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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와 양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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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와 양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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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60514669
쪽수 : 544쪽
남회근  |  부키  |  2015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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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맹자와 양혜왕』는 저자 남회근이 「양혜왕」 편에서 설득의 대가인 맹자의 유세술에 초점을 맞춘다.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의 상황을 인정해 주면서도 자신의 논지를 펼칠 기회를 놓치지 않는 맹자. 상대가 자기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도록 뛰어난 대화술로 유도하는 맹자. 또 맹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진, 추연, 각국의 군주를 등장시켜 뜻한 바와 그 목적에서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 소개
저자 남회근은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을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항주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역학,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큰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선사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을 하며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 경지를 인증 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며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워싱턴으로 가서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으로 거주지를 옮겨 칠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 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 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 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목 차
목차 옮긴이 말 5 들어가는 말 9 강연에 앞서 21 춘추 시대에 의로운 전쟁은 없었다 25|사마천의 편찬 기법 속 맹자 29|추연과 맹자의 강렬한 대비 33|처세의 철학 문제 38|소진과 맹자의 시대 43|진시황 패업의 청사진 45|소진, 초라한 몰골로 돌아오다 49|천고에 변치 않는 인정세태 52|소진의 성공 비결 57|왕도와 패도가 서로 넘나들다 58|『음부경』의 계시 60|개인의 뜻을 펼치는 데 목적이 있었다 63|여섯 나라 재상의 인장을 찼던 빛나는 시기 66|소진의 철학적 관점과 서생으로서의 본색 72|역사에서 소진의 공적 79|소진에 대한 평가와 사마천의 평어 81|경전과 역사를 함께 참고하다 87|양 혜왕의 선조 88|상앙과 양 혜왕 90 양혜왕 상 95 양 혜왕과 맹 노인장 98|양 혜왕과 맹자에 대한 사마천의 관점 101|맹자의 의리지변 105|어찌 이로움을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 109|도덕이 쇠미할 때에야 인의가 나온다 112|맹자의 사상은 뒤섞여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114|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다 120|「아방궁부」의 기록과 진시황 125|『삼보황도』에 기록된 아방궁의 모습 128|미루와 수 양제 131|간악과 송 휘종 135|이화원과 청나라 말 자희 태후 142|봉각 용루와 이후주 143|청명상하도의 이면 148|농사철을 어기지 않다 153|난세에 유랑하는 백성을 그린 문학 155|도강언을 만든 이빙 부자 164|비유와 은유를 통해 양혜왕을 설득하다 170|양 혜왕이 괴로움을 호소하다 176|인정의 도 178|인품과 재능의 평가 188|역시 관상법이라 195|천하가 하나에 정해지다 199|맹자와 소진의 대조 203|『전국책』 원문, 소진이 위나라에 합종을 유세하다 203|소진의 권모술수 209|맹자가 말끝을 돌리다 212|하나에 정해지다 216|근원이 같은 유가와 도가의 천하통일 218|인애의 확장 221|차마 소를 죽이지 못했던 제 선왕의 인술 224|인애의 심리 행위 229|소를 놓고 마음을 이야기하다 231|정치 지도자의 비정상적 심리 237|맹자의 행위 심리학 242|권능의 문제 247|세상에는 사람처럼 음험한 것이 없다 251|꿈같은 인생 259|제나라의 부강을 묘사하다 262|연목구어 270|경제와 정치 276|행하면서 소유하지 않는 농민 282|백성들이 어찌 즐거이 나무 하고 풀 베랴 285|감히 천하를 위해 나서지 않았던 후세의 유생 287 양혜왕 하 297 예악을 중시하는 다스림의 도 301|옛날과 오늘날의 음악관 309|원림과 다스리는 이치 315|대국과 소국의 외교 책략 321|큰 용맹이 천하를 안정시킨다 325|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복제를 고친 조 무령왕 328|힘을 믿고 용맹을 좋아했던 진 무왕 346|항우와 유방 349|묵자가 용맹을 이야기하다 350|설궁에서 정치를 논하다 352|명당이란 무엇인가 361|과인은 재물을 좋아한다 368|「화식열전」의 일부분 375|인류 사회의 변화 순서와 인심의 추세 384|경제, 문화, 도덕의 연쇄 관계 388|과인은 여색을 좋아한다 393|추와 미 396|여색을 좋아한 이야기를 담은 시와 사 399|왕소군 사건에 관한 평어 401|당대의 오랑캐 화친 정책의 감상 403|양귀비를 변호하는 말 407|서시에 대한 역사의 시비 408|인사 행정에 관하여 410|손가감의 삼습일폐소 상주문 