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0cggh6cgf07703t07h4qcfnr0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본문 바로가기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통합검색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정가
14,000 원
판매가
12,600 원    10 %↓
적립금
700 P
배송비
3,000 원 ( 20,000 원 이상 무료배송 )
배송일정
48시간 배송 예정 배송일정안내
ISBN
9791196648909
쪽수 : 172쪽
염기석  |  도서출판 Oneness  |  2019년 03월 15일
소득공제 가능도서 (자세히보기)
주문수량
 
책 소개
복음의 핵심 구절,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 1:15)는 말씀을 가지고 그동안의 저자의 질문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이제까지 저자가 깨닫고 아는 만큼 썼다. 위 말씀의 단어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기에 질문 없이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저자는 질문과 함께 그 해답을 찾아 나갈 것이다.
저자 소개
염기석 현)치악산 한우리감리교회담임목사 전)목원대학교 목회교육원 주임교수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학박사원(D. Min.) 저서 치유란 무엇인가(쿰란출판사, 2002년) 우리는 왜 치유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치유받는가(쿰란출판사, 2002년) 가슴으로 읽는 로마서 상, 하(쿰란출판사, 2009년) 은사와 치유 사역의 원리(삼원서원, 2010년) 아브라함의 침묵(삼원서원 2011년) 은사와 치유 사역의 방법들(삼원서원, 2012년) 이메일 _ yks02140@daum.net 블로그 _ http://blog.naver.com/yks02140 표지사진 이 세 복 원주제일교회 권사
목 차
서문 ? 9 도서출판 Oneness와 책제목에 대하여 ? 15 제Ⅰ부 복음 1. 때(카이로스) ? 24 2. 찼다(플레로오) ? 27 3. 하나님 나라 ? 29 내면과 하나님 나라 ? 31 /영원한 하나의 나라 ? 33 / 평화의 나라 ? 35 4. 가까이 왔다 ? 37 5. 회개하라 ? 40 내려놓음 ? 41 /죄 사함의 권세 ? 45 /용서는 하나다 ? 48 / 속죄소 ? 49 6. 복음(유앙겔리온) ? 51 7. 믿음(피스튜오) ? 55 믿음과 응답 ? 57 /의심과 한마음 ? 61 제Ⅱ부 영성 1. 대전제 ? 70 1)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 70 2)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 72 3)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 74 4) 하나님은 진리 그 자체이시다 ? 76 5)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 78 6)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는 다르다 ? 80 2. 육의 세계 ? 82 1) 나는 누구인가? ? 85 이름 ? 86 /몸 ? 88 /생각과 사고체계 ? 90 /마음 ? 92 / 에고 ? 96 2) 이원성 ? 98 두려움 ? 99 /쾌락 ? 102 /분리 ? 104 3) 시간과 공간 ? 110 선형적 시간 ? 112 /원인과 결과 ? 115 3. 영의 세계 ? 117 1) 나는 무엇인가? ? 120 의식 ? 121 /참나/그리스도 ? 127 //인격신 ? 130 2) 하나임/비이원성 ? 137 계명 ? 140 /헌신과 희생 ? 146 /비판하지 말라 ? 150 /새 계명 ? 153 3) 영원 ? 155 4.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1)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 157 2)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 159
출판사 서평
도서출판 Oneness와 책제목에 대하여
영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로 출판사 이름을 정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새 언약”, “새 계명”의 ‘새’(카이노스)를 생각했었다. 두 번째는 영원이란 히브리어 단어인 ‘오람’을 출판사명으로 하려 했다. 출판사 등록 전날, 영성을 꿰뚫는 단어인 ‘하나’가 생각났다.
하나이기에 영원한 것이며, 하나는 구별이나 분리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는 평화일 수밖에 없다. 영원히 평화로우니 항상 기쁨과 환희만이 넘친다. 그저 하나님 나라다.
Oneness는 완전한 일체, 하나임을 뜻하는 단어다. Oneness는 데이빗 호킨스박사가 주로 쓰는 단어다. 하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나이기에 완전하며 전체다. 하나이기에 거룩하고 진리일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대상으로 파악하는 둘의 세계, 에고의 세계에 사는 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책 제목은 『기적수업(합본)』 교과서, 제18장 꿈의 종결, 7과의 제목에서 따 왔다.
하나 안에서는 하는 자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다. 무엇인가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Oneness가 아니다. 하나 안에는 할 것도, 알 것도 없으니 시공간도 없다. 그저 영원이다.

