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지음 | 언약
책 머리에
무너진 교회를 살려낸 참된 교리
칭의론과 의로움의 전가교리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우느냐를 결정짓는 핵심교리이다. 이 진리가 혼란에 빠지면, 교회는 결국 왜곡된 사상으로 인해서 무너지고 만다. 중세 말기에 타락한 교황청과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의 왜곡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암흑 같은 혼돈에 처해 있었다. 수많은 초기 종교개혁자들(루터, 츠빙글리, 부써, 외콜람파디우스, 볼프강 까피토, 요한네스 브렌즈, 유스투스 요나스, 기욤 파렐, 피터 마터 버미글리, 칼빈, 낙스, 멜랑히톤, 불링거, 삐에르 비레, 지롤라모 잔키 등)은 참된 교회의 정체성을 복구하였다. 이들 초창기 종교개혁자들이 펼쳐낸 많은 가르침 중에서 교회를 살려낸 핵심 교리가 “칭의와 전가교리”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 소중한 정통신앙을 고수하고자, 수많은 후기 종교개혁자들과 영국의 청교도들, 17세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이 온갖 도전들을 물리치는데 분투하였다. 이들은 전가교리를 한층 더 정교하게 지켜내고자,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세분화하여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통해서 성취한 그리스도의 의로움에 의해서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가르쳤다.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 다시 세워져야 할 때이다. 우리가 다시 한번 칭의와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확고히 정립하지 않는다면, 교회마다 인간의 행위와 성화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영생을 얻으려 하는 변질된 노선에 빠지게 되고 말 것이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정신차려서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거짓 복음”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갈 1:6).
종교개혁자들이 수렁에 빠진 교회를 건져냈다.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의 피흘리심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의 의로움을 인정해 주셔서, 오직 값없이 내려 주시는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그리스도가 완전하게 율법을 성취하셨고,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저주를 받아 죽으시고, 심판을 당하시기까지 순종의 사역을 감당하였기에,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이 선포된다.
이 책을 출간하는 이유는 진리에 대한 목마름과 안타까움 때문이다. 가장 보편적인 교리를 성경적으로 정립한 부분에 대해서, 한국 교회가 올바로 이해하여 은혜와 감격과 위로를 회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첫째,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
성경은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역사를 소개한 책이다. 그 안에 담겨진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하심을 배우게 된다. 사망의 선고를 받은 인간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된다(롬 1:16-17).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칭의론,” “의로움의 전가교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동”은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교리들로서 모두 다 성경적 교훈에서 나온 것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인류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심에 있어서, 율법을 성취하시고 완전하게 의로운 인생을 살았으며, 고난과 죽음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기까지 순종하셨고, 그가 의인이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에 영생을 얻는다(롬 10:9-10). 이 땅 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지은 자들을 대신하여 속죄 제물이 되셨는데,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기 때문에, 흠 없는 어린 양으로 바쳐질 수 있었다.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전가시켜 주신다는 교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에 근거하고 있다.
둘째,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 진리
칭의론과 전가교리는 기독교 교회를 온전히 세우고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수적으로 깨달아야 할 핵심 진리이다. 우리가 어떤 한 교파나 교단을 위한 특정한 교리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기독교의 핵심 주제들을 연결하여 정립하였던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의 칭의론과 전가교리는 결코 편협한 어느 한쪽 개신교 교회만의 강점이라거나, 어떤 교파주의 신학에 속하는 지엽적인 교리가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성취된 죄의 용서와 이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의롭다 하심은 모든 교회가 반드시 가르쳐야만 할 “보편적 진리”이자, 본질적인 교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 주제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서에 담겨져 있고, 개혁주의 교회들이 공유하여 왔었다. 유럽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이 가장 공통적으로 공감을 나눈 최대 공약수가 칭의론과 대속의 교리, 그리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었다. 유럽의 개혁교회들은 구원론 외에도 참된 신앙과 공통적인 교리들을 서로 간에 충분히 논의하면서 일치를 도모했었고, 성만찬 등 다소 논쟁하는 주제에 대해서만 차이점이 있었을 뿐이다. Matthew Barrett, “The Crux of Genuine Reform,” in Reformation Thought (Wheaton: Crossway, 2017), 47. David Bagchi & David Steinmetz, eds., The Cambridge Companion to Reformation The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2. 김재성, 『루터 vs 칼빈』 (서울: 세창출판사, 2018), 128.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개혁신학의 칭의론과 그리스도의 속죄론은 로마 가톨릭에서 분열한 지엽적인 일부 신학자들만의 주제가 아니라, 초대교회부터 내려온 가장 본질적이며 보편적인 신앙의 회복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Irena Backus, ed., The Reception of the Church Fathers in the West: From the Carolingians to the Maurists (Leiden: Brill, 1997). Anthony N S Lane, John Calvin Student of Church Fathers (Edinburgh: T & T Clark, 1991).
루터와 칼빈 등이 주장했기 때문에, 칭의론이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라고 강변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칭의론과 의로움의 전가 교리는 성경에 풀이된 바에 따라서 초대교회에서부터 가장 강조된 진리였다.
