도 뒤처진 중국 ‘동이東夷’, 일본의 근대화에 대한 콤플렉스 제1장 ‘한족’이란 무엇인가 1. ‘한자’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 ‘한자’와 ‘한인’ 다양한 인종의 ‘한인’ 태국계 언어의 잔재 바뀌는 ‘한인’ 2. 동아시아 대륙의 인적 이동 황하 문명을 쌓아 올린 사람들은 남쪽으로 쫓겨났다 육지에 머무르게 된 민족 ‘한족’ 개념 창조와 상상 3. 마르크스의 발전단계설 이식 가설에 문물을 끼워 맞춘 역사 날조 빈곤한 황하(황허)문명이 가져다준 전제주의 뒤집어서 본 사관 제2장 초원에서 문명이 태어나다 1. 문명의 유목 사관 ‘초원 문명’과 ‘유목 문명’ 중국과 지나는 어떻게 다를까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세계 우메사오 다다오의 『문명의 생태사관』 사막의 문명 2. 청동기문명 초원에 야금冶金 문명이 태어나다 오르도스식 청동기의 수수께끼 중원과 나란히 존재한 오르도스 문명 3. 고대 유목민이 남긴 유적 사슴돌의 수수께끼 제3장 ‘서쪽의 스키타이, 동쪽의 흉노’ 그리고 지나 도교 1. 유목민은 누구인가 폐쇄의 상징 만리장성 몽골 고원에서 도나우강에 걸쳐 형성된 공통문화 2. 스키타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했다 헤로도토스 『역사』에 남은 기록 흉노와 훈은 한 뿌리, 같은 민족인가 3. 흉노시대의 지나 전혀 다른 여성관과 종교관 흉노시대의 지나 도교 파룬궁과 도교의 유사성 제4장 당나라는 '한족'의 국가가 아니었다 1. 중앙유라시아의 투르크화 투르크제국과 당나라의 역사적 관계 호인의 호주胡州 대지의 어머니신, 오투켄의 땅 당나라는 ‘한족’의 것이 아니다 오투켄산보다 좋은 곳은 없다! 유목민의 기념물 ‘석인’ 당, 중앙아시아에서 후퇴하다 유라시아 동부의 국제성 유목민의 약점 2. 중앙유라시아의 이슬람화 이슬람의 침투 ‘사자왕’ 비석의 발견 ‘서역’의 허구 석인,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다 제5장 ‘삼국정립三國鼎立’의 시대 1. 세 제국의 병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대키타이국의 흥망 ‘억지 중화사상’의 기원 2. ‘탑’을 사랑한 키타이 농경과 유목을 융합시킨 독자적인 문화 3. 너그러운 대하 탕구트와 원나라 서하문자란 4. 다양한 문명이 풍부했던 몽골제국 몽골인이 수용한 금욕적인 티베트 불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침투 ‘말’과 문자가 가진 의미 제6장 마지막 유라시아 제국, 청 1. 주센(여진)인이 세운 금왕조와 후금 예절을 중시하는 유목민 송나라 중심 사관에 따른 왜곡 만추리아(만주)에서 나타나다 주자학과 한자 만주의 대두 2. 만주인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한족에 흐르는 만주 몽골의 ‘피’ 한인 기인 황제는 신이다 3. 만주는 언제부터 지명地名이 되었나 일본인과 만주 중국의 현대문화를 만든 만주인 관우의 권세를 빌리다 제7장 중국은 역사에게 보복당할 것이다 1. ‘종교는 아편’인 마르크스주의와 전제주의적 사상 문명사적으로 보는 중국인(한족) 정권의 공통적 약점 현세 이익을 추구하는 중국인의 종교관 3대 종교는 왜 중국에 정착하지 않았는가 몽골 고원에 정착한 기독교 비밀결사화된 이슬람 세계제국 몽골과 종교 배타적 왕조, 명나라시대의 지나는 문화 불모지였다 ‘문수보살’에서 유래된 청나라는 개방적이었다 2. 지금도 계속되는 종교와의 충돌 종교 대국 중국의 모순 한인은 왜 종교를 두려워할까 후기 참고 문헌
출판사 서평
중국의 무례가 한반도를 농락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知的 깨달음으로 가득하다 왜곡된 역사 앞에 우리는 올바르게 사고할 수 있는가. 중국 중심의 ‘편식’을 넘어선 시각으로 오늘날 중국의 문제점까지 도발적으로 분석한 ‘오랑캐’ 지식인의 눈! ‘중화 문명은 폐쇄적인 문명이며, 그 상징물이 만리장성이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장성은 결코 중화민족의 위대한 상징이 아니다’ ‘다른 민족과의 경계를 흙벽 건설로 나타내는 폐쇄성을 타파하지 않으면 개혁개방도 불가능하다’는 게 당시의 논조였다. 이 건설적인 논의는 놀랍게도 1980년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진행하고 있던 중국 안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곧바로 장성 재인식론은 정치적으로 비판받고, 문제시됐다. ‘중화문명에 폐쇄성은 없으며, 옛날부터 쭉 위대했다’라는 자기중심 사관이 주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자기중심 사관이 만들어낸 역사의 ‘찬탈’은 1990년대 현대 중국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때까지 중국에서는 <당나라 왕 이세민>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했고, ‘우리 한족의 중국 역사에서 가장 번성했던 때는 당나라 시대였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당나라가 한족이 아닌 탁발·선비인이 수립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중국 내에서 당나라를 격찬하는 일은 사라졌다. 