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철 지음 | 파란
예언자는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죄를 거슬러 예언한다
“시집의 서두를 여는 시 ?마른 형광펜?은 떠돌이 고양이가 거실에 들어와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문장들은 지구와 내장 기관의 기울기, 신체 없는 정신, 과거와 가난과 친구, 황사와 개나리꽃, 미역국과 파, 애인의 카드 빚과 공인인증서, 개인의 자유와 민중의 자유 등으로 이어진다. 인용된 텍스트조차 성경 내 잠언과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에서 발췌된 것이라, 일견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어 보인다. 우리는 보통 한 편의 글을 읽을 때 연속된 흐름 속에서 일관된 이해의 태도를 견지하려 하지만, 언뜻 이 시는 그런 것들을 모두 비켜 가게 만드는 것 같다. 거의 시집 내내 반복되는 이러한 방식의 서술은 과연 어떠한 시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샴푸를 발라 찌든 때를 세탁하는 일, 서산에 해가 지는 일, 전기밥솥의 나사가 빠진 일, 썩은 사과 냄새를 맡으며 시를 쓰는 일 등은 내용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다지 관계없는 문장들인 것만 같다. 행갈이 없이 한 문단으로 이뤄진 연과 굵게 칠해져 별도로 분리되어 있는 연의 교차는 사뭇 화음을 이루지 못하는 별개의 이중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풍경, 가난, 역사, 사랑 등 서로 거리가 먼 듯한 소재들이 뒤섞여 있다는 점 역시 그 이질적이고도 낯선 느낌을 강화한다. 다만 시의 문장들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딘지 기묘하게 교차되는 이미지 같은 것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팽창하는 우주와 머리털이 빠지는 나, 성장하는 나이테와 썩어 가는 사과, 생성되는 것과 소멸하는 것이 겹쳐지는 묘한 감각인 듯싶다.
이 기이한 감각은 동일한 연작시 여기저기에서 포착되곤 한다. “각혈한 어느 날 아침, 양파 뿌리가 자라나 있었”(?성장성 장애 2?)고, “노을은 태양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꽃이 된 자리”(?성장성 장애 3?)에 피어났으며, 제초제를 마셔 죽어 가는 “어머니의 피부는 아기처럼 뽀송뽀송했다”(?성장성 장애 1?). 자라나기에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이 존재들은 “성장성 장애”라 불릴 만한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연이은 문장들과 반복되는 독해 속에서 이 동형적 운명의 이미지가 떠오를 때,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각혈, 양파의 생장, 노을의 탄생, 태양의 낙사, 어머니의 자살 등은 전에 없던 희미한 연결 고리를 생성해 낸다. 나란히 놓인 그 낯설고 환유적인 문장들이 기이한 일체감을 생성해 내는 순간, 시인이 규정한 ‘은유적 환유’라는 모순된 단어는 설핏 이해가 되는 듯싶기도 하다.”(이상 조대한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최승철 시인은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2년 <작가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갑을시티> <키위도서관>을 썼다. <신들도 당신처럼 외로움을 느낄 때>는 최승철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