416|세신, 거족 가문의 출현 427|파벌 당쟁의 화 429|민주는 어렵고 법치 또한 쉽지 않다 434|성인을 의심한 재미있는 이야기 436|사용되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뛰어나지 못한 것을 사용하다 445|유생의 길,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달라붙다 450|과거 시험을 통해 세상에 팔려 나간 지식인 454|맹자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들었다 456|맹자의 책략, 바름으로 바로잡다 460|소진, 구변으로 열 개의 성을 되찾다 464|제나라와 연나라의 전쟁 467|소대, 제나라 왕을 평론하다 472|훌륭한 부대,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 전쟁 474|어진 장군 조빈 477|인의의 실질과 권모술수 482|맹자가 위와 에 있던 때의 비공식적 기록 486|제 선왕의 풍격 487|조정에는 문무 재사가 많습니다 488|이해관계에 따른 칭찬의 말 492|가난하고 미천한 사람이 교만하게 군다 494|해학의 대가 순우곤 499|전국 시대 양사의 기풍을 연 제 선왕 503|혼탁한 세상을 홀로 걸어간 맹자 506|역사의 변화가 바로 정치의 인과응보다 508|군주의 도와 신하의 절개 514|역사에서의 기층 정책 517|관리가 되어도 나쁜 짓은 하지 말라 519|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어려움 525|사람은 자립을 귀하게 여긴다 531|맹자가 입신처세의 원칙을 논하다 535
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춘추 전국이라는 전란의 무대에서 주인공 맹자와 동시대인들이 펼치는 대화 맹자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군주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총 7편으로 된 『맹자』 중 제1편 「양혜왕」은 맹자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극히 혼란스러웠던 전국 시대를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하고자 했던 맹자의 이상과 포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제나라, 위나라 군주들에게 의리(義利), 인의(仁義) 사상을 유세하여 정권에 중용되기를 바랐다. 그러한 그의 사상 가운데 최고의 정치 원칙과 철학적 기초가 「양혜왕」 속에 들어 있다... 춘추 전국이라는 전란의 무대에서 주인공 맹자와 동시대인들이 펼치는 대화 맹자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군주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총 7편으로 된 『맹자』 중 제1편 「양혜왕」은 맹자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극히 혼란스러웠던 전국 시대를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하고자 했던 맹자의 이상과 포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제나라, 위나라 군주들에게 의리(義利), 인의(仁義) 사상을 유세하여 정권에 중용되기를 바랐다. 그러한 그의 사상 가운데 최고의 정치 원칙과 철학적 기초가 「양혜왕」 속에 들어 있다. 저자 남회근은 「양혜왕」 편에서 설득의 대가인 맹자의 유세술에 초점을 맞춘다.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의 상황을 인정해 주면서도 자신의 논지를 펼칠 기회를 놓치지 않는 맹자. 상대가 자기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도록 뛰어난 대화술로 유도하는 맹자. 또 맹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진, 추연, 각국의 군주를 등장시켜 뜻한 바와 그 목적에서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의 시선을 거친 맹자는 추레하다. 안타까울 정도로 올곧기만 하다. 남선생은 인간 맹자를 때론 객관적인 연출가처럼, 때론 시비를 논단하는 변호사처럼, 때론 한발짝 떨어진 청중처럼 입체적으로 그려 살아 있는 캐릭터로 탈바꿈시켰다. 홀대와 무시에 아랑곳 않고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하지 않고 큰 안목과 포부로 정치와 인간을 말하는 맹자. 종횡으로 엮인 사료를 읽는 맛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출판사 리뷰 경전(經典)은 따분하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그렇다. 현실적이지 않고 고루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관점과 언어로 고전을 재해석하면 문제가 없어질까. 무게를 잡지 않는다며 일부러 웃기기도 하고 욕도 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좋을까. 이런 건 학문 하는 태도가 아니라며 엄격한 자세를 고수하는 것이 올바를까. 어려운 일이다. “시공이 교차하면서 생겨난 변화는 단지 현상의 차이일 뿐, 천지(天地)는 여전히 예전의 천지요 인물(人物)도 여전히 예전의 인물로서 생존의 원칙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다만 생활의 방식뿐입니다.” 책 서문에 나온 저자의 말이다. 시공이 변화해도 인간과 삶의 조건은 크게 다를 바 없다. 긴 시간을 살아남아 전해지는 고전이 유효한 이유이자, 남회근의 저서에서 일관된 “경전과 역사를 함께 참고하는” 것이 생동감 넘치고 살아 있는 고전 해석 방식이 되는 이유다. 이 책은 1976년에 대만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남회근 선생의 『맹자』「양혜왕」 강연 기록이다. 저자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학생들이 접근하기 쉽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일부러 가벼운 방식을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방식은 어쩌다 한번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자칫하면 경솔함으로 흐르기 쉬워 준칙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도 했다. 