이 책의 저자는 자기중심 사관으로 똘똘 뭉친 ‘중화사상’에 대해서 중국이 국제적으로 개방되고 한층 더 발전을 이룰 가능성을 묶는 ‘족쇄’라고 말한다. 또 ‘만약 중국이 21세기에 세계를 이끄는 대국의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과거 당·원·청 같은 국제적이면서 다른 민족, 다른 문화의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때야말로 두보와 이백의 당시(唐詩)가 그랬던 것처럼, 지나 문명의 잠재력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점점 권력의 일원화와 사상적인 동화 압력을 강화하기만 하는 현재 중국에게 그런 행보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염려한다. 이어 ‘사실에서 눈을 돌리고 자신들의 바람을 일방적으로 표명해서 우위를 확립하려는 심성은 지금도 이어져서 중화 문명이란 고질병이 된 느낌이 든다’고 말하며 이것은 그들이 역사를 대하는 방식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 ‘티베트와 몽골은 청나라의 일부였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의 영토’라며 현재의 침략적 지배와 착취를 긍정하는 논리에도 이용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한족’이 아닌 ‘중화민족’을 표방하며 소수민족을 포섭해 동화하려는 정책으로 또 다른 대립을 낳고 있다. 예를 들면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는 한인과 위구르인의 결혼을 반강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곳은 과거에는 다양한 민족을 통합해서 위구르인이 800만 명, 한인 1,000만 명으로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무슬림은 무슬림끼리만 결혼하기 때문에 무슬림에 관대하지 않은 중국 공산당이 위구르를 무너뜨리는 정책으로 반강제 결혼을 이용한 것이다. ‘중화사상’의 협소한 시야는 중국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까지 만들어 냈다. 저자는 ‘만약 구단선(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독자적으로 설정한 9개의 경계선)까지는 중국의 영해라는 주장이 통하면, 다음은 당연한 것처럼 말라카 해협까지가 중국이라고 확장’할 것이라 경고한다. 이렇게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왜곡시킨 역사 앞에 우리는 올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없다. 이제는 그동안 일방적으로 주입해 온 중국 중심의 ‘편식’을 넘어서 제대로 된 역사와 만날 때다. 이 책을 통해 ‘성벽’으로 막힌 중국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전체, 나아가 세계로 시야를 넓혀 역사를 바라보면, 제대로 된 중국사와 더불어 오늘날 중국이 만들어 내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 속 ‘중국 4,000년사’는 잊어라! 反관성의 ‘오랑캐’ 눈으로 보면 ‘진짜 중국’을 만날 수 있다 ★키노쿠니야 인문대상 노미네이트(2017년) “‘중국’이 번창한 것은 이민족에 의한 국제주의가 통치한 시대. 그 시대에 관용으로 풍요로운 문화를 꽃피웠. 한족(漢族) 왕조는 한(漢)나라 405년과 명나라 276년, 총 681년일 뿐이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중국사의 대전환! 세계 지도를 거꾸로 보는 듯한 쾌감을 선사하는 책.” 보통 중국사를 공부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하·은(혹은 상)·주’로 시작하는 중국의 역대 왕조를 암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한족’의 나라, 중원의 농경민족이 오랑캐를 토벌하며 영토를 확장해갔다는 중국적인 시각으로 ‘꾸며진’ 역사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한인은 4,000년 전부터 중원에 살았고, 그곳에서 훌륭한 황하 문명과 양쯔강 문명을 만들었으며, 마침내 그들이 북쪽으로, 서쪽으로, 동쪽으로, 남쪽으로 ‘야만인을 쫓아내면서 세력을 확대’하면서 주변 민족에 문명을 전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저자는 중국에서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중국사’에 ‘패자의 콤플렉스로서의 중화사상’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고대부터 중국이 ‘높은 문명’을 자부하고 있었던 만큼, 유목기마민족에 패배했을 때의 충격도 컸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예로는 1004년 북송과 거란인의 왕조 요(遼)와의 사이에 맺어진 ‘단연의 맹세’를 든다. 