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 지음 | 남청출판사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歸依)합니다.
김해 신흥사 일곱 번째 선서(禪書),
‘증도가(證道歌) 역주(譯註)‘가 출판되었습니다.
널리 홍보(弘報) 부탁드립니다.
『증도가』는 영가현각(665?, 675? ~ 713)이 한도인으로 살아가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고, 영가현각을 일숙각(一宿覺)이라고 하며 『조당집』 3권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일숙각(一宿覺)화상은 선천(先天)2년(713) 10월 17일에 열반하시니, 춘추(春秋)는 39세이고 시호를 무상대사라 내렸고 정광(淨光)의 탑이라고 하였다.” 라고 전하고 있듯이 짧은 생을 살다 돌아가신 한도인(閑道人)이다.
영각현각(665?, 675 ~ 713)이 천태에서 수행을 하였지만 육조에게서 인가증명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천태에서 도(道)를 이루지 못하였고 돈교의 가르침으로 자신이 깨달음을 체득하였다고 술회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렇지만 시대적으로 남종을 의지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제작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천태의 수행자들을 남종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제작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불교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
이와 같이 게송으로 『증도가』를 유포시킨 것은 일반적으로 교학의 수행자들이 간경(看經)을 할 줄 모르면 자신이 경전에 평생 동안 끌려 다니게 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고, 또 밖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면서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자비심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도 타인의 마니보주를 자신의 마니보주라고 착각하여 신앙으로 교주를 만드는 일들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의 사상은 『육조단경』에서 강조하는 선사상이므로 육조의 법을 계승한 것이며, 또 서천28조와 동토6조의 법통설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증도가』의 제작은 『육조단경』(790)이후에 폐불사태(842-845)를 극복하기 위하여 10세기경에 제작하였을 가능성을 추측하여 볼 수 있다.
현대에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마니보주(摩尼寶珠)와 불성(佛性)등을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불교에 대한 공부를 조금만하면 누구나 한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번역하였다.
「摩尼珠人不識, 如來藏裏親收得, 六般神用空不空, 一顆圓光色非色.」
(마니보주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들은 자성(自性)을 대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여래장속에 친히 넣어 놓고만 있었다는 것을 체득하기만 하면, 육신통의 지혜로 공(空)을 체득하여 불공(不空)으로 생활하게 되니, 하나의 마니보주가 원만하게 삼천대천세계에 광명을 발하여 색(色)을 초월하게 되네.)
「不見一法?如來, 方得名?觀自在, 了?業障本來空, 未了還須償宿債.」
(한 법(法)도 의식의 대상으로 알지 않으면 여래로 살고, 비로소 이것을 체득해야 관자재보살이라 할 수 있으며, 여래의 종성(種性)이 공(空)이라는 사실을 요달하면 업장(業障)도 본래부터 공(空)이 되어 한도인(閑道人)으로 살지만, 죄와 복의 본성이 공(空)이라는 사실을 요달하지 못하면 도리어 숙채(宿債)를 갚아야 하네.)
그리고 책의 마지막부분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좁은 소견으로 수레바퀴에 대적하는 사마귀가 되지 말고 토끼와 같이 자기들만 다니는 길로 다니면서 최상승(最上乘)을 알지 못하는 소승(小乘)으로 살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범부들의 눈에는 모두가 범부로 보이는 것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두가 부처로 보이는 것이므로 모두가 넓고 넓은 창공(蒼空)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라고 하고 있듯이 이 책을 보는 모든 이들이 종교와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 진정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증도가 역주』는 9단으로 나누어 직역(直譯)보다는 내용에 충실하려고 의미를 살리려고 번역하고 설명했으며, 남청 임성순 서성작가께서 전서(篆書)로 23점의 작품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