<부 록> 영성수련
영성수련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기에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6월에 관상기도 수련회 일정이 잡혀있어서 따로 원고를 만드느니 아예 책에다 대략적인 내용을 쓰려고 한다.
대략 17년 전쯤 그 언저리인 것 같은데 한창 은사가 충만할 때였다. 그때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 내게 육성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래야 교만하지 않고 은사를 성령님의 뜻대로 잘 쓰게 된다고 했다. 육성이 살아 있으면 내 욕심대로 은사를 쓰기에 타락한 은사자가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좋게 받아들여 육성을 죽이는 훈련을 내 스스로 해 나가기 시작했다. 금식도 하고 매일 그것을 놓고 기도를 했다. 그러는 중, 하나의 의구심이 떠올랐다. 기도 좀 한다는 사람들이 흔히 “육성을 죽여야 한다.”, “에고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데 대체 육성이 뭐지? 육성이란 실체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죽이는가? 적을 모르는데 어찌 싸워 이길 수 있는가?
그 즈음에 교회에 장례가 났다. 남자권사님이 돌아가셨는데, 간경화가 간암으로 진행돼 결국 돌아가셨다. 하관식을 하는데 석관을 썼다. 키는 작지만 거구의 몸인데다 복수까지 차서 석관에 들어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석관 안에 안장은 했는데 이번에는 석관 뚜껑이 닫히질 않았다. 대충 관 뚜껑을 얹어놓고는 고인의 형이 건장한 조카들을 불러 모으고 안에 들어가 밟으라고 시켰다. 대략 15cm 정도는 떠 있던 관 뚜껑이 10여 분 정도 밟으니까 닫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관식을 마치고 봉분을 하고 장례를 마쳤다.
관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뚜껑이 닫혔는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프다고, 나 죽는다고 난리를 쳤겠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아하, 육성을 죽이는 것은 죽은 사람처럼 되면 되는 것이구나. 그리하여 묵상도 모르고 관상기도도 모르는 내가 죽은 사람처럼 되는 훈련을 시작했다.
죽은 사람은 감각이 없으므로 나는 모든 몸의 감각을 사라지게 하는 훈련을 했다. 나는 있는데 몸의 감각이 사라지니 내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르게 되었다. 여기서 몸의 감각이 사라진다는 말은 감각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감각은 그대로 있어서 밖의 소리도 들리고 보이는 것은 다 보이지만 그것이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도 멈추는 듯 했다. 그리고 생각을 없애는 방법을 연구했다. 몸이 완전히 이완되면 몸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뇌에 적용하는 것이다. 뇌에 힘을 빼니 정말 생각이 사라졌다. 생각이 사라졌다는 말도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붙잡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시절의 문제 그렇게 되면 잠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앉아서 몇 달을 잤다. 그러다가 잠이 점차 없어지더니 이번에는 무슨 의식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생각이 다시 살아났나 싶어 생각을 다시 이완시켰는데도 여전히 그 어떤 의식이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그것을 “의식 너머의 의식”이라고 불렀다.
몇 년 전에 관상기도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생각 너머의 생각이 내가 말한 의식 너머의 의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때 잠에 빠졌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아감마저 죽였기 때문이다. 관상수행에서는 나라고 하는 또렷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 의식이 집중이 되면 확장을 시작하고 결국에는 우주의식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합일이다.
