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소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바람을 품은 연민
권혁소의 일곱 번째 시집 『우리가 너무 가엾다』에는 연민의 정서가 넘실댄다. 그 정서는 세상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시인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표제작인 「우리가 너무 가엾다」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야 묻는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 것이냐고”. 표면적으로는 회한의 감정으로 읽힐 수 있지만, 시인에게는 아직 꿈과 바람이 있다. “그대가 가서 숲이 된다면 좋겠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말고 동짓달 하늘에 핀/ 초승달이 된다면 좋겠다”. “비록 이것이/ 빌 수 있는 마지막 축복”이지만, “마지막”이란 단어 하나에 어떤 간절함이 배어 있는 것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시인은 어떤 ‘마지막’ 바람을 이 시집에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껏 “비록 실패하는 사랑에 매진했으나 아직/ 세상엔 못다 한 사랑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시인의 내력을 조금 들여다봐야 설핏 이해가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시집에 그 내력을 얼비치는 작품은 없다. 다만 5부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 권혁소 시인의 또 다른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유추 가능할 뿐이다.
와야 할 아이들은
아직 소식 없는데
소식보다 먼저
수선(水仙)이 오셨다
땅속에서 솟아날까
매화는 고개를 숙였고
하늘에서 내려올까
참꽃은 목을 세웠다
_「다시 봄」 부분
왜 이 하늘에만 까마귀 나는 걸까
엽신을 띄워보지만 뭍에서는 답이 없고 다시
바람에게 물어보는 서늘한 말,
저 까마귀들 4월 하늘에 띄워 올리는
그대의 속내는 무엇이냐
언제쯤에나 각명비원 까마귀들의 언어
온전히 해독할 수 있을까
_「바람의 속내」 부분
앞 작품은 세월호 참사로 읽은 “아이들”을 부르는 초혼가이고 다음 작품은 제주 4·3의 영혼들의 침묵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위 두 작품은 이 시집에서 눈이 띄게 드러나는 사랑과 바람이 어떤 사건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정서 상태인지 가늠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껍데기로 이루어진 나라
하지만 지금 시인의 현실은 시인의 자아가 어찌해 볼 수 상태다. 예를 들어 「원통 장날」에서는 그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동조합 하느라 들락거리긴 했지만/ 산골에 내려와 선생 한 지 십 수 년/ 첫해에 만난 애들은 어언 서른 가깝다”. 또 「生死」에서는 “교정의 낙엽도 몇 잎 남지 않았는데/ 모르겠다 도통 모르겠다 선생 30년/ 죄 많아 화장실에서도 반성을 한다”고 적는데, 시간이 덧쌓여 만들어진 슬픔의 정서 이면에는 반성하는 정동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선생 30년”을 가끔 무참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진정한 울타리였던 적 있었”는지 거울이 되어 다가오는 아이들이다. 권혁소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의 현실이 답보 상태임을 상징적으로 “야자”를 통해서 드러낸다. 시인은 “하모니카라도 불어주면” 어떨까 생각하지만 그게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함을 의식하고 그만두고 만다.(이상 「다시 야자」)
이 시집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인이 인식하고 있는 이런 현실들이 ‘세월호 참사’를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작품의 부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바침’인데 주제는 ‘껍데기의 나라를 떠도는 너희들에게’이다. 시인에게는 우리의 현실이 여전히 ‘껍데기’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껍데기들이 이루어 놓은 역사가 순간적으로 붕괴한 사건인데, 이 선 굵은 작품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갖는 기원을 추적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권혁소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보여준 슬픔의 정서는, 오롯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갖는다.
사랑이라는 윤리 또는 태도
그렇다면 이번 시집의 또 다른 주된 정조인 ‘사랑의 감정’은 단지 에로스의 울타리에만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윤리적 태도 또는 마음일 것이다. 그 증거는 작품 편편에 벌레의 숨결처럼 배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작품에서는 ‘시인의 사랑’을 단순한 감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윤리적 태도가 여지없이드러나 있다.
여기저기 낡은 뼈들의 아우성으로
뒤척이는 밤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풀 한 포기 딱정벌레 한 마리도
허투루 대할 일이 아니다
_「노안」 부분
멀리 보는 눈은 이제 약해졌을지 모르겠으나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남다른 마음가짐을 일러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고 한다면, 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