초대 교부들의 순결한 신앙 전통을 중세 로마 가톨릭이 혼돈에 빠트렸기에, 이를 종교개혁자들이 다시금 복구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Nick Needham, “Justification in the Early Church Fathers” in Justification in Perspective: Historical Development and Contemporary Challenges, ed. Bruce L. McCormack (Grand Rapids: Baker, 2006), 25-54. Louis Berkhof, The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s (1937; Edinburgh: Banner of Truth, 1991), 203.
칭의론과 속죄론은 지극히 보편적이며 공통적인 기독교의 구원교리에 해당한다. 종교개혁자들은 그 신학 사상에서 “개혁주의 보편성(reformed catholicity)”을 회복하고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모든 교회가 다 수용해야 할 하나 된 진리이기 때문이다. 칭의와 전가교리는 우리 모든 교회가 추구해야 할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 확신한다. John Fesko, “Reformed Catholics,” https://www.crossway.org/articles/reformed-catholics/ (June 26, 2014). Michael Allen & Scott Swain, eds., Reformed Catholicity: The Promise of Retrieval for Theology and Biblical Interpretation (Grand Rapids: Baker, 2015). idem, Christian Dogmatics: Reformed Theoogy for the Church Catholic (Grand Rapids: Baker, 2016).
종교개혁 운동은 결코 교회의 분열을 획책하거나, 분리주의적인 집단행동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사상은 그야말로 혼돈에 빠져있었던 당시 로마 가톨릭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의 주장과는 전혀 달랐다. 탐욕과 부패로 얼룩진 교황은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목자가 아니었고, 성당의 주교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무리들 속에서 충성하며 살았던 추기경 야고보 샤돌레(1477-1547)가 제네바 교회를 향해서 1539년에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시의회에 보내왔다. 칼빈은 이를 반박하는 답변서를 엿새 만에 작성했다. 칼빈은 제네바 교회가 추구하는 종교개혁은 결코 분파주의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유지되어온 보편적인 공의회의 결정들과 성경에 입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칼빈은 “모든 시대에 걸쳐서 지구상의 어느 지역에서나 인정하는 하나의 교리, 그리스도의 한 영으로 함께 묶여있는 성도들의 공동체가 신앙의 일치와 형제로서의 화합을 할 수 있도록 추구한다”고 항변했다. John Calvin, “Reply to Cardinal Sadolet’s Letter,” in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7 vols., ed. & tr. Henry Beveridge (1844; Edinburgh: Banner of Truth, 2009), I:36. 보다 자세한 내용은 김재성,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 칼빈의 생애와 신학』 (개정판, 킹덤북스, 2020), 401-405.
종교개혁이 추구한 모든 노력들은 기독교의 보편성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보편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이름만 “가톨릭(보편적)”을 사용했을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로마에 있는 교황을 머리로 삼는 특수한 조직체일 뿐이다.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결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종교적 집단에 가입해야만 “보편성”을 갖춘 유일한 교회의 일원이 된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본 연구를 통해서 제시하고자 하는 칭의와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전가를 통한 구원의 복음만이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자, 가장 보편적 교리이며, 참된 교회의 공통분모에 해당하는 것임을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란다.
셋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 하나님의 의를 세웠다.
또한, 우리가 기억하고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다. 칭의교리의 정립과 발전과정에서, 후기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두 가지 순종의 개념을 전가의 근거로 강조했다. 종교개혁 후기 신학자들과 17세기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거듭되는 로마 가톨릭과의 논쟁 속에서 그리스도의 속죄론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재정립하였다. 그리스도가 감당했던 지상에서의 속죄 사역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성되었음을 제시하였다.
필자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신학 용어의 출처에 대해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저서들을 조사해 본 결과, 이 용어의 근원에 해당하는 개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신학자는 마틴 루터였다. 하지만, 루터파 신학자 메니누스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구별했고, 루터파 신학총론인 『일치신조』(1577)에서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고,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저술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칭의교리의 핵심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적이며 형벌적 속죄의 죽임을 당하셨다는 점을 성경이 기본사항으로 증거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고전 15:3).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은 칭의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란 결국 온전한 순종이라고 증거를 시했다. 이를 입증하는 성경 본문들을 철저히 분석하면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베자에서부터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 무스쿨루스, 잔키우스, 토마스 카트라?, 퍼킨스, 더들리 펜너, 로버트 롤록, 로버트 하위, 삐에르 두 물랭(Pierre Du MuMoulin, 1568-1658), 크레이그, 월터 트레버스, 그리고 17세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했던 신학자들 대부분과 폴라누스, 볼레비우스, 뛰르땡, 보에티우스(Gisbert Voetius, 1589-1676), 코케이우스(Johnnes Cocceius, 1603-1669),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 1600-1661), 존 오웬, 토마스 굳윈, 챠르녹, 암브로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 토마스 보스톤(Thomas Boston, 1676-1732) 등이 이중 전가의 교리를 지키면서, 역사적 상황의 변화와 새로운 신학적 쟁점들에 대처해야만 했었다.
