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경,이봉섭 지음 | 이숲
진화하는 디자인의 힘
새로운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손해를 보면서도 사용하던 제품을 처분하고 ‘갈아타는’ 휴대전화, 자동차, 노트북 등. 소비자는 이런 소비를 자신의 주체적 선택으로 믿지만 대기업이 디자인을 통해 ‘상징적 폐기’를 유도한 결과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드물다. 디자인은 사물을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기능을 조정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개념과 계획을 실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계획된 방식이 대량생산 시대 생산과 소비에 적용되고, 상품과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디자인을 단순히 계획 개념으로만 설명하기도 어려워졌다. 특히 생산보다 소비가 사회구성원의 정체를 규정하는 기제로 작용하면서 디자인은 과잉 소비를 부추기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환경 문제까지 대두하면서 디자인 개념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은 그 표현을 사용하는 맥락과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의미들이 고스란히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의미 현상에 축적되면서 개념은 더욱 복잡해졌다. 디자인이 제품생산에 적용되고, 본격적으로 사회 전면에 대두하면서 이 개념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살피는 일은 곧 디자인 개념 자체를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디자인 개념의 변화와 적용 상태를 살펴보고, 오늘날 디자인이 지향하는 긍정적인 방향을 소개한다.
디자인의 핵심은 소통
치열한 경쟁 시대에 디자인은 경쟁력의 수단이자 취향을 구분하는 기제로 인식된다. 하지만 디자인은 오히려 소통과 협업의 수단이고, 디자이너의 과제는 변별적인 취향을 초월한 최선의 선택을 찾는 데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디자인 용어가 흔히 쓰이고 디자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의 계기도 늘었지만, 디자인 개념이 진화하고 의미가 복잡해지면서 소통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대부분 디자인 관련 개념 자체를 모호하게 이해하고 각기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쓰였다. 소통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념을 잘 공유해야 한다는 점을 자각하고 상징, 소통, 기능, 경영, 성찰, 환경, 사회, 디자인, 모두 8가지 디자인 관련 대표 주제를 역사적으로 살피며 그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원시시대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과 오늘날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자동차가 과연 어떤 맥락에서 똑같이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는지, 기업은 어떻게 생산을 극대화하거나 소비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디자인을 이용하는지, 디자인은 단순한 장식 수단이 아니라 어떻게 근본적으로 인간관계와 노등, 체계와 사회의 작동방식을 계획하고 실천하는지, 파괴된 환경을 되살리는 데 디자인은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등 시대적 화두가 된 개념들을 중심으로 디자인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만화의 매력
글은 순서대로 읽으며 시간을 들여 해독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림은 여유를 가지고 시각적으로 즐기면서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글과 그림이 조화된 만화는 내용을 한눈에 파악하면서 동시에 심도 있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아주 매력적인 소통 수단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전문가의 글을 만화로 재현했다는 점이다.
글을 쓴 저자와 만화를 구성한 작가는 모두 디자이너다. 게다가 저자는 그래픽 디자이너이고, 작가는 제품 디자이너여서 모두 디자인만이 아니라 만화에 대한 이해도 높다. 디자인을 대표하는 두 분야를 전공하고 활동한 저자와 작가가 협업했기에 이 책은 어느 한 분야에 치중되지 않고 디자인의 다양한 측면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작가는 글이 매우 진지한 내용이지만 곳곳에 코믹한 요소와 적절한 은유를 배치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덕분에 어려울 수도 있었던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