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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망 명분과 속임수 사이 | 왕망의 통치와 한국의 정치 마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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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망 명분과 속임수 사이 | 왕망의 통치와 한국의 정치 마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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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94620091
쪽수 : 236쪽
이윤섭  |  아이필드  |  2015년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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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왕망 정권의 탄생과 몰락을 통해 살펴보는 현대 한국 정치! 본래 전근대사회의 왕조 교체란 모두 무력을 장악한 장군 출신이 폭력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왕망은 오직 명망과 권모술수만으로 제위에 오른 전무후?무한 인물로 당대 독서인과 관료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선양으로 새로이 왕조를 세운 인물이다. 『왕망』은 중국 전한 때의 정치가이자 신나라 개국황제였던 왕망을 다룬 책으로 많은 이의 지지를 얻었던 왕망이 끝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통해 성군 이데올로기를 배양한 유교의 탄생과 성장을 살펴본다. 왕망은 좋은 평판을 쌓는 재능만은 탁월했으나 국정 운영 능력이 부족했다. 때문에 난국을 수습하지 못하고 그것이 전국적인 반란으로 이어지며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저자는 유능하고 청렴한 인물이나 집단이 집권하기 어려운 것을 민주공화정의 문제점이라 지적하며 이는 대한민국이 60년이 넘게 정당정치를 하고 수십 번이나 대선, 총선 등 각종 선거를 치러온 가운데 이러한 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주장한다. 북소믈리에 한마디! 저자는 ‘좋은 평판’은 능력보다는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당사자의 노력과 헛소문으로 생기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라고 말한다. 왕망의 실패는 성군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지도력 한계와 문제점을 노정한 좋은 예이며, 왕망 정권의 탄생과 몰락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이윤섭은 1965년생.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다시 읽는 삼국사](전3권), [역동적 고려사], [세계 속 한국근대사](전2권), [객관적 20세기 전반기사], [박정희정권의 역사], [커피, 설탕, 차의 세계사]를 썼고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세계는 평평하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목차 여는 말 1장 유교의 득세 제자백가와 유교 법가를 채용해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와 유교 한 제국의 성립 한 무제와 유교 무고의 난과 소제의 즉위 선제의 치세 원제의 치세 2장 왕망의 선양과 몰락 성제의 즉위와 외척 왕씨의 득세 왕망의 등장 왕망의 하야와 재기 신나라 건국 왕망의 정치 농민 봉기 왕망의 최후 후한 건국 맺는 말 신 왕조 이후 변란 상황표 간략 연표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왜 왕망인가? 중국의 전한前漢 때의 정치가이자 신新나라 개국황제 왕망王莽(BC.45~AD.23)을 다룬 책이 나왔다. 논문은 몇 편 나와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거의 처음인 듯. 왕망을 다룬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당대 독서인과 관료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 ‘선양禪讓’으로 새로이 왕조를 세웠으니 그가 곧 왕망이다. 전근대사회의 왕조 교체란 모두 무력을 장악한 장군 출신이 폭력으로 했는데 왕망은 오직 명망과 권모술수만으로 제위에 오른 전무한 인간이다.” “성군 이데올로기를 배양한 유교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왕망 정권의 탄... 왜 왕망인가? 중국의 전한前漢 때의 정치가이자 신新나라 개국황제 왕망王莽(BC.45~AD.23)을 다룬 책이 나왔다. 논문은 몇 편 나와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거의 처음인 듯. 왕망을 다룬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당대 독서인과 관료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 ‘선양禪讓’으로 새로이 왕조를 세웠으니 그가 곧 왕망이다. 전근대사회의 왕조 교체란 모두 무력을 장악한 장군 출신이 폭력으로 했는데 왕망은 오직 명망과 권모술수만으로 제위에 오른 전무한 인간이다.” “성군 이데올로기를 배양한 유교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왕망 정권의 탄생과 몰락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 한국정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유능하고 청렴한 인물이나 집단이 집권하기 어려운 것을 민주공화정의 문제점으로 보고, 그 원인을 유교적 정치관이 뿌리박힌 한국 풍토, 특히 ‘성군聖君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군 이데올로기를 전파한 대표적인 인물로 왕망을 든다. 왕망의 개혁을 ‘왕망개제王莽改制’라고 한다. ‘주례체제’에 입각한 복고정책을 시행했다. 주공周公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이 제도는 유교윤리에 의한 국가 건설, 봉건제도를 통한 중화질서의 확립, 국가주의적 부국강병을 위한 제도 개혁 등을 포함하는 체제였다. 왕망과 신라 김씨 1954년 중국 섬서성 서안에서 신라인의 묘지가 출토되고 지석도 같이 발견되었다. 덮개돌에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이라는 글자와 함께 모두 593자가 새겨져 있었다. 묘주는 당나라 함통 5년(864) 5월 향년 32세로 사망한 신라인 김씨 부인이었다. 이 묘지명에 김일제金日? 