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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인 이야기 2 : 최씨 왕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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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인 이야기 2 : 최씨 왕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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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56121541
쪽수 : 360쪽
이승한  |  푸른역사  |  2019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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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인내할 줄 아는 과감한 승부사 최충헌, 문무를 겸비한 강력한 카리스마의 통치자 최이. 무관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옥상옥의 권력을 휘둘렀던 이들이 역성혁명을 일으켰다면 고려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역사 이탈의 경계에서 복원해낸 최씨 왕조의 창업과 수성의 역사 최씨 왕조의 창업과 수성 실험적 역사 에세이, ‘고려 무인 이야기’ 개정판 출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의 탄력적 서술 방식을 고려 무신정권 100년사에 도입해본 실험적 역사 에세이”, “독자를 주눅들게 만드는 역사학 논문에 견줘 친절함은 비할 바 없고 정보량도 밀리지 않으면서 역사소설이나 TV 사극과는 크게 구분된다.” 2003년 첫 책 출간 후 여러 호평을 받은 ‘고려 무인 이야기’ 시리즈에서 일부 내용을 바로잡고 다듬은 개정판을 새롭게 선보인다. 저자 이승한은 ‘고려 무인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의 군부독재에 대입하여 단순히 선악 이분법으로 이해했던 고려 무인정권사를 사람 냄새 풍기도록 균형 잡힌 시각으로 소개한다. 최씨 일가 4대 62년간의 무인집권 안정기 입체적으로 그려 무인 집권 성립기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의 쿠데타와 암투 그 승리와 실패의 현장을 그린 1권 《고려 무인 이야기 1―4인의 실력자들》의 뒤를 이어 2권 《고려 무인 이야기 2―최씨 왕조 상上》과 3권 《고려 무인 이야기 3―최씨 왕조 하下》에서는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로 이어지는 최씨 일가 4대 62년간의 무인집권 안정기를 그리고 있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쳤던 몽골의 침입이 있었던 때로, 이에 맞선 고려의 항쟁을 둘러싸고 매우 상반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저자는 ‘최씨 왕조’라는 다소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개념을 도입하여 창업과 수성 등 통치공학을 살펴보고, 항쟁과 정권 안보라는 상이한 차원에서 몽골의 침입에 맞선 최씨 왕조의 대응과 몰락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저자 소개
저자 : 이승한 광주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고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전남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사를 연구하는 데 ‘민족’이나 ‘민족주의’ 시각을 갖는 것은 역사를 수단화?도구화하여 배타적이고 공격적이 기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삼별초 연구로 시작해서 고려시대 무인정권과 원 간섭기에 색다른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갖게 된 데는 ‘민족’이란 연구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20년 넘는 연구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면서 이 책이 독자들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우리 역사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주요 저서로는 고려시대 무인정권을 다룬 《고려 무인 이야기》(전4권)와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몽골 제국과 고려 1), 《혼혈 왕 충선왕, 그 경계인의 삶과 시대》(몽골 제국과 고려 2), 《고려 왕조의 위기, 혹은 세계화 시대》(몽골 제국과 고려 3)가 있다.
목 차