이들 후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칭의론과 전가교리를 더욱 정교하게 체계화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기초로 하는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루터와 칼빈의 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게 된 것은 그것이 칭의교리의 왜곡과 회의론자들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유익했기 때문이다. 칭의론과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확고히 정립하는데 더 확고한 근거가 필요했다. 만일 개혁주의 정통신학이 무너지게 된다면, 교회는 혼란과 변질된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17세기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자들은 온갖 정치적인 압박 속에서 분투하고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 측의 반종교개혁 운동에서 나오는 비난과 거듭되는 논쟁에 대응해야만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개혁주의 진영 내부에서 올라오는 반율법주의, 신율법주의, 알미니안주의, 아밀랄디언이즘, 쏘시니언이즘을 주장했던 자들과 논쟁했다. 능동적 순종의 개념을 반대한 자들은 피스카토르, 파레우스, 아미로, 루베르투스(Sibrandus Lubbertus, 1555-1625), 존 굳윈(John Goodwin, 1594-1665), 백스터, 플레카에우스(Josua Placaeus) 등이다. Herber Carlos de Campos Jr., “Johannes Piscator (1546-1625) and the Consequent Development of the Doctrine of the Imputation of Christ’s Active Obedience,” (Ph.D. diss., Calvin Theological Seminary, 2009), 197, 216, 280.
사악하고 간교한 교황주의자들은 개신교회를 무너뜨리고자 반종교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로마 가톨릭 측에서는 종교개혁자들에 대해서 전혀 근거가 없는 험담과 모함을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교황 바울 3세는 이단 재판소를 설치하고, 금서목록을 발표했는데, 종교개혁자들의 저서들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심지어 에라스무스의 책들도 읽어서는 안된다고 선포했다. 개신교회의 침투에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고 주문하면서, “만일 우리들의 아버지가 이단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화형시켜야 한다. 칼빈주의자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떠한 종류의 이단에게도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된다”고 외쳤다. Lewis W. Spitz, The Renaissance and Reformation Movements (Chicago: Rand McNally, 1971), 477.
개혁교회들은 참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통신학의 체계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제2의 종교개혁(Nadere Reformatie)”이 필요하였다. 유럽의 종교전쟁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런 압박과 비난을 견디면서도 진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그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신학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노력을 무시하고 복잡한 교리 주의라고비난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편견이다. 다소 딱딱하고, 보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며, 공고한 논의가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사변적이며, 논쟁적인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 개혁파 스콜라주의라는 방법론이 불가피하게 채용되었다. Willem J. van Asselt & Eef Dekker, Reformation and Scholasticism (Grand Rapids: Baker, 2001); 한병수 역, 『종교개혁과 스콜라주의』 (부흥과 개혁사, 2014).
신학의 성격이나 내용 면에서는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주제의 논의 방식과 범위와 용어 등이 새롭게 구성되었다. 칼빈과 그를 따르는 칼빈주의자들 사이에 신학적인 차이가 크다는 논쟁이 제기되었다. Basil Hall, “Calvin against Calvinists,” in John Calvin, ed. G.E. Duffield (Appleford, 1966), 12-37. 홀의 논지에 맞서서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두 학자들의 저서를 소개한다. Richard A. Muller, “Calvin and the “Calvinists”: Assessing Continuities and Discontinuities between the Reformation and Orthodoxy, Part I,” Calvin Theological Journal, Vol. 30 (1995): 345-75; “Part II,” Calvin Theological Journal, Vol. 31 (1996), 128-9, 151-7. Paul Helm, Calvin and the Calvinists (Edinburgh: Banner of Truth, 1982); idem, John Calvin’s Ideas (Oxford: Oxford Univ. Press, 2006); idem, “Westminster and Protestant Scholasticism,” in The Westminster Confession into the 21st Century, ed. Ligon J. Duncan (Fearn, Scotland: Christian Focus, 2004), 2:99?116. 이 내용과 관계된 더 자세한 설명은 제3장, 각주 139번을 볼 것.
이 연구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에서는 칭의와 전가교리와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기본적인 개혁주의 신학의 개념 규정과 전체적인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된 교회의 기초를 정립하고, 특히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에 대하여 종합적인 안목을 갖추게 되기를 소망한다.
제2장에서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를 살펴보고자 한다. 칭의와 전가교리의 핵심되는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면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인 순종의 핵심 내용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제3장에서는 신학적인 논쟁과 토론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능동적, 수동적이라는 용어를 누가 사용했는지, 어떻게 정립되었는지에 대한 토론과 논쟁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제4장에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자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교훈들을 나누고자 한다. 특히 한국 교회가 어떤 부분에서 더 순종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우리는 과거의 개혁신학을 회고하는 것에서 멈출 수 없다. 오늘의 교회를 온전하게 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신실하게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도록 양육해야만 한다. 각자 주어진 소임에서 창조적으로 발전시키고 앞을 향해 정진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해야만 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Soli Deo Gloria!)
2021년 3월 25일
계양산 기슭에서 저자 김재성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