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곤 지음 | 솔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르듯이”
시와 함께 살아가며 발견한 일상의 우주
“동그란 해도 들어와 살고 달도 들어와 살았다 손바닥만 했지만 크고 넓었다”
“박새, 굴뚝새, 개똥지빠귀, 뱁새, 개개비 울음소리 같은 귓속말처럼 작고 여린 것들이다”
우리 일상의 가깝고 편안한 것들은 어떻게 시의 자리에 오는가, 그것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팔질”에 들어선 조달곤 시인이 펴낸 세 번째 시집에서 그 새삼스러운 질문에 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평생 시를 쓰며 시를 가르쳐온 조달곤 시인이 밀양 산골에서 살며, 십여 년에 걸쳐 쓴 65편의 시편들을 묶어서 시집을 펴냈다. 새롭게 확장되고 깊어진 조달곤 시인의 시 세계는 우리 삶의 자리와 시가 어떻게 만나 새롭게 태어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대상을 우회하지 않고 직접 닿는 시적 언어의 간명한 의외성과 생명의 힘으로, 다정하고 따뜻하게, 때론 생명의 의지와 욕구로 탈바꿈한 변신의 자리를 보여주고 있다. 시간을 선회하고 도달한 장소, 둥그렇게 오므린 그 출입(出入)의 자리에서, 시인은 투명해진 언어의 껍질로 자신의 거처를 조망한다. 그곳에는 변신의 욕망도 있고, 체념을 감춘 어조도 있으며, 아이가 그러하듯 안 보이는 ‘엄마’를 거듭 부르는 소리도 있다.
낯섦과 어루만짐이 동시에 깃든 “낮이 말라 밤이 차”오른 그 오목하고 따뜻한 장소에는, “귓속말처럼 작고 여린 것들”(「새소리 한 보자기」)과 “온갖 귀신들이 우글”거렸던(「구렁이 이야기」) 유년의 아궁이에서부터 나를 아는 척해주지 않는 동네 개 미순이에 대한 섭섭함(「다원일기 2)과 “자주 길을 잃고 한 마리 쐐기벌레가 되어 뒤뚱”(「상산常山나무」)거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 자리는, “나 같은 인간을 벌레들이 받아줄지 의문”(「벌레 고考」)이라고 묻는 곳이며, “후투티의 부리 끝에서 댕기머리 끝까지를”(「후투티와 나」) 어떻게 걸을 수 있을지 가늠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고향집 마당처럼 “손바닥만 했지만 우주만큼 크고 넓”게(「마당」) 다가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기지의 것과 미지의 것이 만나는 이 장소는 “의식이 깨어 있고 기억으로 넘치는 것, 그러면서도 현재를 대단히 예민하게 여기는”(해설 중에서) 곳이기도 하다.
이 시적 공간에서 시인은 생명과 삶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사랑이 깊어간다. 오래 품은 온기로 감싸인 시편들 속에서, 시인은 생명에 대한 그윽하고 세심한 말들, 때론 담백한 친구의 말투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노년’이라는 어떤 낭패감을 깊이 밀고 나가 만난 애초의 ‘첫’ 장소에서 들리는 날것의 탄성 같기도 하다.
그의 시에는 맑고 따뜻한 천진성이 깃들어 있으며, 동시에 이생의 ‘시간’과 ‘말’들을 껴안고 상승하는 가벼움과 부드러움으로 감싸여 있기도 한다. 깊고 너른 감각과 질문으로 시/삶을 변모시킨 시집은, 이 봄에 더욱 어울린다. 봄날의 아침, 당신은 시인의 목소리에 문득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침을”(「아침을 먹었다」) 먹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