프롤로그_최씨 왕조에 대한 궁금증 세 가지 1_창업 최충헌 형제의 쿠데타 쿠데타의 발단, 비둘기 사건│미타산, 이의민 주살│개경, 국왕을 수중에 넣고 | 수창궁, 반쿠데타 진압 집요한 승부사, 최충헌 하급관리에서 군인으로│최우수 지방관으로의 변신│다시 무인으로│최초의 인사발령 문신귀족들이 동조한 쿠데타 반쿠데타의 거점, 수창궁│국왕의 존재│명종 폐위│두 번째 쿠데타의 성공 또 다른 쿠데타, 명종 폐위 반쿠데타의 거점, 수창궁│국왕의 존재│명종 폐위│두 번째 쿠데타의 성공 마지막 쿠데타, 최충수 제거 최충수의 도전│형제의 대립│최충수 제거│홀로 선 최충헌 2_정난 노비들의 동요, 신분해방운동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노비들의 동요│만적의 난│노비와 사병私兵 신라부흥운동 김사미?효심의 난의 잔여세력│경주, 이의민의 잔여세력│진주의 노비 반란│경주 토벌계획│신라 재건 표방│진압군과 반군│김척후의 소환│토벌군의 경주 입성│경주의 쇠퇴 이규보가 증언한 고려 정통성의 위기 반란 진압에 참여한 이규보│전란지에서 보내온 편지 하나│편지, 둘│계속되는 편지│최충헌 정권과 고려의 정통성 문제│남북한의 정통성 문제 3_등극 권력의 독점, 봉후입부 최후의 정적, 박진재│수상직에 오른 최충헌│인사권 장악│숙청, 예외 없는 쿠데타 동지│봉후입부 권력을 쫓는 부 상업활동과 축재│부의 집중│권력과 부 국왕 위의 통치자 선택되는 국왕│파면되는 희종│최충헌과 국왕 왜, 왕이 되지 못했을까? 문신세력의 대표, 국왕│최충헌의 결혼관계 거란 침입과 몽골의 팽창 거란의 침입│몽골의 팽창│몽골과의 최초 접촉│형제 약속 전란 중의 정권 수호 사병, 정권 수호│승도들의 반기│전쟁에 대한 반발│고구려부흥운동│삼국부흥운동과 토착 건국신앙│최충헌과 이성계│최충헌에 대한 평가 4_계승 최이의 권력 세습 최충헌과 최이│최이의 후계자 수업│차기 통치자│최이의 결혼관계│권력 세습│동생 최향 변경의 불안 의주의 반란│몽골의 사신│불안한 변경│저고여 피살 사건│복속되느니 차라리 전쟁을│금과 동진 동요하는 무신들 중방의 변화│중방의 저항│반발하는 무신들 제왕적 통치자 초월적 존재│큰 산을 진 자라│최이의 저택│최이, 드디어 왕을 꿈꾸다│천기누설│물소 수레를 탄 국왕 상비군의 와해, 민심의 이반 군인들의 이탈│방화, 혹은 대담한 도둑들│군역제도의 모순│무너지는 상비군│새로운 상비군, 별초│동생 최향의 반란 5_최씨 왕조의 통치공학 무력 기반, 도방 도방의 기원│문객집단의 형성│도방의 조직│도방의 허와 실│내?외도방│최이의 도방과 마별초│야별초 강력한 통치기구 교정도감│교정별감│인사권 문제│정방│서방 과거제도를 통한 문인 통제 문인들의 탈출구, 과거│이규보의 관직 청탁│문인 클럽│문생과 좌주│최충헌의 핵심 참모, 금의│정권 예찬과 필화사건│최이와 이규보│퇴직관료 클럽│새로운 인사 기준│행정능력, 신진인사의 발탁 최씨 왕조의 행운, 신앙결사운동 고려는 불교국가│사원의 정치세력화│최충헌과 사원세력│선종의 득세│불교계의 개혁운동, 신앙결사│최이 정권과 불교계│사원세력의 장악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왜 최씨 왕조인가 역사 이탈, 최충헌의 역성혁명 최충헌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여 역성혁명을 일으켰다면, 분명 역사는 이를 미화하여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전혀 달랐다. 국왕을 폐위시킬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도저히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왕이 되지 않은 것일까?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으로 이어진 무인정권은 확고한 통치권을 갖지 못했다. 빈번한 권력투쟁과 잦은 정권 교체는 그러한 허약성을 드러냈고, 1인 지배의 장기집권도 할 수 없었다. 최씨 정권은 여러 면에서 이들 무인들과 달랐다. 강력한 통치권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최충헌의 직계 자손들에게 통치권을 세습했다. 국왕은 최충헌에 의해 선택되어 임명될 정도였고, 얼마든지 교체될 수 있었다. 왕위 계승은 그것대로 이루어지면서 최씨 가의 사람들에게 옥상옥의 통치권이 따로 세습되었다. ‘최씨 왕조’라는 과장된 제목을 붙인 것은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용어가 최씨 정권을 표현하는 적합한 학술 용어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최씨 정권이 발산하는 독특함을 담아내기에는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최씨 왕조에 대해 궁금한 점 세 가지 최씨 무인정권을 하나의 왕조로 설정한 저자는 최씨 왕조에 대해 궁금한 점을 밝히고 있다. 궁금증이 일어나지 않는 역사는 연구할 의미도, 재미도 없는 까닭이다. 또한 이러한 궁금증은 최씨 무인정권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첫째, 최씨 가의 사람들은 왜 스스로 왕이 되지 못했을까? 마음대로 왕을 갈아치우고 자식에게 통치권을 물려줄 정도의 힘이라면 스스로 왕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다.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왕이 되지 않은 것일까? 둘째, 최씨 정권은 어떻게 6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을까? 역사의 특정한 국면에서 예외적으로 등장한 정권이, 몽골의 침략이라는 전 민족적 위기를 겪는 가운데에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셋째, 최씨 가의 사람들은 어떻게 통치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을까? 정상적인 왕조의 국왕도 자신의 뜻대로 왕위를 물려주기가 쉽지 않은데, 최씨 정권은 그 일을 순조롭게 해냈다. 마치 최씨 왕조처럼……. 《고려 무인 이야기 2―최씨 왕조 상上》,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창업 비둘기 사건이라는 어찌 보면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최충헌 형제의 쿠데타는 시작되었다. 이의민 정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비밀리에 세력을 규합하여 미타산에서 이의민을 주살한 최충헌은 개경에 돌아와 국왕 명종을 수중에 넣는 데 성공한다. 