가문이 요동(당시 요동은 고구려를 의미했다)으로 망명한 것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김일제는 한 무제의 흉노 원정에서 포로로 끌려왔으며, 흉노 휴도왕의 아들이다. 무제의 눈에 들어 ‘金’이라는 사성을 받았고 무제 암살을 기도한 망하라와 격투를 벌여 포박했다. 무제가 병상에 누웠을 때 곽광, 상관걸과 함께 김일제를 태자의 후견인으로 삼았다. 김일제가 죽기 전에 소제는 그를 현재의 산동성에 소재한 투현의 제후(투후)로 임명했고 그 자손들이 작위를 세습했다. 두 아들 김상과 김건은 시중이 되어 소제를 보좌했다. 김일제 가문은 왕망과 인척이었고 왕망의 건국을 도왔다. 신나라가 멸망하자 역적 신세가 되어 요동으로 망명했다. 고구려에서 득세하다 관구검의 침공 때 무리를 이끌고 신라 북변으로 이주했으며, 신라에서 이들을 받아들여 달구벌에 정착했는데 점차 세력을 키워 박씨와 연합해 석씨를 축출하고 왕조를 세웠다. 또 신라 30대 임금인 문무왕의 비문에 조상의 내력을 설명하면서 “제천지윤祭天之胤인 투후가 7대를 전하여”라는 구절을 넣었다. 왕망과 참위설讖緯說 왕망은 유학자였으나 미신과 점복占卜에 탐닉한 사람이기도 했다. 유교의 명분론과 함께 음양오행설과 참위설로, 즉 명분과 속임수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선양의 형식으로 제위에 올랐다. 참위설은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는 음양오행설에 기초해 미래를 예언하는 것으로 전한과 후한에서 크게 유행했다. 참과 위는 본래 별개의 개념이었다. ‘참讖’은 하늘에서 내려졌다고 하는 예언으로 부명(符命. 하늘이 제왕이 될 인물을 알리는 글)이나 부도(符圖. 하늘의 뜻을 나타내는 그림) 형식으로 출현한다고 했다. ‘위緯’는 유교의 경전經典에 대응해 전한 말기부터 후한에 걸쳐 지어진 책이다. 경전의 문장이 너무 간략하고 함축적이어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타났다 했다. 시경, 서경, 역경, 예경, 춘추경 등에 대응해 시위, 서위, 역위, 춘추위 등이 있었는데 음양오행설, 천문역서 등의 지식으로 경서를 해석해 길흉화복 같은 예언을 했다. 후에 금서가 되어 일부만 전해진다. 본래 경經과 위緯는 우주의 질서로 경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운을, 위는 좌우로 퍼지는 기운을 말한다. 하늘의 말씀을 가리켜 '경'이라고 했는데, 하늘은 말이 없으므로 하늘을 대신해 성인들 말씀을 모아 놓은 글을 경전이라고 했다. 경은 위계질서가 분명하여 확고부동한 가르침을 의미하므로 온전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함부로 붙일 수 없다. 반면에 위는 수평을 가리키는 것으로 평준화된 상태를 말한다. 경전에 대응해 위전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기후를 의미하는 날씨(날줄과 씨줄)도 여기에서 나왔다. 날씨를 관찰한다는 것은 우주의 기강(紀綱. 그물망)을 살핀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제자백가의 ‘인간 과욕론過慾論’과 통일전쟁의 논거 인간의 과욕이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데에는 제자백가 모두가 동의했다. 그 대책으로 공자는 안빈낙도를 강조했고, 노자는 “족한 줄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도덕적인 자제로 인간의 과욕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맹자는 인의仁義로 통합을 구현할 수 있다며 왕도정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인정을 구현하는 군주는 오직 한 사람이어야 하고 나머지는 모두 폭군이어야 전쟁 없는 통일, 인정에 의한 통일이 가능했다. 이는 통일을 보증할 수 없었다. 오히려 무력에 의한 통일 주장이 현실에 맞았다. 그런데 최강자가 전쟁을 끝낸다 해도 선정善政이 이루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군주는 무력과 문덕文德을 겸비해야 하고, 전쟁은 폭군을 몰아내는 해방전쟁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마련됐다. 시황제의 통일전쟁도 이 논리에 의해 진행됐다. 부국강병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그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한 것이 법가였다. 법가식 개혁의 명암 유가와 법가가 융합하는 등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은 일찍부터 있어 왔다. 한비자는 법法과 술術을 이렇게 규정했다. “법은 군주가 인민을 통제하는 수단이고, 술은 군주가 관료를 부리는 수단이다. 관료의 일은 군주가 제정한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 군주에게 술이 없으면 바보처럼 멍청하게 윗자리를 차지하는 꼴이 되고, 신하에게 법이 없으면 밑에서 난리를 피우게 된다.” [한비자] 외저설에는 강태공이 제나라의 광률과 화사라는 형제 거사를 죽인 일화가 나온다. 주공이 묻자 강태공이 대답했다. “(광률과 화사는) 스스로 세상의 현자라고 말하나 군주에게 쓸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현명하다 해도 군주에게 쓸모가 없으면 현명한 군주는 그들을 신하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강태공의 말은 그의 말이 아니라 법가의 말이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자라도 권력이 이용할 수 없으면 법가가 보기에는 사형에 처할 만한 죄이다. 권력이 인재를 유인하는 수단은 당근과 채찍, 즉 이익과 처벌이다. 이것이 통하지 않은 사람은 목석이지 생물체가 아니다. 법가식 개혁으로 성공한 나라들이 있다. 프로이센, 러시아, 일본이다. 인간을 수단화하는 이 사상체계는 시간이 지나면 지배층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지식인을 이반시킨다. 법가 개혁의 목표는 부국강병이지 민의 행복이 아니다. 팽창정책을 추구하다가 더 강한 상대를 만나 처참히 멸망하는 경우가 많다.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주의가 좋은 예이다. 대한민국과 법가적 인간 이조의 잔재와 일제의 잔재가 융합해 신생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주 발전에 큰 장애가 되었다. 한민족은 5백 년 넘게 법가의 통치를 받아와 인구의 30% 이상이 법가적 체제에 적합한 인간형이 되었다. 입신양명 외에는 관심이 없고 강자에 비굴하고 약자에 오만하다. 이들에게 법규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보편적 규범이 아니라 이익을 구현하거나 타인을 처벌하는 수단이다. 법가적 인간이 다수인 나라에서 정치세력을 보수-진보, 좌익-우익으로 나누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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