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명 지음 | 파란
유일한 당신이 나를 본 순간 나는 생략되었다
어쩌면 시인이란 눈앞의 현실보다 기억해야만 하는 시간과 대상을 향해 스스로를 몸 기울여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불행에 노출시키고, 추위를 감내하고, 스스로의 존재가 무너질지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언어를 향해 스스로의 경계를 자꾸만 확장시키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차마, 지금을 바라보는 눈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내’가 ‘나’였던 그 시간을 위해서 거듭 사라진 ‘대상’을 ‘나’의 노래를 통해 이곳에 현전시킴으로써 말입니다. 그렇다면 김지명 시인이 제시한 ‘파랑’의 바다는 외로움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외로움으로부터 누군가를 절실하게 현전시키는 존재의 바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외로움을 강하게 감각할수록 누군가를 향한 애타는 마음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듯이. 우리의 그리움이 그 속에서 몸을 얻어 선연해지는 순간, 나의 과거가 되어 버린 누군가가 선명한 파랑의 색채로 나의 눈앞을 물들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이 바다에서, 시인의 언어는 지금도 뭉쳤다가 흩어지길 반복하며, 어떤 냄새와 기척을 향해, 어떤 겨를을 향해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 파랑의 바다는 외로움의 바다이면서, 그러한 외로움을 통해 ‘당신’을 호명하는 길고 긴 애도의 작업이 아닐까요. 나의 몸이 얼어붙어 무너지더라도 완수되어야만 하는 길고 긴 애도의 작업……. 비록 이것이 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만 수행될 수 있는 작업이라고 할지라도, 나의 언어를 무너뜨려야만 가닿을 수 있는 언어의 세계라고 할지라도, 그의 언어는 계속해서 표면의 경계를, 수면을 찰방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찰방이는 의미의 표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손을 깊숙이 넣어 보는 것, 그리하여 그 물성을 손으로 헤아려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 임지훈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