치밀한 계획 아래 반쿠데타 세력마저 제압하고 정권을 장악한 당시 최충헌의 나이는 48세였다. 최충헌은 뛰어난 인내심을 소유한 과감한 승부사였다. 정권을 장악한 후에도 관직 승진 등에서 조급하게 욕심으로 부리지 않음으로써 문신관료들의 반발을 막고 적절하게 회유하는 한편, 강력한 결단력으로 도박에 가까운 쿠데타에 과감하게 승부를 걸었으며 정변 성공 후에는 과욕을 부리는 동생 최충수마저 제거함으로써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무엇보다 이전 무인정권과 최충헌 정권과의 가장 큰 차별성은 문신귀족들의 암묵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 있다. 최충헌은 문신들과 조직적으로 연계하지는 않았으나 지난 30여 년간 무인정권에 의해 소외되었던 문신정권의 불만을 읽고 있었다. 이는 그가 올린 〈봉사 10조〉를 통해 알 수 있다. 〈봉사 10조〉는 문신귀족들의 불만사항을 수용하여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처로서 최충헌이 문신관료들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했음을 암시하며, 그의 정권이 이전의 무신정권과 달리 보수적 성향을 강하게 띄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정난 최충헌이 권력을 장악한 후 가장 큰 저항세력은 전통 문신귀족도 무신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나 지방사회에서 먼저 저항이 일어났다. 이는 물론 최충헌 정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그 이전과 이후의 무인정권 모두에 적용된다. 무인집권기는 그래서 변화를 원하는 격동의 시기였다. 이 시기 대표적 난으로는 노비들의 신분해방운동으로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라는 선언으로 유명한 만적의 난, 김사미?효심의 난의 잔여세력이 경주를 중심으로 일으킨 신라부흥운동 등이 있었다. 최충헌은 이러한 격동의 시기 한가운데서 그런 변화의 요구를 누르고 정난에도 성공한다. 등극 지방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최충헌은 정권을 장악한 후에도 쿠데타 동지들을 포함한 내부의 정적들을 차례로 숙청하면서 결국 홀로 권력을 독점했다. 국왕으로부터 후작책봉과 함께 관부를 설치하는 봉후입부를 받은 최충헌은, 무관의 제왕으로서 권력을 독점했다. 심지어 그 스스로 국왕을 임명하기도 하고 파면하기도 했다. 국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국왕은 힘없는 목각인형에 불과했지만 그 존재를 통째로 무시해버리기에는 아직 고려 왕실의 존속을 지지하는 기득권세력, 곧 문신귀족 세력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 최충헌은 국왕을 폐하기보다는 국왕을 앞세워 문신귀족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그런 점에서 국왕을 정치적 라이벌이자 정권유지를 위한 방파제로 활용했다. 스스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자신에 대한 저항이나 정권의 몰락을 초래하기보다는, 국왕이나 왕실의 권위를 이용하여 정권을 지속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전의 무인 집권자들과 다른 점이며, 최씨 정권이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계승 최충헌에서 아들 최이로의 권력 세습 과정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왕정복고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최이의 권력 세습에 대한 저항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최씨 가에 의한 권력 세습 자체라기보다는 최이라는 인물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왕조에서도 왕위 계승권자에 대한 저항이 빈번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한 최이는 그 아버지를 능가하는 권력을 누려 가히 ‘제왕적 통치자’라고 부를 만했다. 그러나 최이 정권의 안정을 위협하는 불안한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급속한 민심의 이반과 거란, 몽골 등 이민족의 위협, 그리고 군인들의 이탈로 인한 상비군의 와해였다. 몽골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기 전부터 최이 정권을 불안하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던 것이다. 최씨 왕조의 통치공학 최씨 무인정권이 4대 62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통치권을 확립했기에 가능했다.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 물리적 군사력, 곧 사적 무력기반인 도방이었다. 전반적인 상비군 체제가 무너지는 가운데 강력한 사병집단을 거느린 최씨 일가에 도전할 만한 세력은 없었던 것이다. 그 외 최씨 정권은 인사권과 정보?사찰 기능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통치권을 행사한 교정도감과 정방의 장악, 그리고 서방 등의 기구와 과거제도를 통한 문인 통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원세력을 장악함으로써 안정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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