저자의 우려는 기우였다. “경전과 역사를 함께 참고하는” 해석 방식이 맹자라는 인물을 한층 입체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성인 맹자뿐 아니라 노인장 맹자, 냉대 받는 맹자, 처량하고 쓸쓸한 맹자, 안타까울 정도로 올곧기만 한 맹자 등 정면과 이면의 맹자가 있다. 「양혜왕」 편은 맹자가 학문을 성취한 이후 중년에서 만년에 이르기까지 국제 사회를 돌아다녔던 기록의 축소판 전기로, 맹자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담은 부분이다. 전란의 시대 맹자가 각 나라 제후들과 나눈 대화, 맹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종횡가들에 대한 기록, 중국 역사에서 끌어온 다양한 사실 등로 엮인 『맹자와 양혜왕』은 전국 시대를 무대로 만든 대규모 서사극을 방불케 한다. 이 무대를 위해 동원된 각양각색의 등장인물, 종횡으로 촘촘히 짜인 사료들, 저자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세상사에 대한 이해 등이 모여 맹자의 풍격이 더없이 깊고 넓게 드러났다. ― 공감의 대가 설득의 달인, 맹자 「양혜왕」 편에서 저자가 먼저 초점을 맞춘 것은 설득과 공감의 달인 맹자의 뛰어난 유세술이다. 저자가 포착해 낸 맹자 유세술의 특징은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상대의 현재 상태를 인정해 주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논지를 펼칠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상대가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게 만든다. 상대의 현 상태를 인정해 준다는 것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또 그것은 공자가 말했던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까지 헤아리는 ‘서(恕)’의 마음이다. 맹자의 교육은 유도의 방식이었다. 이것은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첨예하게 대립시켜 이분법으로 논단하는 종교나 설교 이론과는 크게 다르다. 그것은 기회를 포착하여 교육을 펼치고 또 상대방을 격려해 제후들이 왕도의 길을 가고 인정(仁政)을 행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맹자는 교육의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유도(誘導)의 방식을 사용하였고, 교화의 입장에서 말하면 시종일관 사도(師道)와 신도(臣道) 사이의 노선을 걸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제 선왕에게 말한 내용을 보면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차마 소를 죽이지 못했던 제 선왕의 선한 생각을 놓치지 않고 붙잡은 다음, 그에게 그런 마음을 확충시켜서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한 것을 좇아서 유도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 먼저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고 찬성한 후에 상대를 유도해서 그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좋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양 혜왕이든 제 선왕이든 맹자가 군주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모두 이렇다. 제 선왕이 자신은 여색과 재물과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맹자는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그것을 확충시켜서 천하 사람들이 모두 부강하고 안락한 생활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제 환공이 사냥과 술과 여색을 좋아하는 등 군주로서 문제가 있다고 말할 때, 관중이 나쁘기는 하지만 군주의 자질에서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던 것과 유사하다. 공감은 설득의 핵심이다. 양 혜왕이나 제 선왕의 태도가 점차 바뀌는 대목을 보자. 처음에는 맹자를 공소(空疏)한 이론주의자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대화를 이어가면서 어투와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뀐다. 맹자의 대화법, 공감과 설득의 방식에 이끌린 변화다. 양 혜왕이 맹자의 영향을 받아 대화를 나눌 때마다 태도가 조금씩 좋아져 간다는 사실은 이 문장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이번 대화는 이전의 대화에 비해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는 입을 열자마자 대뜸 “저는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해 당신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맹 선생의 의견을 듣기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도 질문하지 않고 그저 맹자가 자신에게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에 관해 의견을 들려주기만을 바랐습니다. ― 노인장 맹자 vs 아성 맹자 이 책에서 저자의 시선을 거친 맹자는 인간적이다. 인의, 왕도, 민본, 민생을 올곧게 외친 성인 맹자의 모습만 그려진 것이 아니다. 저자는 냉대가 섞인 제후들의 태도, 다른 유세가들에 비해 현격히 차이나는 대우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게다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맹자에 대한 양 혜왕의 호칭입니다. 춘추 시대 제후들이 공자에 대한 존경심으로 사용했던 선생님[夫子] 같은 존칭도 아니고, 전국 시대 당시의 제후들이 현사(賢士)에 대한 예우로 사용했던 선생(先生) 같은 존칭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예 대놓고 ‘노인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수(?)’ 자는 좀 듣기 좋게 말하면 어르신이라는 뜻이지만 그냥 무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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