영성수련에는 왕도가 없다. 길도 없다. 여러 스승들이 자신이 했던 것을 가르쳤고 그것이 ○○수련법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 것이다. 여러 방법들을 사용하여 수련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것을 터득한 다음에는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른바 길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행해지는 영성수련의 길은 대략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무념적 방법apophatic way과 유념적 방법kataphatic way이 그것이다. 이는 이미지를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구별이다.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는 무념적 방법에는 관상기도, 향심기도 등이 있으며, 유념적 방법에는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등이 있다. 이미지를 사용하는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법은 그것이 아무리 매혹적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둘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무념적 방법을 따르라고 말한다.
관상기도를 할 때 몸은 충분히 이완되어야 한다. 이완되지 않으면 감각이 살아난다. 몸의 감각이 명상을 방해하게 된다. 이완되더라도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감각으로만 있을 뿐이다.
호흡은 특별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물론 호흡법을 익힌 사람은 이완하기가 훨씬 쉽고 명상에 잘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따로 호흡법을 익힐 필요까지는 없다. 이완이 되면 호흡은 저절로 따라 와 가지런해진다. 들숨보다 날숨을 고르게 정성껏 하게 된다.
몸이 이완되면 잠이 오기 쉽다. 이때 자아감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자각을 또렷하게 유지해야 한다. 자아감이 사라지면 이른바 무공간이라고 부르는 공空에 빠지게 된다. 자아감을 또렷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모든 감각이 열려있는 상태로 그저 나라는 느낌으로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충분히 이완된 상태에서 또렷한 자아감을 가지고 한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때의 생각은 정신화작용에 의한 생각이나 지성, 또는 감성에 의한 생각이 아니다. 그것 너머의 생각이다. 의식 너머의 의식이다.
왜 한 생각을 떠올리느냐 하면 생각이 끝임 없이 떠올라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아예 한 생각을 주는 것이다. 해 보면 알겠지만 한 가지 생각을 꾸준하게 집중하기란 사실 매우 어렵다. 초심자에게는 흔히 숫자세기를 가르친다. 1부터 10까지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반복해서 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해보면 안다.
관상기도에서는 “하나님”이란 단어를 준다. 향심기도에서는 “사랑”, “자비” 등과 같은 거룩한 단어를 한 생각으로 준다. 이를 생각 너머의 생각으로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생각 너머의 생각을 굳이 말로 하자면 솜털 위에 깃털 하나 올려놓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느낌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 보면 안다. 여기서는 정신화작용을 하지 않기에 단어의 의미는 없다. 그러므로 그 단어의 의미를 찾으려 하거나 의미가 생겨나면 이미 실패한 것이다.
생각 너머의 생각에 안주하게 되면 집중상태가 된 것이다. 집중상태가 되면 나라는 의식이 점차 확장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내 몸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확대되어 결국에는 우주의식과 하나가 된다. 이것이 합일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에크하르트의 말처럼 신성으로의 돌파가 이루어져야 끝이다. 그 다음은 없다.
내가 영성수련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이 정도다. 하나임에서는 오감으로 지각되거나 인식되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없다는 말을 앞에서 했다. 수련에 임하는 자는 누구나 보이는 세상에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된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처럼 살라. 헐렁한 옷을 걸친 듯 살라. 보이는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 빠르게 지나가는 열차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보라. 수련을 계속하다 보면 변화하는 자신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수련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무시해야 한다. 하나의 세계에서는 구별된 그 어떤 현상도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신수련법을 권하지 않는 것이다.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냥 계속하는 것이다.

