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미 지음 | 파란
이 세계가 끝장나기 전까지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시집,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익숙한 위로와 성찰을 기대했다면 이 시집을 펼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순진한 화자가 의도치 않은 사건을 만나 상처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하는 서사란 이 시집과 어울리지 않는다. 세계가 바뀔 것이라는 믿음, 내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박탈당한 자가 표면적으로는 이 시집의 주인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기를 학대하고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 폭력적인 세상을 끝장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만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오영미의 화자는 여성 화자이다. 세계의 폭력성은 여성에게만 선별적으로 작동된다는 자의식이 이 시집의 가장 강력한 발화 지점이다. 오영미의 시집은 남성 권력으로 젠더화된 세계가 끊임없이 여성 화자를 평가하고,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며, 물화하고, 언어를 빼앗고, 구석으로 내몰고, 혐오를 내면화하도록 강요하며, 성적으로 착취하고, 폭력적으로 신체와 정신을 침탈하는 일들이 태연하게 반복되는 그런 현실을 보여 준다. 마치 끝나지 않는 악몽처럼 되풀이되는 고통 속에서 오영미의 여성 화자는 세계의 불의와 불공정함을 고발하고, 또 강력한 분노로 몸서리치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 질서 앞에서 제 몸을 깨트리고 망가뜨려 저항의 마지막 흔적을 남긴다.
이렇게 다시 써 봐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더 말하게 된다. 너무나 많은, 부서진 유리 공들이 가루가 되어 늪을 이룰 정도로 쌓이고, 우리는 발이 빠진 것처럼 그녀의 강력한 심리적 충동과 우울한 에너지들에 잠식당한다. 움직일 때마다 몸 전체가 유리 가루에 쓸리는 아픔. 종일 핏물에 서걱거리는 이 소리. 당신들에게도 내가 겪은 그 아픔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겠다는 열망이 없다면 이런 언어들이 가능할까. 때로 잔인한 무대를 만들고 영화나 책에서 본 이국적인 이름들을 등장시켜 자신을 감춘 채로 인형극을 펼치지만 그렇다고 비명이 사라질 리 없다. 눈은 웃고 있지만 입은 찢어진 인형이 비틀린 얼굴로 기괴한 소리를 중얼거린다. “어째서 감정은 토해 낼 수 없는 걸까, 습관적으로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너는 손끝만 대도 문드러지는 연두부처럼 위태롭다”('하얗고 연약한')고 말하는 목소리.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묘사할 때조차 폭식과 거식, 가학과 피학, 그리고 신체 훼손과 자기혐오가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이 세계의 비참은 좀처럼 톤 다운이 되질 않는다. 비명과 고통은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하고, 그렇게 위태롭게 쌓여 간다. 토해 내려고 해도 도저히 토해지지 않는다.”(이상 박상수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오영미 시인은 1987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으며,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7년 <시와 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닳지 않는 사탕을 주세요>는 오영미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다.