화북에서 공격을 당한 송은 매년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량을 요에 바치는 것으로 화의를 맺었는데, 왕조의 정통성을 고집하는 중국인에게는 꽤나 굴욕적으로 비쳤다. 그 결과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왕조만 정통이라고 말하면서 요와 서하(西夏), 금(金) 등 북방 민족의 왕조를 ‘이적(夷狄)’ 즉 오랑캐라고 깎아내리는 ‘패자의 콤플렉스로서의 중화사상’이 단숨에 표출됐다고 한다. 그것은 먼저 문자로 드러났다. 동이(東夷)·북적(北狄)·서융(西戎)·남만(南?)이라는 유목민을 가리키는 한자에는 개사슴록변(?)을 자주 사용했다. 또한 지명에도 중화 사상적인 표현을 많이 썼다. 예를 들면 정남(定南)은 문자에서 알 수 있듯이 남쪽을 안정시키다, 즉 정복했다는 의미다. 정동(定東)이나 진서(鎖西), 즉 서쪽을 진압했다는 의미의 지명과 동쪽을 평정했다는 평동(平東), 먼 곳을 편안하게 했다는 뜻의 수원(綏遠)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두 실상과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아직 지배가 미치지 않았던 지역에 멋대로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즉 언어에 의한 가상 통치가 선행된 것이다. 물론 그렇게 지명을 붙여도 이민족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으나 단지 자신들이 우월감 속에 빠지고, 결국에는 자신의 거짓말을 현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좋은 것이다.’ 이것이 중국의 정치와 통치 심리이자 유목민의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다. ‘유교 국가’로 예의를 중시한다는 이미지도 그렇다. 애초에 공자가 주창한 정치사상은 생전에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여러 나라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 즉 실천된 적도 없었던 이상적인 세계였다. 저자에 의하면 ‘중국의 현실은 늘 유교의 가르침보다 훨씬 가혹했다.’ ‘그러나 현실과의 괴리가 오히려 유교야말로 가장 위대한 정신적 가르침이며,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자는 오랑캐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굳어져 중화사상의 중심축이 된다’고 한다. 또한 ‘백가쟁명(百家?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했던 사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교로 일원화된 예도 좋은 것이나 가치 있는 것, 정통은 늘 하나라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동화를 강요하는 중화 문명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그렇게 일원화를 지향하는 게 정치적인 면에서 나타난 것이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보유하는 중앙집권체제다. 황제의 독재로 매우 효율적인 권력·재력의 집약이 가능해짐과 동시에 폭주도 종종 일으켜온 게 중국의 역사’라고 꼬집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혀 다른 지평이 열린다. 역사에서 ‘중심과 주변’이 있을 리 없다. 중심과 주변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어떤 시대의 어떤 왕조의 견해에 불과하다. 중국이 가르쳐 온 역사처럼 만리장성의 외부라고 미개한 땅은 아니었다. 관점을 유라시아 대륙으로 넓히면, 황하 문명보다 1,000년이나 일찍 청동기 문명이 시작된 훙산 문명이 존재했고, 그 문명을 만든 사람들이 황하로 이주서 들어와 새롭게 창조한 역사를 찾을 수 있다. 훙산 문명 이후에도 초원에는 다양한 문명이 생겨나서 대륙과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역사를 엮어 온 것이지 일방적으로 ‘미개한 오랑캐’를 ‘문명적인 중국’이 지배하고 문화를 전파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무수히 많은 문헌과 현장 조사 자료 등을 통해 이 사실을 입증한다. 몽골인으로 태어나 만리장성을 직접 말을 타고 뛰어넘어 보며 깨달은 생생한 유라시아 역사는 물론이고, 중국 내에서 진행된 왜곡의 현장도 밝힌다. ‘오랑캐’의 눈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에 펼쳐진 진짜 ‘중국사’를 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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