에필로그
밖에 눈발이 날린다. 날리는 것이 눈발뿐이겠는가? 보이는 것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다 날아간다. 모른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의미는 환상이다. 성령의 사람은 바람과 같다. 어디로 불며, 어디로 가는지 다 의미 없다.

예전에 여러 군데 개신교 수도원을 다녀 본 적이 있었다. 거기서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니 하나에 대해, 왜 수행을 하는지, 그런 수행 방법이 왜 나왔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책 정도는 하나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용감하게 썼다.
내가 사는 치악산에서 서울을 가려면 여주나 이천을 거쳐 가야 한다. 이미 서울에 도착한 사람에게는 여주나 이천은 아무 의미가 없지만 치악산에서 출발해서 가는 사람에게는 중간 기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서울로 가는 이정표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영성 입문서 정도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영성에 대해 공부를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영성에 한 번 발을 딛고 나면 되돌아가는 길이 없다. 세상이 주는 맛과 다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집어던졌다가 어느 순간 다시 붙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영성의 맛은 깨달음이다. 깨달음과 함께 찾아오는 희열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모든 질문이나 의심이 영성의 시작이다. 작은 질문은 작은 깨달음을, 큰 질문은 큰 깨달음을 줄 것이다. 때로는 삶의 질곡과 나락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것도 영성의 시작이다. 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했으나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문제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질문은 그것을 답해 줄 스승을 늘 준비하고 있다. 자연이 되었든, 책이 되었든,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되었든지 간에 그렇다. 운이 좋은 사람은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나 답은 스승도, 주변의 그 어느 것에도 없다. 답은 내 안에 있다. 답이 나다. 질문만큼의 답이 나다. 그리고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묻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물었다는 말이다. 일단 물었으면 포기하지 말고 꼭꼭 씹어라. 물은 것을 삼켜라. 피가 되고 살이 될 때까지 계속 물고 씹고 삼켜라. 그래야 물은 것이 내가 된다.
우리가 질문을 가지고 있을 때, 내가 물은 것인지, 질문이 나를 문 것인지 마치 그 질문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이럴 때에는 답답하여 힘들고 마치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질문이 놓아지는 순간, 질문을 잊어버린 순간,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혜가 번쩍하고 온다.
‘아!’하는 탄성과 함께 그냥 알게 된다. 분리하고 구분하여 개별적으로 알던 것들이 하나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간다. 그리고는 “하나밖에 없다. 하나만 알면 다 안다.”는 앎이 자리를 잡는다. 질문을 잡고 있을 때는 그런 순간이 오기 힘들다, 만 5년 전의 일이다.
3년 전에는 허공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나였어? 허 참!”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나라고 하는 것이 어떤 형태로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나라니.
40살에 나는 스스로 호를 빈탕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내가 쓴 책이나 원고들 말에 항상 빈탕이란 호를 썼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에 정말로 내가 빈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것은 깨달음에 대한 기쁨의 환호가 아니다. 나라고 믿어왔던 것, 이것만은 있어야 한다는 것, 마지막 남은 이것이 나라고 하는 것들이 사라지고 남은 빈 공간을 채우는 허탈한 웃음이었다. 빈탕은 하나님이자 의식 그 자체다. 개별성이 없는 의식, 텅 빈 충만이 빈탕이다.
영성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들이 있다. 나에게 많은 영향과 영감을 주고 길잡이가 되어준 책들이다.
첫째로는 데이빗 호킨스박사의 저서들이다. 『의식혁명』, 『나의 눈』, 『호모 스피리투스』, 『놓아버림』 등 여러 권의 저서들이 있다.
둘째로는 내면의 평화재단ACIM에서 나온 『기적수업』이다. 이 책은 합본으로 교과서, 학생용 연습서, 교사용 지침서, 심리치료, 기도의 노래 등이 한권의 책에 수록되어 있다.
이들 책을 읽는다면 내 책은 읽지 않아도 기꺼이 감사할 것이다. 이들 책 중에 단 한 페이지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한다면 내 책은 쓰레기통에 처넣어야 할 것이다. 그 어떠한 표현으로도 나는 이 책들의 위대함을 담아내지 못한다. 부디 이 책들을 읽어주시면 나는 매우 행복할 것이다.
고객 리뷰
평점 리뷰제목 작성자 작성일 내용보기

아직 작성된 리뷰가 없습니다.

반품/교환
· 회사명 : 북앤북스문고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3308 B1  
· 대표자 : 김대철   · 사업자 등록번호 : 661-10-02383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3-제주노형-0169   ·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최재혁  

고객센터

(평일 09:30~17:30)
(점심 12:00~13:00)
· 전화 : 064)725-7279 (발신자 부담)
    064)757-7279 (발신자 부담)
· 팩스 : 064)759-7279
· E-Mail : bookpani@naver.com
Copyright © 2019 북앤북스문고.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