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5년, 근대 이후 소설적 상상력의 어떤 ‘끝’을 보여주는 동시에 작가 편혜영의 눈부신 문학적 시작을 알리며 기이한 아름다움으로 우리 앞에 당도했던 <아오이가든>이 시간을 거슬러 오늘의 문제작으로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한 여학생 실종 사건 이후 시체를 찾기 위한 저수지 수색 과정에서, 버림받고 방치된 세 아이를 뒤늦게 발견하는 이야기 「저수지」, 비에 섞여 바닥으로 떨어지는 개구리와 집밖으로 내던져진 쓰레기 더미와 구역질을 퍼 올리는 악취가 가득한 도시의 한가운데, 역병으로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다른 도시로 갈 수 없는 이들만 남은 아오이가든을 배경으로, 나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한 가족(엄마, 누이, 나)의 모습을 그린 「아오이가든」.
생계 걱정을 하느라 자식들을 방치하는 부모를 떠나 도시의 땅 밑, 맨홀 안으로 들어간 아이들의 이야기 「맨홀」,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시체 한 구에서 시작해, 구더기로 가득한 방에 홀로 누워 생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문득」, 추리소설의 결말을 끝내 읽지 못하고 하루가 온통 꼬여버린,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 「누가 올 아메리칸 걸을 죽였나」.
폭우로 모든 걸 잃은 수재민들의 임시 거처가 된 박람회장, 박람회 개장에 맞춰 떠나야 하는 수재민 가운데, 엉터리 마술과 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 소년과 그의 삼촌의 이야기 「만국 박람회」, 의뢰인들에게 알 수 없는 서류를 전달하는 일을 하는 약국 여자의 이야기 「서쪽 숲」, 단백질 부족으로 죽어가는 실험용 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 「마술 피리」, 아내가 익사한 장소로 추정되는 계곡으로, 아내의 신체 일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가는 남편의 이야기 「시체들」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